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 환절기 엽서 / 이경임

최미화 기자 2025. 9. 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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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가 지났으므로 이미 가을로 접어들었다.

환절기 엽서는 잔잔하게 읽힌다.

대개 사람들은 환절기를 앓는다.

이처럼 환절기 엽서는 아픔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는 시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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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 엽서 / 이경임

열꽃이 핀 저녁의 메마른 입술에는/ 처연한 이름 하나 오래 얹혀 있다/ 목젖을 넘지 못하는 붉디붉은 환절기// 오늘은 기어코 비가 내릴 것인가/ 한 무리 비구름 생각 속으로 몰려와/ 저 땅 끝 꽃의 진원을 보고야 말겠다니// 며칠 앓은 기척은 압화처럼 쌓여서/ 선명해지려는 안간힘 일몰에 젖고/ 자욱한 식은땀 같은 허기가 찾아온다// 세상에 아프지 않은 이들이 모여들어/ 싱싱한 저녁 밥상 왁자하게 차릴 때면/ 설레는 낯빛이 되어 훌훌 털고 가야겠다

『나의 사소한 연대기』(2024, 그루)

입추가 지났으므로 이미 가을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무더위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문득 환절기라는 말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계절이 바뀌면 생각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가을은 자칫 쓸쓸해질 수 있는 계절이어서 감상에 빠져 일상이 흐트러질 수 있다. 낙엽이 한두 잎 떨어지고 찬 바람이 불면 마음이 허전해지면서 흔들리게 된다.

「환절기 엽서」는 잔잔하게 읽힌다. 대개 사람들은 환절기를 앓는다. 철이 바뀔 때마다 몸이 잘 적응이 되지 않아서 동통으로 고생을 한다. 열꽃이 핀 저녁의 메마른 입술에는 처연한 이름 하나 오래 얹혀 있다, 라는 진술에 이어서 목젖을 넘지 못하는 붉디붉은 환절기가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둘째 수는 비 이야기 끝에 한 무리 비구름이 땅 끝 꽃의 진원을 보고야 말겠다, 라고 하는 느낌을 기술하고 있다. 셋째 수의 표현은 주목을 끈다. 즉 며칠 앓은 기척은 압화처럼 쌓여서 선명해지려는 안간힘 일몰에 젖고 자욱한 식은땀 같은 허기가 찾아오는 그 과정이 이채로운 직유로 의미에 깊이를 더하고 있다. 끝수는 괄목상대다. 세상에 아프지 않은 이들이 모여들어 싱싱한 저녁 밥상 왁자하게 차릴 때면 설레는 낯빛이 되어 훌훌 털고 가야겠다, 라고 마무리 짓는다. 기실 세상에 아프지 않은 이들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렇지만 싱싱한 저녁 밥상 앞에 앉으면 모든 아픔은 스러져갈 것이다. 이처럼 「환절기 엽서」는 아픔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는 시편이다.

「쉰」을 이어서 읽는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글을 쓰려고/ 모처럼 책상 앞에 엎드린 한밤중/ 먼 창밖 화려한 불빛들/ 이제는 생경하다// 한때는 저 속에서도 빛나는 별이었을 텐데/ 침침한 눈을 부비고 또 부비며 앉아/ 천체가 움직이는 소리 들어보려 애쓴다/ 별의 말 들을 줄 아는 시절에 이르러/ 이번 생 다녀간 기척이라도 남겨두려/ 별자리/ 한 땀 한 땀 기우며 나도 어두워져 간다.

이렇듯 빛나는 문학적 궤적, 즉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국을 명확하게 각인시킬 창작의 길을 묵묵히 걸을 일이다. 영예로운 화관족두리를 정수리에 얹을 날이 곧 도래할 터이니.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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