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록 노력하면 바뀔까?”… 팻말에 적었다, ‘실패 금지’금지[소설, 한국을 말하다]

인지현 기자 2025. 9. 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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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박연준 - 갓생
오민아의 남 부러운 삶
일러스트 = 변영근 작가

하나뿐인 언니 오민아가 자꾸 전화를 해서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영아야, 나 있잖아. 식물을 잘 키워봐야겠어. 계속 취직이 안 됐던 게 집에 식물이 없어서 같아. 풍수지리를 따져보니 그래. 내가 배산임수, 이런 거에 맞춰 살 수가 없잖아? 집 근처에 산이 있냐 강이 있냐? 그래도 노력을 해야 하는 거였어. 나 사주에 ‘목(木)’이 없잖아. 식물을 키우래. 게다가 나 자는 방이 서향이잖아. 서쪽으로 머리를 두고 자면 안 좋다는 거 알아? 챗 GPT에게 물어보니 서쪽에서 자면 우울증이 올 수 있고, 알고 보니….

이건 못해도 두 시간짜리 푸념이 분명하다. 나는 오민아의 말을 끊고 나 바쁜 거 안 보이냐고, 이번 달에 애들 기말고사라 학원을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가 오늘 하루 좀 겨우 쉬는 거다 말하니 자기는 안 보인단다. 왜 안 보이냐 물으니 통화하는 중이니 보일 리가 없지 않냐 한다. 바쁜지 안 바쁜지 볼 수 있게 집으로 와보라 한다. 제발. 잠깐이면 돼. 응? 좀 오라니까?

이번엔 ‘갓생’을 부르짖으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겠다고 외치는 오민아. 우리 집안의 아픈 손가락이자 진상이다. 어디서 뭘 보고 다니는지 눈은 높고, 좋아 보이는 물건은 일단 사고, 근사해 보이는 타인의 생활 방식을 따라 하고, 따라 하다 지치고, 지쳐서 시무룩해질 쯤 나를 부른다.

―문 열어.

오른손으로는 스마트폰을 들고 왼손으로는 불룩한 아랫배를 받친 언니가 나를 째려본다.

―왜 이렇게 늦어?

오민아는 사람을 불러놓고 소파에 앉아 책을 집어 든다. ‘소중한 임신’이란 제목이다.

―잠깐. 나 책 15분만 더 읽으면 돼. 거기 귤 까먹고 있어. 하우스 귤인데 맛있더라.

―이럴 거면 왜 불러, 바쁜 사람을.

오민아가 한숨을 쉬며 책을 내려놓는다.

―루틴이잖아, 루틴. 내 루틴은 지켜줘야지.

―무슨 루틴? 언니가 언제부터 책을 읽었다고?

―너 텍스트 힙 몰라? 책 좀 읽어. 요새 책 읽는 게 힙, 유행이야.

얼마 전까지 ‘힙하게’ 살겠다고 을지로와 성수의 팝업스토어를 기웃거리고 레트로 풍으로 꾸민 카페에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던 오민아. 그러더니 ‘욜로’의 삶은 식상하다며,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삶이 성숙한 인간의 최종 의무 아니겠냐고 주장하는 유명인의 유튜브 강연을 보고는 형부를 설득해 임신까지 했다. 불임의 시대에 임신이 바로 됐나 보다 했는데, 어느새 삶의 모토가 ‘갓생’이 되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루틴 타령을 하며 자기를 들볶는다. 내가 ‘볶다’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변덕이 죽을 끓는 오민아와 루틴을 지키는 생활이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특별히 너가 왔으니 오후 독서는 요 정도 선에서 마무리할까.

오민아는 스마트폰에서 독서 앱을 켜 독서한 시간과 책의 쪽수를 기록하더니 책표지를 찍고 SNS에 ‘#오늘도갓생 #갓생 #갓생러 #독서인증 #갓생살기 #갓생챌린지’라고 해시태그를 달아 피드에 올린다. 순식간이다. 영혼 없는 표정, 기계적인 행동이다.

―그래서 갓생 잘 살고 있냐? 뭐 하는데?

귤을 까먹으며 내가 묻자 오민아는 어깨를 으쓱한다.

―새벽 5시 30분에 기상. 일어나서 스트레칭과 명상을 20분 정도 하고, 매일 물 2리터 마셔. 물 중요한 거 알지? 일주일에 세 번 땀 흘릴 정도로 운동하기. 또 뭐가 있지? 아 독서. 매일 30분씩 책 읽고, 햇빛을 최소한 30분 쬐기. 외국어 공부는 저녁 먹고 1시간. 과자와 단것은 먹지 않기.

