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극한 가뭄

정진오 국장 2025. 9. 1. 20:0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극한 폭우, 극한 폭염, 극한 가뭄. 올 여름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극한에 맞닥뜨리고 있다. 강원도 강릉 일대에 극한 가뭄으로 재난사태가 선포됐다. 전국 각지가 폭우로 피해를 입고 있는 가운데서도 강릉 지역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강릉의 물부족 상황이 빨래는커녕 설거지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심각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일본, 미국 순방 후 첫 주말 강릉을 찾아 가뭄 상황을 점검하고 국가적 가용 수단을 총동원해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우리나라에서 국가 수반은 가뭄이나 장마 등 돌발 기상 상황에 유난히 민감하다. 국정 책임자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중간 매개자라는 아주 오래된 인식 탓이다.

예전부터 우리는 비를 비는 기우제를 특별한 국가행사로 여겼다. 신라에서는 혜수(惠樹)라는 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는데, 그곳이 어느 곳인지는 특정할 수 없지만 이름만큼은 은혜를 내려주는 나무라는 뜻이니 기우제와 딱 들어맞는다. 고려에서의 기우제 기록은 더욱 다양하다. 비가 적게 올 경우 억울함을 호소하는 죄수를 다시 심리했고, 궁핍한 백성을 진휼했으며, 깊은 산이나 바다에 나가 기도했다. 그래도 가뭄이 심하면 기우단에 제사를 지내고, 도살(屠殺)을 금했다. 비의 양에 따른 그때마다의 격식이 따로 있었다.

1219년 여름부터 1220년 여름까지 계양부 부사로 나와 있던 이규보의 ‘비를 비는 제문’은 절절하기 그지없다. 한 지방의 가뭄은 그 고을의 수령 탓이라고 전제하면서 이규보 본인이 들에 나가 보니 벼싹이 다 말랐고, 흙덩이에 넘어진 게 마치 침(針)이 꺾어진 듯하여 당장 오늘내일이라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올 가을걷이는 없을 것이라면서 비를 내려달라고 사정한다.

이제는 옛날처럼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기만을 마냥 기다리고만 있어야 하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인천 강화도가 극한 가뭄에 극심한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 당시 대통령까지 나서 소방차 호스로 바짝 타들어가는 강화도 논에 물을 댔다. 이 일이 있은 후 한강의 물을 강화군에까지 끌어올 수 있었다. 강릉은 그때 강화의 가뭄을 남의 일인 양 여겼던 모양이다. 전혀 대비가 없었으니 말이다. 극한이란 말은 우리가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끝지점일 텐데, 이제 그 극한이란 말이 일상이 되다시피했다. 극한 기후 대비도 극한으로 해야 할 때다.

/정진오 국장

Copyright © 경인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