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지식인 비판한 ‘자기만의 방’…페미니즘 연극 문을 열다

여성학 공부·기자 일 병행 갈무리
10년 만에 미국생활 접고 귀국
문화일보 입사해 ‘여성전문기자’로
뉴욕 페미니즘 연극 ‘자기만의 방’
귀국 1년 뒤 무대화 성사시켜
마광수·김용옥·김지하 여성관 비판
“여자 말하고 남자 들을 차례” 일갈
여성 성기 소재 삼은 페미니즘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 전세계 히트에
책 번역 뒤 한국서도 무대 올려 각광
‘위안부’ 증언 들어간 10돌 개정판도
1991년 9월 10년 가까운 뉴욕살이를 끝내고 초등학교 3학년을 마친 딸아이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박사논문을 마치지 못해 미국에 남아 있었고 나는 더 늦기 전에 한국에 자리를 잡기 위해 돌아온 것이었다. 딸아이는 경기도 이천 외할머니댁으로 갔고, 나는 서울에서 오피스텔을 얻어 생활하면서 주말에만 엄마 노릇을 했다. 귀국 직후엔 과거 강제해직을 당했던 합동통신의 후신인 연합뉴스에 복직을 시도했다. 그러나 당시 사장은 ‘차장 자리라도 주어야 하는데 여자들이 많다’고 난색을 표명해 무산됐다. 또 한겨레에 합류하려 하자 당시 한겨레에서 일하던 80년 해직 동료, 선배들이 ‘월급이 적다’고 만류했다. 결국 그해 11월 창간한 문화일보로 들어가게 되었다. 문화일보에 들어가서는 여성학을 공부했기에 ‘여성전문기자’라는 타이틀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려 애쓰며 기자생활을 했다.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로 나를 대중에 알리게 된 계기는 엉뚱하게도 연극에서 왔다. 나는 본격 페미니즘 연극을 내건 ‘자기만의 방’ 시나리오 작업을 했는데, 서울에서만 5만 관객을 동원하는 예상 밖의 대성공을 거뒀다. 강연극 형식의 1인극인 이 연극은 1992년 11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8개월 동안 4차 연장공연에 들어갔고, ‘공격적 페미니즘의 한국 상륙’이라는 평을 들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이 연극은 이제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은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됐지만, 거의 우격다짐으로 공연을 밀어붙이고 직접 대본을 쓰기까지 한 나에겐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애초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집 ‘자기만의 방’이 연극 공연으로, 그것도 모노드라마로 무대에 올라간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미국에 있던 1990년이었다. 미주조선일보에서 일하며 뉴욕타임스 등의 신문을 매일 읽는 게 일이었기에 그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영국 중견 여배우가 쇼트커트 머리와 넥타이 정장차림으로 런던 무대에 올린 ‘자기만의 방’은 곧 뉴욕 브로드웨이로 진출해 의미 있는 성공을 거뒀고, 나는 1991년 귀국길에 그 공연을 비디오로 떠 왔다. 한국에서도 ‘자기만의 방’을 연극으로 올리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던 까닭이다.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91년 10월쯤이었다. 뉴욕에서부터 가까이 지냈던 정현경 교수를 만나러 이화여대로 가던 길에 지하철에서 우연히 역시 뉴욕에서부터 알았던 배우 이영란씨를 만났다. 그렇게 지하철 상봉을 한 이영란씨에게 ‘자기만의 방’ 얘기를 했고 우린 금방 의기투합해 그것을 무대에 올리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곧 이혜경씨를 중심으로 페미니즘 예술 활동을 준비하던 ‘여성문화예술기획’에 합류해 ‘자기만의 방’ 공연을 위한 준비 작업을 더 구체화해 나갔다.

