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낙태죄 폐지 입법 공백…배우자 동의보다 자기결정권 우선 판결에도

장현은 기자 2025. 9. 2.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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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만의 선언: 낙태죄 폐지 전국 대학생 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 2020년 11월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에서 ‘낙태죄 마침표’ 집회를 열어 정부의 “주수 제한 입법예고안의 완전 철회와 낙태죄의 완전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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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를 한 여성의 배우자가 집도의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항소심에서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배우자의 낙태 동의권보다 우선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1·2심 판단이 엇갈리면서 낙태죄 비범죄화 이후 후속 입법 부족으로 해석상 혼란이 반복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고법 민사17-3부(재판장 안승훈)는 지난 21일 ㄱ씨가 산부인과 의사 ㄴ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ㄱ씨는 아내가 자신과 상의 없이 2023년 임신 15주 때 임신중지 수술을 하자 집도의 ㄴ씨를 상대로 “정신적 손해를 배상하라”며 7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ㄱ씨는 “모자보건법이 낙태 수술의 요건으로 배우자의 동의를 규정하고 있는데, 동의 없이 수술한 것은 민법상 불법 행위”라고 주장했다. 모자보건법 14조 1항은 △본인·배우자가 우생학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질환이 있을 때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거나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인척 간의 임신 등 5가지에 해당될 때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 임신중지 수술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법상 낙태죄의 예외 사유를 규정한 것으로, ㄱ씨의 아내는 이런 경우에 해당되지 않지만 ㄱ씨는 “통상의 낙태에 대해서도 이 규정을 유추 적용해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야 했다”고 주장했다. ㄴ씨는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왔으므로, 그 위법성 조각 조항인 해당 조항도 효력이 상실됐다”며 “유추 적용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모자보건법 14조 1항의 실효 논란은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2021년부터 임신중지가 비범죄화된 이후 지속됐다. 형법의 낙태죄가 실효된 이상 예외 조항도 독자적으로 효력을 가질 수 없다는 주장이 이어졌지만 국회의 후속 입법이 없어 여전히 법령에 남아 해석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1심은 ㄴ씨가 ㄱ씨에게 위자료 500만원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모자보건법 14조 1항이 유효하다며 “이 사건 낙태를 함으로써 모자보건법 조항의 유추 해석상 인정되는 배우자의 동의권을 침해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임신 22주 이전에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우선해 배우자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피고(집도의 ㄴ씨)의 독자적인 해석”이라고 판단했다. 이는 임신중지 수술 의사가 이에 동의하지 않은 남편에게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인정한 법원의 첫 판단이었다.

항소심 재판부도 모자보건법 14조 1항이 유효하다고 판단했지만 이를 통상의 임신중지에 유추 적용할 수는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 취지를 고려하면, 이 사건 수술에 모자보건법 조항을 유추 적용하는 것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일률적으로 더 제한하는 것이라서 결정에 반할 수 있다”며 “유추 적용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유추 적용해 보호되는 원고(남편)의 법적 이익이 임신한 여성 본인의 자기결정권이나 그 행사를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피고(집도의)의 직업 수행의 자유보다 우선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우선한 판결이지만, 여전히 모자보건법 14조 1항의 효력을 인정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현정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는 “결론은 타당하지만, 모자보건법의 효력을 인정한 점에서 자기모순이 발생한다”며 “일반 낙태죄는 사라졌지만 오히려 낙태 허용 예외 사유로 규정한 ‘강간에 의한 임신’ 등은 배우자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모순된 결론에 도달한다”고 말했다. 이어 “모자보건법 조항 삭제 등의 조치를 이행하지 않은 국회의 의무 방기 때문에 나온 한계”라며 “인권 기구는 반복적으로 낙태 비범죄화를 권고하고 있다. 국내 법원 판결도 인권 기준에 더 충실하도록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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