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굿간에서 그린 물방울…50년 애도의 여정
뉴욕시기 미공개작 31점 통해서
‘물방울’로 향하는 전환기 조명
회화·기록·조각 등 120점 전시
“여전히 못 그린 물방울이 많다”
![왼쪽에 나란히 걸린 세 점은 1960년대의 ‘제사’ 연작이다. [국립현대미술관]](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01/mk/20250901173603154xsve.jpg)
과도기를 거쳐 김창열은 마침내 물방울에 도달한다. 1969년 뉴욕에서 파리로 이주해 물새는 다락방에 정착했다. 쌀도 화장실도 없이 신혼 생활을 하며 자신의 조형 언어를 찾으려 마굿간에서 그림을 그렸다.
이 시기의 ‘현상’ 연작은 인체의 장기처럼 원형의 점액질로 표현된다. 둥글둥굴한 원형의 드로잉을 거쳐 종국에는 화폭에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김창열의 뉴욕 시기 미공개 회화 8점과 드로잉 작업 11점, 최초의 물방울 작품으로 알려진 ‘밤에 일어난 일’(1972)보다 앞서 제작된 1971년의 물방울 회화 2점이 최초로 공개됐다.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김창열의 작고 이후 첫 대규모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8월 22일부터 12월 21일 열린다. 6, 7, 8전시실에 상흔, 현상, 물방울, 회귀 네 개의 주제로 대표작 120여 점을 펼쳐보인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미흡했던 김창열 작가에 대한 연구를 심화하여, 한국미술의 정체성과 동시대적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라고 ‘미술의 가을’에 이 대형 회고전을 기획한 이유를 밝혔다.
![물방울에 이르는 과정을 엿보게 하는 1969년작 ‘무제’ [국립현대미술관]](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01/mk/20250901173604420qggl.jpg)
이번 전시에는 희귀작이 많다. 앵포르멜 이전 시기의 작품으로는 첫 공개되는 1955년 작 ‘해바라기’와 경찰시절 경찰전문학교의 격월간지 ‘경찰신조’의 표지화 등에서는 그의 구상화 시절을 만날 수 있다.
1950년대 후반, 김창열은 새로운 미술에 대한 열망을 품고 상처를 형상화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된 ‘현대미술가협회’ 창립을 주도하며 한국 앵포르멜 운동을 이끌었다.
전시를 기획한 설원지 학예연구사는 “1965년 총알을 맞은 인체 살갗에 대한 표현을 한 앵포르멜 회화를 제8회 상파울로비엔날레에 출품했는데 구멍들이 거칠게 표현된 이 작품을 통해 상처가 물방울에 이르는 여정을 엿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1967년 ‘제사’는 저승처럼 어두운 색조 위에 획을 그어 떠나간 이들의 넋을 기린다. 뉴욕에서도 캔버스를 통해 떠나간 이들을 위로했다. 이 시기 그림들은 캔버스에 자신의 상처를 아로새긴 것처럼 처연하고, 마크 로스코처럼 울림을 준다.
김창열은 “6.25 전쟁 중에 중학교 동창 120명 중 60명이 죽었고, 그 상흔을 총알 맞은 살갗의 구멍이라고 생각하며 물방울을 그렸다. 근원은 거기였다”라고 토로했다.
![어두운 공간에 ‘물방울’을 홀로 걸어 놓은 물방울의 방. [국립현대미술관]](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01/mk/20250901173605676vuam.jpg)
파리에서 김창열 작가의 문패에는 이름 대신 물방울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덕분에 자연스레 ‘무슈 구뜨(Monsieur Gouttes, 물방울 씨)’로 불렸다. 물방울 씨의 작업실도 재현됐다. 지상에서 지하로 이어진 전시장은 더 어둡고 동굴처럼 꾸며졌다. 파리 그랑 팔레 등 유수의 미술관 전시를 디자인한 아드리앙 가르데르가 이번 전시장을 꾸몄다.
가르데르는 “김창열의 평창동 창문 없는 지하 작업실을 우규승 건축가는 엄마의 자궁 같은 곳이라고 했다. 높은 층고와 지하를 활용해 그 공간을 재현하고 싶었다. 창작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그의 빈 캔버스를 가득 비치했다”라고 설명했다. 아틀리에 같은 이 공간에는 파리서 가져와 처음 공개되는 상흔과 물방울이 함께 그려진 1986년작 ‘물방울’ 소품 2점이 나란히 걸려 있으니 놓치지 말자.
![처음 공개되는 1986년작 ‘물방울’ [국립현대미술관]](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01/mk/20250901173607005deam.jpg)
노년에 이르러 ‘회귀’ 연작은 삶의 상흔을 붓질로 꿰매는 진혼의 행위로 승화됐다. 만년의 작가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도 물방울이 되고 싶다”라고 자주 말하곤 했다.
8전시실에서는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상형시 ‘Il pleut(비가 온다)’에서 착안해 제작한 ‘Il pleut(비가 온다)’(1973)도 소개된다. 물방울로 시의 구조를 번역해낸 이 작품은 국내외에서 처음으로 전시된다. 르몽드지에 그린 드로잉,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기록과 작업실 풍경을 담은 대형 사진도 이 공간에 걸린다.
설원지 학예연구사는 흥미롭게도 작가의 ‘노란색’에 주목했다. “전쟁의 참혹기에도 노란색 바탕에 스크레치를 그은 작업이 많았고, 물방울도 회귀도 노란 바탕의 작업이 많았다. 인간의 죽음을 체험하면서도 삶의 생명력을 부여잡고 있었던 걸 상징하는 게 노란색이지 않을까 싶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유족을 통해 전해진 작가의 마지막 육성은 “나는 여전히 못그린 물방울이 많다”였다. 50년을 그렸는데도 그에게는 더 흘러내릴 물방울이 남아 있었나 보다.
![후기 작업인 ‘회귀’ 연작이 걸려 있다. [국립현대미술관]](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01/mk/20250901173608306ygn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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