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에 맞서 승리하다 [김정한의 역사&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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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1년 9월 2일, 지중해의 운명을 바꾼 해전이 악티움에서 벌어졌다.
로마 공화정의 실권을 놓고 옥타비아누스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이 맞붙은 악티움 해전은 단순히 군사적 충돌을 넘어, 로마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안토니우스는 이 모습을 보고 망설임 없이 클레오파트라를 뒤쫓아 전열을 이탈했다.
악티움 해전의 승리는 옥타비아누스에게 로마의 유일한 권력자라는 지위를 안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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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기원전 31년 9월 2일, 지중해의 운명을 바꾼 해전이 악티움에서 벌어졌다. 로마 공화정의 실권을 놓고 옥타비아누스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이 맞붙은 악티움 해전은 단순히 군사적 충돌을 넘어, 로마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옥타비아누스는 아그리파가 지휘하는 400척의 함대로 안토니우스의 해상 봉쇄를 뚫고 싸움을 시작했다. 안토니우스는 500척이 넘는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이에 맞섰다. 그러나 안토니우스의 병력은 오랜 해상 생활로 인해 사기가 떨어져 있었고, 선박 또한 크고 무거워 기동성이 떨어졌다. 반면 옥타비아누스 측의 함대는 작고 날렵하여 치고 빠지는 전술에 유리했다.
전투는 안토니우스 연합군의 명백한 우세 속에서 시작되는 듯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전투가 한창이던 정오 무렵, 클레오파트라가 갑자기 60척의 이집트 함대를 이끌고 전장을 이탈한 것이다.
안토니우스는 이 모습을 보고 망설임 없이 클레오파트라를 뒤쫓아 전열을 이탈했다. 최고 지휘관의 갑작스러운 이탈은 연합군 병사들의 사기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지휘관을 잃은 안토니우스 함대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퇴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안토니우스 함대는 대부분이 파괴되거나 나포됐고, 수많은 병사가 목숨을 잃거나 포로가 됐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로 도망쳤지만, 옥타비아누스는 이듬해 이들을 끝까지 추격했다. 안토니우스는 절망 속에 자결을 선택했고, 클레오파트라는 독사가 든 바구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악티움 해전의 승리는 옥타비아누스에게 로마의 유일한 권력자라는 지위를 안겨줬다. 그는 이 승리를 발판으로 로마 공화정을 종식시키고, 스스로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으며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가 됐다. 악티움 해전은 로마 공화정 시대의 종말과 로마 제국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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