모두 3장으로 이루어진 한국판 ‘자기만의 방’에서 가장 도드라진 것은 남성 작가들에 대한 비판이었다. 1장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편견을 대변하는 인물로 당대 지식인을 대표하는 세 남성, 마손톱(마광수), 김동양(김용옥), 김생명(김지하)을 등장시켜 그들이 지닌 남성 중심 사고를 폭로하며 ‘남성이 파악하고 있는 여성’이 현실의 여성들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를 지적했다. 또한 가부장제 문화가 창조한 여성들로 조선시대 춘향과 심청, 현대의 경아(1973년작 최인호 ‘별들의 고향’의 여주인공), 이화(1975년 연재 조해일 ‘겨울여자’의 여주인공), 애마부인(1980년대 유행한 에로영화 시리즈의 여주인공)을 등장시켜 허구 속의 여성들인 그들이 남성 중심적 문화의 산물임을 비판했다.
2장에서는 남성들이 만들고 기록한 역사에 여성의 존재감이 부재한 것을 비판하고 역사 속에 스러져 간 여성 예술가를 찾고자 했다. 실재인물이었던 황진이, 어우동, 사임당, 허난설헌 등이 허구의 인물인 춘향, 심청과 대비된다. 3장에서는 현대 여성들이 등장하여 오늘날 여성들이 부딪히는 문제를 말하며 이 연극의 내레이터이자 주인공을 공격한다. 그는 동성의 여성들로부터 오는 이 공격으로 ‘권위 있는 강연자’에서 똑같이 여성 문제를 안고 있는 수많은 여성 중의 하나로 추락한다.
페미니즘 모노드라마로 탈바꿈한 한국판 ‘자기만의 방’ 최종 대본은 공동 작업의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그 공동 작업이 만만치는 않았다. 처음에는 내로라하는 당대의 남성 지식인들을 거의 실명과 같은 마손톱, 김동양, 김생명으로 부르며 희화화해 비판하는 것에 같이 연극을 준비하는 여성들도 난색을 표했다.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지주와 같은 평가를 받았던 김지하의 경우 반발은 더 심했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그들이 설파하는 ‘여성론’의 남성 중심성을 폭로해야 한다면서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결과적으로 다음의 대사가 들어갈 수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단 한가지뿐입니다. 그대 남자여, 입을 닥쳐라! 피곤하다! 남자들은 너무나 많은 말을 해왔습니다. 여자들은 역사 이래로 듣는 일만 해왔습니다. 이제는 남자들이 들을 차례입니다. 여자에 관해서 그들 자신에게 말하게 하라! 그리고 듣는 법을 배워라! 그대들이 말함으로써 여자들의 말할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발 깨달아라!”
그러나 그 모든 것이 30여년 전의 일이다. 이제 나는 나이 70대에 들어서 어느새 꼰대 소리도 듣는 ‘올드 페미’가 됐다. 그럼 지금의 나는 어떤가? 여전히 남자들에게 입 닥치라고 호통을 칠 수 있는가?
비판의 대상이었던 세 남성 중 마광수와 김지하 두 사람이 이미 고인이 되었다. 마광수 교수는 지난 2017년 향년 66살에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소설에까지 과도한 공권력 잣대를 들이대던 사회 분위기에 희생양이 되었지만, 남성의 쾌락을 중심으로 여성의 성적 자유를 재단하려 했던 한계가 또렷하다. 또 모성·자애·살림의 전통적 여성성을 강조하면서 페미니즘을 부정적으로 본 김지하 시인도, 지난 2022년 5월 향년 81살로 타계했다. 떠난 뒤에야 알려졌지만 그는 살아생전 열두번이나 정신병원에 입원해야할 정도로 극심한 고통 속에 살았다고 한다. 이들의 여성관에는 여전히 할 말이 많지만, 이제 나는 고단한 인생을 살았던 두 사람의 영전에 꽃이라도 바치고 싶은 심정이 들기도 한다.

‘자기만의 방’에 이어 꼭 언급하고 싶은 연극이 또 한편 있다. 세계적인 여성운동가이자 미국 극작가 이브 엔슬러의 ‘버자이너 모놀로그’다. 이는 금기시되었던 여성의 성기를 소재 삼아 전세계에 충격파를 던진 작품으로, 여성의 몸과 성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담았다. 내가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처음 만난 것도 1998년 뉴욕타임스 기사를 통해서였다. 당시 문화일보 국제부에 근무하고 있을 때라 매일 외신을 보는 것이 일이었기에 그 심상치 않은 연극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이브 엔슬러가 직접 보스니아 난민 여성들을 포함한 200여명의 여성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이후 전세계 100여개 국가에서 45개 언어로 상연되는 글로벌 히트작이 되었다.
미국 뉴욕에서 열린 자선공연엔 글렌 클로스, 우피 골드버그 등 할리우드의 기라성 같은 여배우들이 모두 무료 출연했고 1000달러짜리 비싼 티켓이 불티나게 팔렸으며, 공연 수익금 모두가 보스니아 난민 여성들을 위해 쓰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 가슴은 마구 뛰기 시작했다. 나는 그날 저녁 바로 뉴욕에 있는 지인에게 연락해 ‘버자이너 모놀로그’ 책을 공수받아 번역에 들어갔다. 번역 작업은 곧 끝났으나 우여곡절 끝에 책이 출판되고 연극이 무대에 오른 것은 수년 뒤였다. 2001년 5월 여성문화예술기획 이혜경 대표의 연출로 김지숙, 예지원, 이경미 등 세명의 배우를 주인공으로 국내 무대에 처음 소개되었는데, 이후 배우 서주희의 모노드라마로 각색돼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재공연을 거듭하는 등 당시 대학로 최고의 화제작이 되었다. 또한 2009년 8월에는 원저자가 한국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토대로 모놀로그 ‘말하라’를 포함해 다섯편을 추가해 ‘버자이너 모놀로그’ 10주년 개정판이 출간되기도 했다.

유숙열 | 나이 서른을 넘긴 1980년대 중반부터 극렬 페미니스트로 살고 있다. 합동통신 기자로 재직 중 1980년 해직된 뒤 1982년 결혼해 미국 뉴욕으로 떠났다. 1984~1990년 미주조선일보에서 기자로 일하며 뉴욕시립대 대학원에서 여성학 석사학위 취득. 1991~2004년 문화일보 국제부 차장, 생활건강부장, 여성전문위원. 1997년 ‘페미니스트저널 이프’(if)를 창간했다. 2003~2006년 2기 방송위원회 위원. 현 이프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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