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속의 역사] (64) 김유신의 타격대

강시일 기자 2025. 9. 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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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삼국통일의 원동력 김유신 장군의 특수부대, 경주 단석산과 오봉산 일대에서 훈련한 흔적 남아
신라시대 화랑들이 훈련했던 오봉산 정상.

김유신은 가야의 왕손이라는 자존심과 신라왕족의 외손이라는 신분의 절대적인 권력을 가슴 깊이 새기며 자부심이 가득했다. 화랑이 되면서 그 자부심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성골과 진골이라는 귀족들의 가야족에 대한 배척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힘으로 유신의 어깨를 짓눌렀다.

유신은 화랑도로서의 자부심도 어금니를 깨물며 지긋이 인내하고, 모든 것은 실력으로 가늠하게 하리라 다짐했다. 홀홀단신으로 중악의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 수련에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결국 신의 기운을 얻은 비법으로 터득한 신기막측한 무예와 보검으로 중무장하고 다시 전선으로 돌아왔다.

유신은 전쟁은 혼자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날렵한 천 명의 화랑을 모집해 단석산과 오봉산에서 분야별 특기를 익히게 했다. 낭도들을 각자 최고의 정예병으로 육성하고, 특기에 따라 조직을 재편해 전쟁에서 백전백승을 거두며 삼국통일을 이룩하는 최고의 무장이 됐다.
김유신 장군이 보리로 술을 빚어 군사들에게 먹게 했다는 오봉산 마당바위.

◆신화전설 1: 신검 김유신

신라 태대각간에 올랐던 김유신 장군에 대한 신화적인 이야기를 소개하는 설화들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비롯해 동경잡기, 수의전 등에 다양하게 실려 전하고 있다.

김유신의 유명한 전설 가운데 두드러지는 것은 서라벌 중악에서 선인을 만나 신비로운 비법을 전수받고, 기도 수행하다 별의 정기가 서린 보검을 얻어 삼국통일의 주역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김유신은 진평왕 당시 전쟁에서 이겼으나 전우들의 죽음을 보면서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씻어내지 못하고 더욱 강한 힘을 얻기 위해 중악의 동굴에 들어가 하늘에 기도를 했다. 먹지도 잠들지도 않은 체 기도하던 나흘째 되는 날 거친 털옷을 입은 신령스런 노인이 나타나 "귀한 집의 자제가 어째서 여기에 혼자 있느냐"고 물었다.

김유신은 "나는 신라의 화랑입니다. 백성들의 안녕을 위해 삼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해 수련하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어 노인이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알게 된 김유신은 벌떡 일어나 크게 세 번 절하고 가르침을 청했다.
오봉산 마당바위에서 서쪽으로 본 전경.

처음에는 묵묵히 말이 없던 도승은 김유신이 여러 번 간청하자 그제야 신비한 비법서를 주면서 길을 가르쳐 주었다. 이어 등에 걸치고 있던 보검을 풀어 김유신에게 주면서 "비법과 보검을 의롭지 못한 일에 쓴다면 도리어 재앙을 받을 것"이라며 "비법은 함부로 전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도승은 훌쩍 자취를 감추었다. 유신이 쫓아가 보았으나 도승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산 위에는 오색의 찬란한 빛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김유신은 비법을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읽고 뜻을 헤아리며 온 몸으로 자연의 기운을 다스리는 의식과 같은 훈련을 되풀이했다. 드디어 몸에 엄청난 기운이 집중되었다가 호흡과 함께 다시 흩어지고, 마음에 따라 기의 흐름이 바람처럼 움직이는 경지에 이르자 조용히 일어났다. 그리고는 보검을 들고 벽처럼 둘러싸고 있는 청석 앞으로 나아가 호흡을 가다듬어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무우를 베는 듯한 가벼운 느낌이 손으로 전해져 왔고, 이어 앞을 가로막고 있던 청석이 반듯하게 두부처럼 이등분됐다.

유신은 보검을 정중하게 감싸 안고는 조용히 뒤로 몇 걸음 물러 나와 산정을 향해 세 번 절하고, 서라벌을 향해 큰 걸음으로 내려왔다. 그의 걸음은 이미 범부의 보행과는 달랐다. 한 걸음에 수십 장을 뛰어넘어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천리를 내달을 수 있는 경지가 됐다.

오늘날 경주의 단석산에는 마치 칼로 잘라낸 듯 표면이 반듯반듯한 바위가 여기저기 남아있다. 문화해설사들도 그것은 유신이 이곳에서 검술 수련을 하며 바위를 잘랐던 흔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김유신 장군의 보검은 그가 화를 내면 저절로 칼집에서 튀어나와 우릉우릉 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이 검을 가지고 김유신은 백제와 고구려를 물리치고 마침내 삼한을 통일하는 대업을 이루었다. 장군은 죽은 뒤에도 문무왕과 함께 신문왕에게 만파식적과 옥대를 선물해 나라를 지키게 하는 천신이 됐다.
단석산 화랑의 언덕 명상바위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는 전경.

