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0개 점포 모두 조회 수 ‘급증’…대전 지하상가의 수상한 입찰 공고

최예린 기자 2025. 9. 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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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중앙로지하상가에서 옷가게를 운영 중인 박명준(가명·38)씨가 지난해 5월 진행된 지하상가 공개경쟁입찰에서 자기 점포 결과가 나온 ‘온라인 입찰 시스템’(온비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화면을 가리키고 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단독 입찰?’

낙찰받았다는 기쁨도 잠시, 박명준(가명·38)씨는 쇠망치로 얻어맞은 듯 휘청였다. 대전 중앙로지하상가에서 10년째 옷가게를 운영하는 박씨에게 지하상가 점포는 ‘젊은 날의 모든 것’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도 대출까지 받아가며 버티고 지켜낸 ‘삶의 터전’을 빼앗긴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중앙로지하상가 점포(총 440곳) 사용허가 공개경쟁입찰이 시작되자 그의 불안은 하루하루 눈덩이처럼 커졌다. 최근 중앙로지하상가에서 만난 박씨는 충혈된 눈으로 “일터를 지키려는 절박함이 절망과 분노로 돌아왔다”며 허탈해 했다.

“제 점포의 입찰공고 조회수가 거의 매일 20∼40회씩 늘어서, 마감 직전엔 140∼150회가 넘어가더라고요. 코로나 때 빌린 대출금도 못 갚은 상황에서 이대로 쫓겨날지 모른다 생각하니 너무 두려웠어요. 전전긍긍하다 막판에 최저입찰가의 3배 이상 적어낸 건데, 결과가 ‘단독 입찰’이라니…. 그 순간 전세사기를 당한 것 같은 충격을 받았어요.”

대전 중앙로지하상가 모습. 지하상가 운영·관리 주체인 대전시 시설관리공단의 ‘투명하고 깨끗한 중앙로지하도상가 운영을 약속드립니다’라고 적힌 안내문이 보인다. 최예린 기자

이상하리만치 높은 입찰 조회수에 “속았다”는 중앙로지하상가 상인은 부지기수다. 휴대폰 대리점을 하는 강형석(가명·57)씨 점포의 월세도 지난해 공개입찰 뒤 198만원에서 550만원으로 3배 가까이 뛰었다. 강씨 역시 박씨처럼 130회를 훌쩍 넘는 누적 조회수에 “애가 타 입찰가를 높였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입찰 당시 다른 점포도 조회수가 높다는 얘기가 돌며 지하상가 전체에 불안감이 커졌고, 내 가게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에 입찰 마감 직전엔 집단적 공포심까지 느꼈다”고 말했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와 중앙로지하상가 상인들이 한국자산관리공사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확보한 ‘공공자산 온라인 입찰 시스템’(온비드)의 ‘2024년 중앙로지하도상가 점포 사용허가자 선정입찰’ 자료를 보면, 입찰 기간(2024년 5월23∼29일) 440개 점포의 입찰공고 누적 조회수 평균은 약 154회였다. 예외 없이 모든 점포의 입찰공고가 7일간 130회 이상 조회수를 기록했고, 에이(A)구역의 한 점포는 누적 조회수가 351회에 달하기도 했다. 에이부터 디(D)구역까지 점포마다 위치·크기별로 가치와 관심도가 제각각인데도 거의 모든 점포의 조회수가 비슷했고, 일별 조회수 패턴마저 똑같았다.

신기하게도 440개 입찰공고 모두 5월27일 단 하루만 조회수가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가 다음날 다시 늘어났다. 온비드 시스템상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는 게시물의 조회수 집계가 안 되기 때문에, 해당 조회수는 모두 컴퓨터로 접속한 결과치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와 중앙로지하상가비상대책위가 한국자산관리공사에 정보공개 청구해 확보한 ‘공공자산 온라인 입찰 시스템’(온비드)의 ‘2024년 중앙로지하도상가 점포 사용허가자 선정입찰’ 자료를 토대로 작성한 440개 점포 입찰공고 일별 평균 조회수 그래프. 각각 가치와 관심도가 다른 4개 구역 440개 점포의 입찰공고 일일 조회수가 거의 동일한 패턴을 나타낸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제공

김재섭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60% 가까운 점포가 단독 입찰이거나 유찰이었는데 모든 점포의 조회수가 130회를 넘긴 것도 이상하지만, 꼭 짠 것처럼 모든 점포의 조회수가 5월27일에만 급격하게 줄어든 것은 더욱 비정상적”이라며 “심지어 440개 점포의 일별조회수 그래프가 구역·위치와 상관없이 동일한 패턴을 보이는데, 점포별 입지에 따라 가치·관심도의 차이가 있는데도 모든 점포의 일별조회수 패턴이 같다는 건 의도적인 개입 가능성을 의심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 처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시장이던 때인 2015년 경기 성남시의 지하상가 입찰 경우 평균 조회 건수가 54회에 불과하고, 심지어 현재까지 10년간 누적치”라며 “성남시 사례는 일별조회수 패턴도 점포마다 구역마다 제각각으로, 수백개가 같은 패턴인 대전과는 판이하다”고 설명했다.

대전 중앙로지하상가 상인 224명이 참여한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달 6일 대전시와 대전시설관리공단 관계자 5명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하기 전 대전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예린 기자

중앙로지하상가 상인 224명이 참여한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달 대전시 공무원 3명과 대전시설관리공단 직원 2명 등 관계자 5명을 업무·입찰 방해 등 혐의로 경찰 고소했다.

정인수 중앙로지하상가 비대위원장은 대전경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하며 “조회수 부풀리기·조작 의혹 관련 대전시 쪽에 조사를 요청했으나 ‘수사 의뢰하라’는 식의 반응이 돌아왔고, 한국자산관리공사에도 진상규명을 요청했으나 공개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아 경찰 고소에 이르렀다”며 “삶터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터무니없는 세를 감당하고 있는 상인들의 경제적·정신적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경찰의 철저한 수사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신승주 대전경찰청 반부패수사대장은 “고소장을 접수해 조사 중”이라며 “수사 중인 구체 내용을 밝히긴 어렵다”고 했다. 대전시는 “투명하게 진행된 입찰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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