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경제발전 이끈 실크산업, 1990년대부터 내리막길 “이대로는 안 된다” 위기감 고조…변화, 혁신, 생존 고심 순실크, 시장 경쟁 강화형 제품화 개발 지원사업에 선정 2022년 실크커피 출시, 진주 특화 대표 관광상품 도전장
진주는 과거 실크의 고장이었다.
진주의 실크산업은 우리나라 실크 원단 생산량의 70~80%를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 5대 명산지로 인정받고 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온 전통산업이며 지역 경제 발전을 이끌어 왔다.
하지만 중국산 값싼 원단에 밀리고 넥타이, 스카프 등 생산 제품의 한계성, 재투자 소홀, 대체 섬유의 발전 등으로 2000년대 들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실크커피를 만든 사람들. 사진 왼쪽부터 경남유용곤충연구소 배상문 박사, 홍성빈 커피 전문가, 한국실크연구원 배상은 연구원, 순실크 박태현 대표이사, HMD 하치일 대표, JES코퍼레이션 조남정 대표, 비타민 프로덕션 류정민 대표. 사진=순실크
문산읍 실크전문농공단지에 위치한 '순실크'는 박태현 대표이사가 대(代)를 이어 경영하고 있는 실크전문 기업이다. 박 대표이사는 "향토산업을 이어가겠다"는 사명감으로 힘든 길을 뚜벅뚜벅 걸어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2021년 박태현 대표는 지인의 권유로 실크커피 개발을 추진했다. 실크에 관해서는 박사였지만 커피에는 문외한이었다. 이후 박 대표는 회사 일은 직원들에게 맡긴 후 커피에 빠져 살았다.
2022년 '시장 경쟁 강화형 제품화 개발 지원사업(실크&문화 콜라보 컨텐츠)' 사업에 선정된 박태현 대표는 본격적으로 실크커피 개발에 들어갔다. 그는 "똑같은 제품은 많지만, 흥미 있는 스토리를 가진 것은 흔하지 않다"는 신념으로 한국실크연구원, 경남유용곤충연구소, 홍성빈 커피 전문가 등과 협업해 실크커피 개발에 매달렸고 마침내 그해 9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실크커피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순실크에서 개발한 다양한 실크커피 제품들.
실크커피는 실크를 만드는 원료(누에)에서 추출한 유익한 단백질 성분을 배양해 커피 원두(게이샤·아라비카 생두 브렌딩)에 입혀 맛과 향을 높인 커피다. 실크 명산지인 진주시와 현대인의 필수 음료인 커피라는 소재를 융합해 향토 산업형 관광 상품을 만들었다.
실크커피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9월 30일 진주시청에서 시음회를 가졌는데 실크커피를 맛본 공무원들은 "맛이 담백하고 깔끔하다", "특이하다", "더치 같은 느낌이며 맛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시 시음회 참석해 직접 맛을 본 조규일 진주시장은 "실크커피는 누에가 탈피를 통해 실크가 된 것처럼, 한복·스카프 등의 의류에서 탈피해 식품·먹거리로 성장하고 있다"며 "진주 실크산업의 활성화로 효과가 이어질 수 있도록 진주시도 관심을 가지겠다"고 했다.
2023년 8월에는 해외 진출을 위해 대만에서 시음회를 열었다. 2020년 기준 대만의 커피 시장 규모는 대만달러 800억(한화 약 3조 4000억)을 돌파했다. 시음회는 타이베이 최대 야시장인 '스린 야시장'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딤섬 레스토랑 등 맛집이 즐비해 여행자들의 필수코스가 된 융캉제, 미국 등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부자 동네인 톈무(티엔무) 광장에서 하루씩 열렸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실크커피는 대만 시음회를 기점으로 꾸준히 대만 수출을 추진했고 지난해 12월 결실을 봤다. 대만 타이중 시툰구(윈저 호텔 타이중 인근)에 위치한 'K-브랜드 스토어'에 실크커피가 입점해 판매를 시작했다.
2022년부터 시작된 박태현 대표이사의 도전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실크커피가 입소문을 타면서 판매량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2023년 '진주드림쇼핑몰'에 입점했고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으로 선정됐다. 또한 드립백 커피, 포션, 실크 츄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 판매처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박태현 대표이사는 "최근에는 커피 선물 세트도 제작했다. 지금부터 또 다른 시작이다. 실크커피가 반짝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진주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으로 확실히 자리매김 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정희성·정웅교기자
2023년 8월 27일 대만 타이베이 톈무(티엔무) 광장에서 진주 실크커피 시음회가 열린 가운데 지역 주민들이 커피 맛을 보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사진=경남일보DB
진주 순실크 박태현 대표이사 "실크커피, 진주 특화 관광 상품으로 키울 것"
"실크커피요? 그게 잘 되겠습니까?"
박태현 대표이사가 처음 실크커피를 개발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물론 말처럼 실크커피 개발은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많은 난관에 부딪혔고 때로는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박태현 대표이사는 개발에 함께 참여한 이들과 함께 묵묵히 한 발씩 전진했다.
