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보잉도 홀렸다”...K항공·방산 中企, 로봇으로 생산성 극대화
KAI와 협력…고품질·빠른 납기가 경쟁력
보잉, 벨 등 글로벌 기업에도 부품 공급
“AI 등 기술 변화 대응해야 성장 지속”

“위잉~ 드르륵 드르륵.”
지난달 12일 경남 사천일반산업단지(사천공단)에 있는 항공기 부품 제조업체 ‘피앤엘’ 생산공장 현장. 2m가 넘는 로봇팔이 한국항공우주(KAI)에 납품할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 주익 제작에 한창이었다. 로봇팔은 마치 레고 블록을 조립하는 것처럼 수십 개의 알루미늄 합금판에 구멍을 뚫고 볼팅(bolting)하며 T-50 주익을 조립하고 있었다.
신관우 피앤엘 대표는 “사람의 힘을 뛰어넘는 파워와 정교함을 지닌 로봇을 제조 현장에 투입해 생산성을 극대화했다”고 말했다.
피앤엘은 현재 KAI T-50 주익은 물론 글로벌 여객기 시장을 이끄는 프랑스 에어버스 A320 주익과 미국 보잉 B737 미익(꼬리 날개)도 제조하고 있다. KAI 부품 공급을 시작으로 해외 기업으로 판로를 넓혔다. KAI와 기술 협력을 한 결과였다. 피앤엘은 지난해 매출 550억원을 기록했다.
◇“높은 품질과 빠른 납기 경쟁력”
피앤엘의 핵심 경쟁력은 높은 품질과 빠른 납기 능력이다. 이는 로봇팔 도입과 함께 회사가 자체 개발한 생산 방식 ‘무빙셀(cell)’에서 비롯됐다. 항공기 제조는 컨베이어 벨트로 대표되는 자동 생산이 어려워 근로자들이 한 공간(셀)에서 제품을 조립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피앤엘은 과거 근로자 한 명이 하나의 기술을 습득해 해당 공정만을 맡게 했다면, 현재는 근로자가 주익 제조에 필요한 여러 공정 기술을 익히도록 해 전체 공정을 컨트롤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 결과 품질은 물론 생산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신 대표는 “무빙셀을 도입해 KAI 등 파트너사가 원하는 물량을 적기에 공급하는 것은 물론 비용도 20% 절감했다”고 말했다.
사실 피앤엘은 플랜트 배관 제조업체였다. 2007년 신 대표가 설립, 해양·육상 플랜트에 들어가는 모든 배관을 제조했다. 이후 2014년 회사의 지속성장을 위해 항공·방산업에 뛰어들었다. 배관 절단, 용접, 조립 등의 기술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피앤엘은 약 2년의 안정화 기간을 거친 후 KAI에 제품을 공급하기 시작했고, 해외로 비즈니스를 확장해 나갔다. 제로(0)였던 항공 부문 매출은 매년 증가해 지난해 2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회사 전체 매출의 36%에 이른다. 피앤엘은 항공 부문 성장을 바탕으로 올해 매출 700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사천공단에는 피앤엘과 같은 항공·방산 기업 28개사가 입주해 있다. 대부분 중소·중견기업으로 공단 전체의 40%에 이른다. 이들은 공단에 입주한 국내 대표 항공·방산 기업 KAI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기술 협력을 진행하며 성장했다.
이날 공단에서 만난 ‘하나에어로다이내믹스’도 마찬가지였다. 이 회사는 KAI의 T-50은 물론 초음속 전투기 KF-21, 기동 헬리콥터 수리온(KUH) 등 제조에 필요한 치공구를 개발·공급하며 성장했다. 항공기 치공구는 동체, 날개 등 주요 구조물을 조립할 때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하고 볼팅 등을 하는 핵심 장치다. 이 회사는 치공구를 직접 개발·제조하는 것을 넘어 자사의 치공구를 사용해 구조물을 빠르게 생산하는 경쟁력을 갖췄다.

지난해부터는 미국 벨사의 M412 헬리콥터 동체를 제조해 수출하고 있다. 사실 벨사는 다른 해외 기업에 M412 헬리콥터의 꼬리 날개 제조를 맡겼었다. 그러나 개발 및 생산 기간이 오래 걸렸고, 그 기회를 하나에어로다이내믹스가 잡았다.
이 회사 손창환 대표는 “우리가 기존 거래 기업보다 약 6배 빠르게 꼬리 날개를 개발, 납품해 벨사가 깜짝 놀라 계약을 체결했다”며 “이후 M412 헬리콥터 동체로 확장해 벨사에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결과 하나에어로다이내믹스는 지난해 매출 320억원을 기록했다. 2023년과 비교하면 128% 증가했다. 이 회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무인항공기, 위성 부문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내년 IPO(기업공개)도 준비 중이다.
◇중진공 자금 지원도 한몫…AI 기술 입혀야
사천공단 내 항공·방산 중소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또 다른 배경에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자금 지원도 있다.
피앤엘, 하나에어로다이내믹스 두 회사는 물론 사천공단에 있는 중소기업들은 중진공으로부터 사업 성장에 맞춰 설비 투자와 인력 확충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
중진공 관계자는 “유망 항공·방산 중소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맞춤형 자금 지원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천공단 내 중소 항공·방산 기업이 지속 성장하기 위해선 AI 기술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강은호 전북대 방산연구소장은 “중소·중견기업과 대기업의 협력 생산 시스템은 좋은 품질과 빠른 납기라는 K항공·방산 생태계의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 잡았고 사천공단은 그 중 한 곳”이라고 말했다.
강 소장은 이어 “향후 3~5년 동안은 이런 산업 생태계가 세계 시장에서 힘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다만 이후에도 생태계가 지속 발전하려면 AI 등 기술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기업 스스로 노력하고 정부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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