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의사회 “한국이 로힝야 난민 원조 목소리 높여주길”

김지훈 기자 2025. 9. 2.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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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게바라 국경없는의사회 국제본부 의료활동 총괄 인터뷰
국경없는의사회 간호사가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촌 내 시(C)형 간염 치료 전문 센터에서 검사를 위한 표본을 채취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로힝야족 집단학살 8년을 맞는 지금도 방글라데시 난민촌에는 무관심 속에서도 로힝야족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이들이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1992년부터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지역에서 로힝야 난민 긴급구호 활동을 해왔다. 현재는 2009년 콕스바자르 난민촌에 설립된 쿠투팔롱병원 등 의료시설 8곳에서 의료 지원 활동을 펴고 있다. 하지만 난민촌은 모두 23개에 이르러, 국경없는의사회는 순회진료팀도 운영하고 있다.

26일 서울 종로구 국제보건기술연구기금 사무실에서 만난 마리아 게바라 국경없는의사회 국제본부 의료활동 총괄은 지난 2009~2012년 미얀마에서 활동하며 로힝야 난민을 지원했다.

로힝야족들은 미얀마에선 검은 흙이란 뜻의 비속어 ‘깔라’(kalar)라고 불리며 멸시를 받았다. 피난을 온 방글라데시에서도 로힝야 난민들은 접촉해선 안 되는 더러운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받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그들과 닿지도 않으려 한다. 게바라 총괄은 “로힝야족들은 엄청난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어, 정신건강 치료도 지원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로힝야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은 한층 더 하다. 게바라 총괄은 “여성들은 물이나 식량을 구하러 가거나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성폭력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폭력 여성들을 치료하는 것도 역시 현지 국경없는의사회의 주 사업 중 하나다.

시(C)형 간염 상황은 심각하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연구 결과에선 콕스바자르 난민촌에 있는 로힝야 성인의 약 20%인 8만6천명이 시형 간염에 감염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염률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의료 지원이 충분치 않아 로힝야족들이 민간 치료사에게 갔다가 오히려 시형 간염 등에 옮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민간 치료사들은 바늘을 찌르는 시술을 하는데 소독하지 않고 여러 사람에게 반복해 사용하면서 병을 전파한다. 이에 국경없는의사회는 로힝야족 3만명을 대상으로 시형 간염 검사를 시행해 감염자를 찾아내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미얀마 군부의 로힝야 집단학살 사건이 발생한 지는 8년이 넘었지만, 국경없는의사회가 미얀마에서 로힝야족 의료 지원을 시작한 건 이미 40년이 넘었다. 구호단체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상태로 나갈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없는 것일까.

게바라 총괄은 “문제의 본질은 간단하다. 그들이 무국적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로힝야 난민들은 교육받고 직업을 얻는 건 고사하고, 난민촌 내 구역들을 이동할 자유조차 없다”며 “가장 기본적인 인권인 시민권이 박탈된 이상 국제사회가 어떤 구호를 해도 근본 문제는 바뀌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국경없는의사회 간호사가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촌 내 시(C)형 간염 치료 전문 센터에서 검사를 위한 표본을 채취하고 있다. 이 단체는 시형 간염 치료 전문 센터 3곳에서 전체 감염 환자 약 3분의 1을 대상으로 검사와 치료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그는 국경없는의사회의 현재 가장 큰 역량이 투입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는 기근의 심각함도 전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부인하는 기근 사태에 대해 게바라 총괄은 “우리 진료소로 심각한 영양실조 환자들이 찾아오고 있다”며 “성인들이 영양실조로 사망한다는 것은 기근의 강력한 증거다. 우리는 직접 눈으로 보는 것만 말한다”고 반박했다.

게바라 총괄은 “심각한 박해를 받는 로힝야 난민과 이스라엘의 봉쇄조치로 기근에 시달리는 가자지구 주민 모두 이들을 보호할 국제법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면서 “한국 정부가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인만큼 국제법을 준수하라는 목소리를 더 강하게 내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에서 들어오는 지원금이 급감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에 들어오는 후원 규모를 보면 지난해 24개 주요 후원국가 중에선 17번째였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98%가량의 후원금을 개인 등 민간으로부터만 받고 있다. 게바라 총괄은 “원조 분야에 리더십의 공백이 있는 상황에서 한국 같은 새로운 리더가 나서야 할 때”라며 “한국은 경제 규모 12위의 대국인만큼 국외 원조에 있어서도 더 많은 기여와 리더십을 보여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쿠투팔롱 난민촌에서 압둘 마제드(53)와 그의 딸 누르 할리마(18)가 C형 감염을 확인하기 위해 표본을 채취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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