그는 "실크커피 개발은 실크산업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개발 과정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실크커피 성공을 위해 많은 응원을 보내준 이들과, 개발에 함께 참여한 동지들 덕분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힘을 낼 것"이라며 "실크커피를 진주 특화 관광 상품으로 키워서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싶다. 또한 실크커피를 통해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진주의 향토산업인 실크산업이 재도약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걸음마를 뗀 실크커피가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시장 경쟁 강화형 제품화 개발 지원사업'의 연속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박태현 대표이사와의 일문일답.
순실크 박태현 대표이사
-실크커피를 개발하게 된 계기는.
▲진주하면 생각나는 명소와 먹거리는 많지만, 막상 방문용 특산품으로 구입할 수 있는 관광 상품이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지인의 권유가 있었다.
몇 년 전 사천에서 발효커피가 만들어졌다. 발효커피는 일반커피 제조방식과 달리 사천시친환경미생물발효연구재단에서 개발한 종균과 동아(冬瓜)추출물을 활용해 생원두를 발효시킨 드립백 커피다. 발효커피에서 힌트를 얻어 실크커피를 만들게 됐다. 진주의 오랜 향토산업인 진주실크와 현대인들의 기호 식품인 커피를 콜라보 해서 진주만의 특화 관광 상품을 만든 것이다.
-지금까지 개발 과정과 성과에 대해 설명해 달라.
▲한국실크연구원의 '시장 경쟁 강화형 제품화 개발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경남도 산하의 유용곤충연구소를 비롯해 14명의 각 분야 전문가와 소통과 협업으로 시작하게 됐다.
유용곤충연구소의 누에 분말 액상화 기술, 그리고 한국실크연구원과 순실크의 복합 기술을 활용해 단백질과 고급 원두와의 결합을 성공시켰다. 처음 이 사업을 시작했을 때 커피에 대해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진주 BS커피바리스타 트레이닝 아카데미 홍성빈 대표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또한 진주시를 비롯해 많은 분의 도움과 관심 덕분에 지금까지 꾸준히 실크커피를 생산·판매하고 있다.
실크커피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하지만 대만에 실크커피를 조금씩 수출하기 시작했고 국내외 온오프라인을 통해 지속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특히 대만을 전진기지로 삼아 말레이시아, 홍콩, 싱가포르, 일본 네트워크 판매화를 위해 각 국의 기업들과 교류 및 업무 협약도 진행 중이다.
국내 판매는 온라인 판매에 주력하고 있다. 고향사랑e음, 진주드림쇼핑물 등에서 주문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고향 상품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많다. 최근에는 자체 쇼핑몰도 오픈해 판매하는 등 다양한 판매 루트를 확보해 나가고 있다. 국내 판매가 본궤도에 오르면 해외수출도 본격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실크커피 개발과 관련해 힘든 점이 있었다면.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이었다. 실크커피를 개발하는 과정도 아주 힘들었지만 뜻을 같이한 분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이겨 낼 수 있었다. 특히 "잘 되겠어?"라며 실크커피 개발을 폄하하거나 나중에 실크커피가 관심을 끌자 시기·질투하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다.
실크산업은 현재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실크산업 종사자로서 원단만으로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새로운 산업과 융복합해 신산업을 만들어 새로운 도약을 하고자 시작한 일이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실크커피 성공을 위해 많은 응원을 보내준 이들과 개발에 함께한 동지들 덕분에 행복하고 즐거웠다. 앞으로도 계속 힘을 낼 것이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지속적으로 실크커피 신상품을 개발해 제품군을 확장하는 것이다. 원두를 갈아 만든 '실크커피 드립백'부터 시작해 액상 커피인 '실크커피 포션'까지 신상품이 나왔다. 포션은 기계가 필요한 캡슐과 달리 뚜껑만 뜯어 물에 부어 마시는 형태로 돼 있어 휴대가 편하고 신선한 맛과 풍미를 지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껌처럼 계속해서 씹어 먹는 실크커피 제품인 '실크 츄'도 출시했다. 앞으로 간단하게 타 먹는 '실크커피 스틱과 믹스' 등도 계속 개발해서 출시할 계획이다. 소비자들의 관심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향토 음식이 지역의 관광 상품이 되기 위해 필수조건이 있다면.
▲첫째는 진정성이라고 생각한다. 제품에 마음을 담아야 한다. 맛은 기본이고 포장 디자인까지 모든 것을 고민해야 한다. 제품을 보면 진주가 생각날 수 있는 완벽한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는 지속성이다.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구입한 고객은 재구매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제품의 질도 좋아야 하고 온라인 쇼핑몰 등을 통해 쉽게 살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어야 한다.
셋째는 스토리텔링이다. 제품에 스토리텔링이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실크커피 역시 스토리가 있다. 사람들은 '실크커피'라는 단어를 들으면 호기심이 생긴다. 실크커피에는 진주실크의 흥망성쇠와 관련된 스토리가 녹아있다. 지역 특산물을 재료로 좋은 제품을 만들고 여기에 스토리가 더해지면 관광 상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