◆신화전설 2: 타격대의 불패신화

김유신 장군이 직접 지휘에 나선 전쟁에서는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신화적인 기록을 남겼다. 유신공이 남긴 신화적 승리에는 그가 직접 양성한 부대 타격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타격대는 직접 적의 목숨을 일격에 끊어버리는 척살조, 아무도 모르게 적진으로 숨어들어 정보를 캐오는 비행조, 독약을 살포해 부분적으로 적의 힘을 무너뜨리는 약무조, 적의 지휘자들을 체포하거나 암살하는 번개조, 말보다 빠르게 달려 정보를 전파하는 비익조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타격대는 맡은 임무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처리하는 기술을 비밀리에 오봉산과 단석산 곳곳에서 피땀을 흘려가며 터득, 각자의 분야에서 최정예 고수로 성장했다. 단도와 암기를 날리는 기술, 키보다 높은 담벼락과 언덕을 단숨에 뛰어넘는 보법, 말보다 빠르게 달리는 기술, 한 번에 열개의 화살을 날리는 궁술, 소리 없이 적을 한호흡에 절명하게 하는 암술 등 최고의 살인무기로 키워진 병사들이 모두 합하면 일천 명을 상회하는 특급부대였다.
신라시대 화랑들이 훈련했던 곳으로 전하는 단석산 화랑의 언덕.

김유신은 스스로 비법을 터득하고, 한 번 휘두르면 10여 명의 적군들을 벨 수 있는 보검을 가졌을 뿐 아니라 신적인 예지력과 힘을 가졌다. 그러나 많은 군사들을 상대로 아군의 희생 없이 큰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타격대와 같은 부대가 있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뛰어난 화랑들을 위주로 특수한 전술로 무장한 부대를 양성했다.

김유신 장군이 키운 타격대는 분야별로 특수한 임무를 띠고는 소리소문 없이 움직이며 적장의 목을 베거나, 기마대의 힘을 무산시키는 독을 살포하는 등으로 신라군이 쉽게 승리할 수 있게 미리 작전을 개시했다. 타격대를 이용해 적의 힘을 빼고, 아군의 사기를 돋우어 일거에 적을 무너뜨려 승리하는 것이 김유신 장군의 백전백승하는 전술이자 전략이었다.
신라시대 화랑들이 훈련을 마치고 말에게 물을 먹였던 수의지.

◆흔적: 수의지와 마당바위

경주 서부지역 건천읍과 산내면지역을 둘러싸고 있는 오봉산과 단석산에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전하고 있다. 특히 오봉산의 마당바위와 부산성, 단석산의 단석과 석굴의 마애불, 화랑의 언덕과 수의지에 대한 이야기는 군사적인 내용으로 연결되면서 김유신 장군의 수도와 화랑들의 훈련에 대한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유추할 수 있게 한다.

김유신 장군은 나라와 부모형제를 지키기 위해 나선 전쟁이지만 아군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무시무시하게 절대적인 힘을 가진 군대를 육성하기로 했다. 전쟁터에서 아무도 죽지 않고 이길 수 있게 하는 별동부대를 만들고 싶어 오봉산과 단석산에서 강력한 병사들을 조련하는 훈련을 실시했다.

장군은 타격대를 만들고, 이어 최전방에서 적군들과 가장 먼저 살육전을 펼쳐야 하는 화랑도들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실전보다 무서운 맹훈련을 반복했다. 이 때문에 특히 화랑들은 전쟁이 훨씬 편안했다. 가만히 쉬다가 한꺼번에 힘을 몰아 순식간에 적을 제압하면 전쟁은 쉽게 끝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유신 장군의 훈련은 어깨뼈가 빠지고 허옇게 거품을 물고 기절할 때까지 몰아부치기 때문에 잠시도 한 눈을 팔 여유가 없게 했다.
김유신 장군이 화랑들의 훈련장으로 활용했던 단석산 화랑의 언덕.

이러한 군사훈련은 단석산과 오봉산 두 곳에서 대부분 이루어졌다. 화랑들은 훈련을 하기 위해 1주일치 먹을 양식과 무기 등등의 무거운 짐을 지고, 서라벌에서 반나절을 쉬지 않고 뛰어 훈련장에 도착한다.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체력이 바닥나버리는 화랑들이 대부분이었다.

장군은 화랑과 타격대 병사들에 대한 뼈를 깎는 훈련에 이어 정신적인 무장도 강도높게 실시하는 한편 병사들이 형제처럼 정을 나눌 수 있는 편안한 휴식의 시간도 적절하게 마련했다.

그 대표적인 장소가 단석산자락의 수의지와 오봉산 정상의 마당바위다. 수의지에서는 화랑들이 훈련에 지친 말들에게 물을 먹이면서 멱을 감기고, 땀을 씻어내면서 충효의 근본을 다지게 했다. 장군은 쉬는 시간에도 화랑들에게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며, 벗들과 신의를 지키며, 전쟁에 나아가 후퇴하지 않으며, 살생은 가려서 한다"고 가슴 깊이 새기게 했다. 특히 "벗과의 신의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을 생명보다 중하게 생각하라고 명해 벗들과 몸을 씻던 곳을 '수의지'라 명명해 지금도 그렇게 전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을 같이해 서라벌 일대에서 가장 험준한 산악지대인 오봉산에서 벼랑을 타고 오르내리는 뼈를 깎는 훈련을 마친 병사들을 위해 마당바위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손수 빚은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며 두터운 전우애를 다지게 했다. 이러한 훈련으로 탄생한 김유신 장군의 타격대와 화랑무장대는 천하무적으로 삼국통일의 주역이 됐다. 수의지와 마당바위는 신라시대 전설과 함께 경주여행 명소로 소문이 나면서 지금도 포토존으로 찾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이 글은 문화콘텐츠 육성을 위해 스토리텔링 한 것이므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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