'적대적 두 국가' 외치는 北... 30여년 전엔 "조선은 하나"

김형준 2025. 9. 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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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적 두 국가'를 주장하며 남한에 등을 돌리고 있는 북한이 35년 전에는 남한과 '두 국가' 상황이 되는 것을 걱정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1991년 우리는 남북한이 각자 유엔에 가입하는 방안을 고려했다.

통일부는 1990년 9월부터 1992년 9월까지 8차례에 걸친 남북고위급회담 문서를 이날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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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제7차 남북 회담문서 공개
정동영 신임 통일부 장관이 지난 7월 25일 취임식을 앞두고 판문점을 찾아 자유의 집에서 판문각을 살펴보고 있다. 통일부 제공

'적대적 두 국가'를 주장하며 남한에 등을 돌리고 있는 북한이 35년 전에는 남한과 '두 국가' 상황이 되는 것을 걱정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통일부가 남북 기본합의서 체결 과정을 공개하면서다. 당시 북측은 "현재의 '적대적 두 국가론'과 정반대 논리를 폈다"고 통일부는 설명했다.

1991년 우리는 남북한이 각자 유엔에 가입하는 방안을 고려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를 통해 한반도 분단이 고착화될 것을 우려했다. 북한은 당시 남북 관계를 분단국 내부 민족적 관계인 ‘통일 지향 잠정적 특수관계’로 규정했다.

이런 내용은 2일 통일부가 제7차 남북회담 문서를 공개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통일부는 1990년 9월부터 1992년 9월까지 8차례에 걸친 남북고위급회담 문서를 이날 공개했다.

남북대화사료집의 제13권에 포함된 문서엔, 1990년 초반 서울에서 이뤄진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은 물론 그해 10월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 대화 내용 등이 담겼다. 눈에 띄는 대목은 1990년 9월 18일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1차 실무대표 접촉 당시 남북은 유엔 가입 관련 논의에 집중한 점이다. 당시 북측은 남한의 유엔 단독 가입을 가장 경계하던 때였다.

공개된 문서에서 당시 북측은 △남북 단일의석 공동가입 △공동 또는 교대로 대표권 행사 △명칭은 코리아, 깃발은 흰색 바탕에 푸른색 한반도 지도 등을 주장했는데, 남측은 △단일의석 공동가입은 유엔헌장에 위배되며 △쌍방 합의 결의권 행사는 비현실적이라는 주장을 펴며 평행선을 달렸다. 1990년 10월 같은 장소에서 열린 제2차 실무대표 접촉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사료집에 따르면 북측은 "동시 또는 단독 유엔 가입은 '두 개의 조선 정책' 주장을 되풀이한다"며 반대 의사를 폈고, 남측은 "(유엔에)동시에 가입하되, 남북은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임을 강조했다. 북한은 지속적으로 남북 관계를 하나로 묶는 방침에 공을 쏟았지만, 결국 남북은 유엔에 각자 가입한 상태로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1991년 7월 8일 북한이 먼저 유엔에 가입한 뒤 남한은 8월 5일 가입을 신청했다. 이후 한 달여가 지난 뒤인 9월 17일 유엔은 남북한에 대한 동시 유엔 가입을 승인했다.

최근 분위기와 달리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먼저, 강력히 요청한 때도 있었다. 북한은 1991년 11월 11일 5차 고위급회담 준비 1차 실무대표 접촉 등에서 "민족 존망과 관련된 핵문제는 쌍방이 마주 앉아 진지한 협의가 필요하다"며 화학무기 및 대량살상무기 제거 등을 언급한 바 있다. 사료집을 보면 북한은 "화학무기를 제거하는 것에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남조선에 있는 미국 핵무기를 비롯, 대량살육무기 제거도 염두에 둔 것인지" 등을 물으며 한반도 비핵화에 적극 나섰다. 다만 북한의 이런 행동의 진정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했음에도 국제기구 사찰 등을 이유로 상호 사찰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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