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박물관수 ‘풀이 자라나는 소리를 들어보렴’ 특별전

곽성일 기자 2025. 9. 1. 21:1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합천한의학박물관 협업…자수의 상징성과 삶의 의미 재조명
전통 향·체험·인형극 어우러진 오감 전시…이달 30일까지
▲ 대구 수성구의 박물관수(繡)가 8월 31일 특별전 '풀이 자라나는 소리를 들어보렴'을 개막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대구 수성구 박물관수(繡)의 전시실에는 수백 년 전 여인들의 손끝에서 태어난 자수 작품들이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8월 31일 개막한 특별전 '풀이 자라나는 소리를 들어보렴'의 현장이다.

이번 전시는 박물관수(대구 수성구 국채보상로186길 79)가 경남 합천군의 합천한의학박물관과 손을 잡고 마련한 협업의 결실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박물관협회의 전시교류지원사업 일환으로 이달 30일까지 한 달간 진행된다.

전시장을 천천히 걸으며 작품들을 살펴보니, 각각의 자수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모란문 자수베갯모 앞에서 한 관람객이 발걸음을 멈춘다. "이 모란 하나하나가 다 의미가 있다니, 몰랐어요." 그의 말처럼 모란은 부귀를, 연꽃은 재생을, 매화는 절개와 희망을 상징한다. 바느질된 문양 하나하나가 곧 삶의 기도문이었던 셈이다.

이 전시의 독특함은 '향기'라는 비가시적 감각을 중심축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관람객들은 자수를 보며 전통 향을 맡고, 음악과 함께 바느질의 리듬을 느낀다. 한 어머니는 초등학생 딸의 손을 잡고 향낭 만들기 체험에 참여하고 있었다. "엄마도 어릴 때 할머니한테 이런 거 배웠는데, 이제 딸한테 전해주네요."

전통 향기를 담은 향낭 만들기부터 동물 인형 바느질, 풍경 엽서 제작까지 아이부터 어른까지 참여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특히 인형극 '중칠우쟁론기-예쁜 옷은 누가 만들지?'는 전통 자수 이야기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풀어내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 대구 수성구의 박물관수(繡)가 8월 31일 특별전 '풀이 자라나는 소리를 들어보렴'을 개막했다.

자수는 오랫동안 여성의 영역으로 국한돼 '사소한 바느질' 정도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그 안에 담긴 상징성과 정서, 공동체 가치를 새롭게 조명한다.

전시를 기획한 박물관수 관계자는 "실 한 올, 바늘 한 땀에도 당시 여성들의 삶과 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적 관점에서도 패션과 디자인 산업에서 전통 자수 기법을 활용한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는 전통 공예의 유산이 오늘의 삶과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번 특별전은 지역 박물관이 대형 국립기관과는 다른 방식으로 관람객과 소통하는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지역성과 창의성을 무기로 삼아 관람객들에게 깊이 있는 문화 체험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전시교류지원사업을 통한 박물관 간 협업도 주목할 만하다. 대구와 합천이라는 지역적 거리를 뛰어넘어 두 박물관이 각자의 전문성을 결합한 결과, 지역민은 물론 타 지역 관람객들에게도 의미 있는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전시장을 나서며 다시 한 번 향기가 스친다. '풀이 자라나는 소리를 들어보렴'이라는 제목처럼, 이 전시는 풀잎이 자라나는 소리만큼 미세하지만 깊은 감각을 일깨운다. 수백 년 전 여인들의 손끝에서 시작된 작은 실땀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듣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