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 역사 장편소설 죽창 [제11장] 전주성 입성(220회)

여상덕이 영감 앞으로 나아가 설명했다.
"정리하면, 동학은 신비한 종교이긴 하나 사람이 곧 하늘(인내천)이라는 교리에 유·불·선(도)과 민간신앙을 결합한 실천적 종교요. 왕권의 무능과 횡포, 이 자들의 가렴주구에 백성들이 시달리고, 초근목피의 삶을 사는 고로 이런 백성들의 한숨과 고통을 외면할 수가 없어서 모순 타파와 사회개혁 운동으로 확장되었소. 그것이 오늘의 동학이오."
"이름에서 학(學)은 학문을 익힌다는 것인디, 지금까지의 활동으로 볼 것 같으면 학과는 무관하지 않는가."
"동학은 서학(西學)인 신흥종교 천주교에 대응하여 이름을 붙인 것이오. 동학은 동방의 가르침, 즉 우리 땅의 진리를 뜻하오이다."
"허면 동학과 서학이 대립하여 싸우는가?"
"아니올시다. 서로 비슷한 길을 가는디, 다만 동학은 우리 것의 존엄, 자주, 도덕 실천, 탐관오리 제거, 외세 배척, 조선 개혁의 민중운동이라는 것이 차이가 납니다. 이것도 남접과 북접 간에 차이가 있소이다. 남접은 백성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어서 자기 수양만 할 수 없기 땀시 사회개혁 운동으로 확장된 것이오."
"남접과 북접은 어떤 차이가 있는고?"
"전라도를 중심으로 한 남접은 자기 수양과 함께 시대 모순 타파와 탐관오리 척결에 방점을 두고 있소. 그것은 호남이 곡창지대라는 것을 빌미로 관의 과도한 수탈과 착취,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징세라는 것이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충청도 내륙과 경상도 북쪽의 북접은 이에 비해 자기 수양과 도덕 실천에 더 큰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지배층은 남접과 북접을 이간질하고, 남접을 반란 집단으로 몰아가고, 그러면서 동학과 백성을 분열시키고, 난을 척결해야 한다고 선동하고 있소이다. 이런 세뇌에 상당수 백성들이 동학을 나쁘게 인식하는 것이오. 영감도 그중 하나올시다."
"아니여.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른 사람들이 떼거리로 몰려다님서로 부잣집을 털고, 탐관오리를 척결한다면서 관청을 점령하고, 수령을 죽이지 않는가. 나라가 일본과 청나라 군대를 불러들일 정도로 큰 소란이란디 그래사 쓰는가? 동학이 종교니 철학이니 운동이니 하지만 결국은 반란이랑깨."
"그러면 영감님도 소수 지배집단만이 떵떵거리며 사는 이런 더러운 세상을 원하고 있소이까?"
이 대목에서 어른이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들을 비도들이라고 하면 억울하지 않은가?"
"억울하지요. 영감님 같이 완고한 어른들이 기존 썩은 왕권을 따르는 것 땀시 우리가 이렇게 몰리고 있다니께요."
"왕권을 따르지 않으면 애먼 백성들이 다치지 않는가. 어차피 질 것인디,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역적으로 몰리면 삼대가 멸하지 않나. 그대들이 우리의 목숨을 보장할 수도 없잖은가?
"물론 보장할 수 없습니다. 신념을 가지고 운동에 나서므로 우리 또한 목숨이 온전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꼭 이기기 위해 나서는 것만은 아닙니다. 오직 자기 양심과 정의감으로 나서는 것뿐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고통스러운 세상을 후대에 물려주어선 안된다는 사명감만이 불타고 있소이다."
영감이 한동안 말이 없더니 마누라에게 명했다.
"그럼 돼야 써. 알겄네. 우리 며늘아기 개가시켜도 좋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살게 해주고 잡네."
와-, 하고 함성이 일었다. 지켜보던 농민군사들이 하나같이 기뻐하고 있었다.
"영감 고맙소. 우리 농민군사 중에 바윗덩어리같이 단단한 총각이 있소. 농사깨나 지을 것이요. 쇠뿔은 단김에 빼란다고 당장 혼례식 치릅시다."
여상덕이 눈짓으로 한 병사에게 명하자 그가 재빨리 밖으로 나가더니 만일을 대비해 소나무 숲에서 대기하고 있던 장졸들 중 기골이 장대한 병사를 앞세웠다. 그 뒤로 다른 병사들이 따랐다.
기골이 큰 청년병사는 영광 법성포에서 뱃놈들 짐을 날라다 주며 밥벌이하던 전규덕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