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들의 입맛 사로잡은 태국의 새우 요리… 환경파괴 맞선 ‘착한 비즈니스’로 변화 바람[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마이 싸이 꿍(새우 넣지 말아 주세요).” 태국을 여행하면서 가장 자주 쓴 표현이다. 향이 강한 고수를 넣지 말아 달라는 표현은 여행 광고 소재로 등장할 만큼 익숙했지만, 새우를 빼 달라니. 새우 알레르기가 있는 친구 덕분에 음식점마다 이 주문을 반복하다 보니, 태국 요리에 새우가 얼마나 폭넓게 쓰이는지 비로소 실감했다. 메뉴판을 더듬더듬 읽다 보면 “똠, 얌, 꿍” “꿍, 팟, 퐁, 커리”처럼 ‘꿍(새우)’이 유난히 자주 눈에 띈다. 한국에서 즐겨 먹을 때는 미처 몰랐던 사실이다.
태국 요리는 흔히 ‘풍요의 식탁’이라 불린다. 비옥한 땅과 따뜻한 기후 덕분에 식재료가 풍성하고, 역사적으로 외침이 적어 고유한 음식 문화를 지켜올 수 있었다. 거기에 중국·인도·말레이시아와 맞닿아 교류한 향신료와 조리법이 더해져 지금의 다채로운 태국 요리가 완성되었다. 무엇보다도 저렴하면서도 맛은 풍부해, 세계인의 입맛까지 사로잡았다. 길거리 노점에서 파는 국수 한 그릇도, 고급 레스토랑의 커리 한 접시도 ‘풍부하면서도 친근한 맛’을 공유한다.
그중에서도 새우는 태국 요리의 대표 재료다. 태국은 세계적인 새우 생산국이자 소비국으로 최근 전염병으로 생산량이 줄고 가격이 올랐음에도, 소비는 오히려 늘었다. 태국인의 식탁에서 새우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라는 의미다. 하지만 풍요 뒤에 그림자도 있다.
10여 년 전, ‘태국판 새우 노예’ 실태가 폭로되면서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값싼 노동력에 기대 새우껍질을 까던 작업장에서 이주 노동자, 아동, 여성들이 착취당한 것이다. 당시 일부 국가에서는 태국산 새우의 불매운동이 일어났지만, 파도처럼 밀려온 분노는 값싼 새우의 유혹에 금세 잦아들었다. 다행히 국제사회의 감시와 태국 정부의 자정 노력으로 새우 산업 내 강제 노동은 많이 줄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문제가 인도로 옮겨가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환경 부담도 가볍지 않다. 새우 양식장의 확장은 대규모 맹그로브 숲을 파괴시키고, 배설물·사료 찌꺼기·항생제와 폐수가 바다로 흘러들어가 해양생태계를 위협한다. 지구의 허파라고 하는 맹그로브 숲의 절반가량이 지난 50여 년간 사라졌다는 통계도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타이거 새우의 탄소발자국은 소고기의 10배나 높은 수치라고 한다.
갑각류의 작은 발걸음이 의외로 무거워 여행자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새우를 계속 먹어도 되는 걸까? 새우 알레르기가 있는 친구는 한국 역시 태국만큼이나 새우 요리가 많다고 했다. 익숙해서 또 몰랐다. 한국 역시 세계 6위의 새우 소비국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값싼 새우를 편하게 즐기는 동안, 누군가는 새우껍질을 까며 손가락 동상에 시달리고, 지구의 허파는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다행히 변화의 움직임도 있다. 자동화 기술 덕분에 새우 손질 과정이 기계로 대체되며 노동착취가 줄고, 버려지는 새우 껍질을 펫푸드나 기능성 소재로 재활용하는 스타트업도 등장했다. 여성 노동자들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며 환경 부담까지 덜어내는, 그야말로 ‘착한 비즈니스’다. 산업 전체를 바꾸기에는 아직 미약하지만, 변화는 언제나 작은 시도에서 시작되지 않던가.

친구 덕분에 여행 내내 새우에서 벗어나 새로운 메뉴에 도전하다 보니, 태국 음식이 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지 새삼 이해하게 되었다. 새우가 빠져도 음식은 여전히 다채롭고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귀국 후 다시 마주한 익숙한 새우 요리 앞에서는 망설이게 된다. 태국 음식점 메뉴판을 마주할 오늘 점심에는 꼬막손으로 새우 까던 아이와 사라져 가는 맹그로브 숲을 깜빡 잊고 싶다.
서울대 웰니스융합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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