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꼿꼿한 허리'‥4강 외교와 남·북한

우리 시각으로 지난 26일 새벽에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은 단순히 두 나라 사이의 과제를 정리한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작게는 우리나라를 둘러싼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4강과의 관계, 크게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적 산업 체계 재편과 그에 따른 정치·경제·군사적 질서 변화에 대한 한국의 대응이 시작되는 단계라고 보아야 할 듯합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우리 정부의 움직임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하기에 앞서 일본에 들러 이시바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먼저 가졌습니다.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처법'을 이시바 총리에게 일종의 귀띔을 받은 것 같은 모양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큰 틀에서는 이재명 정부가 한·일 관계라는 커다란 그림을 일본과 공유한, 즉 이재명·이시바 정부가 함께 한·일 관계에 대한 '총론(總論)'을 정리한 게 더 중요한 일이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트럼프의 미국'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느냐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고 하니 이재명 정부가 한·일, 한·미, 한·미·일 관계라는, 4강 외교의 동쪽 부분 밑그림을 그렸다는 뜻입니다. 물론 아직 '밑그림' 수준이지만 말이죠.

박병석 특사단장은 현역 국회의원은 아니지만 6선 의원 출신으로 국회의장을 지낸, 원로급 정치인입니다. 민주당에서 손꼽히는 이른바 '중국통'이기도 합니다.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 정부 대표단 단장으로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접견한 바 있습니다. 김태년 의원 역시 민주당의 정책위의장과 원내대표를 지낸 5선 의원입니다. 당에서는 '정책통'으로 손꼽히는 중진 의원입니다. 박정 의원 역시 3선 국회의원으로 중국과 인연이 있습니다. 노재헌 이사장은 '북방외교'를 추진해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이란 상징성을 갖고 있습니다. 특사단이 중국에 도착한 지난 24일은 한·중 수교 33주년이기도 했습니다.
중국 특사단은 시진핑 국가주석을 접견하지는 못했지만, 왕이 외교부장, 왕원타오 상무부장 등 중국 정부의 외교·경제 수장을 만났고, 한정 국가부주석, 그리고 중국의 공식 서열 3위인 자오러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중국의 국회 격) 상무위원장과도 얼굴을 맞대고 한·중 관계를 논의했습니다. 오는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 시 주석을 초청하는 내용 등을 담은 것으로 보이는 이재명 대통령의 친서도 왕이 외교부장을 통해 중국 정부에 전달했습니다. 중국 정부도 한국 정부의 특사단을 상당히 '예우'한 모양새를 갖췄습니다.
한국 정부로서는 형식적으로라도 4강 외교 중 러시아를 제외한 '미·중·일' 부분의 기초 공사를 한 셈입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직전 이뤄진 지난 2019년 1월 이후 6년 8개월 만에 중국을 방문합니다. 또 이번 중국 방문은 26개 국가의 최고 지도자들이 참석하는 '다자 외교' 무대에 김 위원장이 처음 데뷔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지난 1954년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과 열병식을 함께 참관한 뒤 71년 만에 북·중 최고 지도자가 나란히 천안문 광장에 서는 모습도 전 세계에 타전될 것입니다.

한·미 관계를 의식해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하지는 않지만 국가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의 참석은 중국에게 나름의 성의를 보인 것입니다. 6.15 정상회담 성사 주역 중 한 명인 5선의 박지원 의원의 참석 역시 눈길을 끕니다. 집권 민주당의 원로급 국회의원일 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정보원장으로 최근까지도 남북문제에 깊숙이 개입했고, 김정은 위원장과 접촉해 본 몇 안 되는 현역 정치인입니다. 이 같은 참석자들의 얼굴을 보면 이재명 정권이 중국과 북한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미국으로 가는 도중 기내 기자회견을 통해 "중국과 절연하고 살 수는 없다. 절연 안 하는 걸 친중이라고 한다면, 그런 의미의 친중이라면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내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습니다. 마치 '난 정신 바짝 차리고 있다'고 말 없이 말하는 것 같기도 했고, 나라의 명운을 건 자리라서 자신도 모르게 긴장한 것이 꼿꼿이 세운 허리로 나타난 것 같기도 했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대통령은 입으로는 트럼프를 끊임없이 칭찬하면서도 허리는 꼿꼿이 세우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4강 외교와 남·북 관계에 대한 자세가 이와 같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도는 부드럽고 유연해야 하지만, 그 자세는 일관되게 나라와 민족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어야 하겠지요. 그래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을 꼽으라면 이재명 대통령의 '꼿꼿한 허리'라고 말하겠습니다. 그의 '꼿꼿한 허리'를 계속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뉴스인사이트팀 전영우 논설위원》
전영우 기자(anselmo@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751501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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