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봄을 기다리던 조선의 꽃 '향화'…독립의 등불 밝히다
수원 기생 출신 김향화 삶 조명
여성 독립운동가 행적 무대화
어린 시절부터 만세 부르기까지
세상에 맞선 저항정신 되새겨

"거센 추위에 온몸이 굳어 버려도 세찬 바람에 삼천리가 얼어도, 우리 견딜 수 있는 건 봄에 대한 그리움, 그리움. 봄에 대한 믿음, 믿음 (중략) 하늘 잔뜩 흐려도 땅은 얼음이라 해도 봄에 대한 그리움과 믿음. 내 머리 위로 하늘이 있다는 것을, 발밑으로 퍼지는 온기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알기에 겨울을 견딥니다."
노랫가락으로 유명했던 수원 화성 유수부 출신의 기생 계섬에 이어 조선의 꽃, 삼천리의 꽃이란 이름을 이어받은 여인, '김향화'. 해어화(말하는 꽃)처럼 어여쁘기만 바랐던 세상에 맞서 그녀는 스스로 선택하고 배우는 여성이 되고자, 독립을 위해 저항하는 구심점이 되고자 당당히 나선다.
'향화'라는 이름을 얻고 나서야 자유롭게 숨 쉬고 노래하고 춤출 수 있었던, 온전히 살아 숨 쉼을 알게 된 그. 1919년 3월 29일, 조선의 완전한 독립을 위해, 그와 모두의 이름을 온전한 자랑으로 남기기 위해 그는 만세를 불렀다.
지난달 21일 수원시립공연단이 시연한 창작 뮤지컬 '향화'는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수원 기생 출신 독립운동가인 김향화의 삶을 조명한 작품이다. 수원 권번에서 기생으로 활동한 그가 자신의 신분과 성별, 모든 사회적 약자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어 독립운동의 주체로 세워지며, 여성 독립운동가로서 일제 강점기 용기와 희망의 상징이 되어간 이야기를 담는다.


작품은 1897년 7월 16일 한성 도성 밖 동막골에서 나고 자란 김향화의 어린 시절, '김순이'로서의 삶부터 짚어 나간다. 생계를 위해 16살 조혼을 택한 김순이는 고된 시집살이 속에서도 자유롭게 뛰고 달리는 삼일여학교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다.
결국 자기 발로 뛰쳐나온 김순이가 머물 곳으로 택한 곳은 '권번'이었다. 마음껏 뛰고 싶고 춤추고 싶던 그는 동료들과 북춤(삼고무)과 검무, 시조, 소리를 배우며 기생의 길을 걸으며 행수로부터 기명을 받고 1패 기생 '김향화'로 거듭난다.
그 무렵, 침략의 야욕을 키워가던 일제는 경복궁을 헐어 조선총독부를 건설하고 조선 권번 소속 기생들의 감시를 강화한다. 특히 조선 8도 대표 미인들을 수록하는 조선미인보감 제작을 빌미로 조선 독립을 모의하는 이른바 '불순분자'를 색출하기 위해 감시망을 좁혀온다.
서슬퍼런 일제의 감시 속에서도 향화와 수원 권번 기생들의 봄을 향한 투지는 불타올랐다. 결국 자혜의원 앞에서 만세를 부르다 헌병들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된 그들은 끔찍한 고문과 죽음의 공포와 목도한다.


끝끝내 역사 속에서도 잊힐 뻔한 위기 속에서 그녀들의 삶을 취재한 매일신보 박명근 기자는 그들에게, 또 80년이 지나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들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왜 만세를 불렀어요?"
작품을 연출한 권호성 수원시립공연단 예술감독은 "김향화 열사는 수원의 자랑이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라며, "광복 80주년을 맞아 지금 이 무대에서 그녀를 다시 불러낸다는 건,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이자 소명"이라고 말했다.
수원 사람들의 용기와 연대, 이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이번 작품은 오는 5일부터 7일까지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에서 열리며, 예매는 인터파크티켓과 수원시립예술단 누리집에서 가능하다.
/글·사진 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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