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색 짙은 '귀멸의 칼날'이 한국 극장가 사로잡은 이유 [IZE 진단]
아이즈 ize 이설(칼럼니스트)

한때 일본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수입 개봉이 금지되던 때가 있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일본 문화나 일본풍은 '왜색'(倭色)으로 불리며 부정적으로 인식돼 금기시됐다. 그러다가 1998년 김대중 정부 때부터 일본 영화와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수입이 전면 개방됐다. 전 세계적으로 문화를 교류하고 소통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 덕분이었다. 그 첫 번째 수혜 작품이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 레터'(1999)다. '러브 레터'는 당시 약 11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대표적인 일본 영화로 자리 잡고 있다. 애니메이션 중 최초로 국내 개봉한 작품은 '무사 쥬베이'(2000)다. 일본의 대표적인 닌자 액션으로 이전 같으면 국내 수입조차 어려웠겠지만 문호가 개방되고, 이 작품이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으면서 수입의 길이 열렸다. 하지만 크게 흥행하지는 못했다.
불과 26년 전의 일이지만, 이런 때가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영화를 보고 일본풍의 이자카야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은 뒤 일본에서 시작된 유니클로에 가서 쇼핑하는 지금으로썬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SNS나 유튜브를 통한 각종 콘텐츠의 교류는 말할 것도 없다.
현재 극장가를 휩쓸고 있는 '귀멸의 칼날'은 문호 개방 전이라면 도저히 수입될 수 없었을 애니메이션이다. 앞서 말한대로 '왜색'이 강해도 너무 강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귀멸의 칼날'은 일본 만화가 고토게 고요하루의 작품이다. 일본 대형 출판사인 슈에이샤(集英社)의 '주간 소년 점프'에서 2016∼2020년까지 연재됐다. 한번 반응이 온다 싶으면 무한대일 정도로 연재 건수를 늘리는 일본의 다른 작품과 달리 비교적 짧은 시간에 연재됐고, 이미 완료까지 됐다. 집중적으로 연재됐기에 이야기 구조가 군더더기 없이 탄탄하다. 기본적으론 주인공 소년 탄지로의 성장 스토리다. 시골에서 가족과 함께 평화롭게 살던 탄지로는 사람을 잡아먹는 혈귀들에게 부모를 잃고, 상처를 입어 혈귀로 변해버린 여동생 네즈코를 데리고 복수의 여정에 나선다. 처음엔 눈물부터 터뜨리는 숙맥이었지만, 부단한 훈련을 거쳐 혈귀를 잡는 귀살대의 최고 대원으로 성장한다. 칼로 싸우는 액션이고 혈귀, 일본말로는 귀신을 뜻하는 '오니'가 등장하기 때문에 일본풍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일본 에도(江戶) 시대 무사를 연상시키는 칼과 복장, 혈귀의 온몸에 그려진 일본어와 주술, 그리고 탄지로의 귀걸이에 그려진 '욱일기' 모양의 문양 등 모자이크 처리를 해야할 것 투성이다. 게다가 혈귀가 마치 뱀파이어 같아서 등장할 때마다 선혈이 낭자하고, 팔다리와 목을 베어버리는 하드 고어 액션이 넘쳐 그 자체만으로도 등급 심의가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22일 개봉한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31일까지 300만 관객도 넘어서며 흥행질주하고 있다. 개봉한 지 불과 열흘 만의 일이다.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명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을 제치고 일본 애니메이션 역대 국내 흥행 4위에 올랐다. 또한 올해 개봉된 국내외 영화를 통틀어 개봉 당일 최고 스코어(51만 명), 일일 최고 스코어(60만 명), 최단 기간 100만 관객 달성(2일) 등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다.
짙은 왜색에도 아랑곳없이 흥행 질주하는 비결은 우선 시선을 압도하는 액션 장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관객들은 이미 할리우드 영화에서 눈을 휘둥그레지게 하는 현란한 액션을 많이 접해왔다. '미션 임파서블'의 톰 크루즈가 CG나 대역의 도움 없이 실제로 날아가는 비행기에 매달린다거나, '어벤져스'의 어벤져스 군단이 엄청난 규모로 돌진해오는 빌런들을 향해 맞대응한다거나 하는 장면을 보며 웬만한 전투 신은 눈에 차지도 않는 경험을 해왔다. 따라서 애니메이션의 액션이 뭐 그리 대단할까 싶지만, '귀멸의 칼날'은 다르다. 실사 같은 배경에, 입체적인 동작과 카메라 워크, 그리고 빈공간을 채워주는 사운드 이펙트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무한성편'의 러닝타임은 2시간이 넘는 무려 155분인데,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다. 처음부터 전투 신으로 시작해 마지막까지 그대로 무한 돌진한다.
둘째는 주인공 탄지로와 여동생 네즈코, 탄지로를 돕는 친구들인 이노스케와 젠이츠는 물론 아카자, 무잔 등 절대강자급의 혈귀들, 그리고 극장판 시리즈 곳곳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조력자들의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캐릭터를 풍부하게 하는 장치는 캐릭터 '전사'(前史)의 유효적절한 활용에 있다. 탄지로와 가족의 이야기, 이노스케와 젠이츠의 과거는 당연하고, 혈귀인 아카자의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과거사까지 묘사해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보고 있는 관객으로선 주인공이든 빌런이든 당연히 그들의 숨겨진 스토리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는 시종일관 무겁고 무시무시하게 흐르는 액션 긴장감에 숨통을 틔워주는 코믹 모멘트다. 주로 캐릭터를 우스꽝스럽게 그리는 방법으로 표현하는데 유치하거나 장난스럽지 않다. 작품에 너그러운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오히려 웃음을 준다.
이러니 젊은 관객들이 열광하고 있다. '무한성편'의 인기는 주로 20대 남성이 주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멀티플렉스 CGV 통계에 따르면, 165만 명을 모으기까지 실제 관람객의 연령대는 20대가 41%로 가장 높았다. 이어 30대가 25%, 40대가 18%였다. 관객 성비를 보면 남성 관객이 절반이 훨씬 넘는 58%였다. 한국영화로서 올해 유일하게 500만 관객을 모은 '좀비딸'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좀비딸'은 40대가 33%로 가장 비율이 높았고, 30대(24%), 20대(23%) 순이었다. 성비 역시 여성 관객이 60%로 남성보다 많았다. 즉,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묻혀 살던 20대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세대가 진화하면서 이젠 일본풍이 강한 작품도 얼마든지 국내에서 통할 수 있다는 게 '귀멸의 칼날'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실리·실용외교로 한일 양국간의 심리적 거리도 과거에 비해 많이 좁혀졌다는 점도 한몫하는 것 같다.
'무한성편'은 '무한열차편' 이후 4년 만에 나온 극장판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지난달 18일 개봉한 이후 첫 주말 384만 관객을 끌어들이며 역대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했다. 당분간 '귀멸의 칼날'이 한일 극장가를 나란히 점령할 것으로 보인다.
이설(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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