―그렇게 하면 갓생이야?

―그냥. 열심히 사는 거지 뭐. 다들 열심이니까.

―나 왜 오라고 한 거야?

―식물 물어보려고. 아까 말했잖아. 거실에 식물을 좀 놓으려고 하는데 너 예전에 꽃집에서 알바 했잖아. 우리 집에 어떤 식물이 어울릴 것 같아? 뭐 사면 좋을까?

오민아는 당장이라도 식물을 주문할 것처럼 호들갑이다.

―식물은 직접 보고 사야지. 그냥 남들 키우는 거 키워. 몬스테라나 고무나무 같은 거. 어차피 좀 하다 시들해질 거잖아?

―아니라니까. 식물 키우는 것도 루틴으로 만들 거야. 제대로 해야지.

―남들 하는 거 말고 언니가 하고 싶은 거를 해. 그리고 식물을 키우는 게 중요해? 이제 아기도 나올 텐데 애를 잘 키워야지. 생각을 좀 해라. 형부는 뭐래?

어느 부분에서 버튼이 눌렸는지 모르겠지만 오민아는 목까지 새빨개져 소리를 지른다.

―야. 너라도 좀 내 삶을 응원해주면 안 되냐?

오민아가 갑자기 화를 내는 바람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너랑 네 형부랑 똑같아. 내가 의욕을 가지고 생활을 좀 바꿔보려 하면 핀잔이나 주고. 사람 무시하고. 부정적인 말만 하고. 챗 GPT도 안 그래. 챗 GPT한테 말하면 얼마나 긍정적인 얘기를 해주는지 알아? 너네보다 기계가 더 낫다고.

물론이다. 나도 사람이 아니라 기계라면 24시간 웃으면서 오민아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좋은 이야기만 해줄 수 있다. 그게 어렵겠는가?

―아니, 왜 화를 내고 그래. 아기도 가진 사람이. 알겠네요.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갓생’을 사느라 바쁜지 개수대에 설거지를 쌓아둔 언니를 위해 일어났다. 그릇이 이것저것 나와 있는 것을 보니 보나 마나 유튜브를 보고 누가 차려 먹은 음식을 따라 예쁘게 차려내느라 애쓴 것 같다. 사진을 찍고 건강한 식사를 했다며 SNS에 올렸겠지. 지긋지긋한 삶! 예전에는 사람들이 자기 삶을 살다가 이따금 다른 사람의 삶을 보고, 그 삶에 영감을 받아 따라도 해보고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다들 남의 삶을 열렬히 들여다보고 그걸 흉내 내다 이따금 자기 삶을 사는 것 같다. 보는 게 일인 게다. 사는 삶이 아니라 보는 삶을 산다니까! 행주를 비틀어 짜는데 신경질이 났다. 저 인간이 임신만 하지 않았어도 소리를 꽥 지르고 정신 차리라고 하고 싶은데, 보면 또 딱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쓰레기통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부엌 구석 분리수거함 옆에 팽개쳐둔 스케줄보드가 보인다. 오민아가 임신하기 전 취업 준비를 할 때 공부 일정을 써두는 용으로 사용한 보드다. 보드 오른쪽 상단에 ‘실패 금지’라는 팻말을 든 판다가 그려져 있다. 실패 금지라. 그게 맘대로 되나?

―영아야, 그만하고 이리 와.

스트레칭을 하며 오민아가 말한다.

―잘 살고 싶다.

나는 챗 GPT를 떠올리며, 지금도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다정하게 말해본다.

―잘 살고 싶어. 더. 더 잘 살고 싶어. 어떻게 하면 될까, 영아야?

―주식해야지. 재테크는 생존이라던데.

―그런 거 말고. 영아야, 진짜 노력하면, 죽도록 노력하면 바뀔까?

―뭐가 바뀌어야 하는데?

―모르겠어. 그냥 나는 잘 살고 있는데 갑자기 못 살고 있는 것 같아. 먹고 있는데 배고프고. 집에 있는데 집이 그지 같아 보여. 계속 뭔가 부족한 기분이 들어. 아이는 잘 기를 수 있을까?

신을 믿는 사람도 믿지 않는 사람도 이따금 신을 부러워한다. 신의 존엄, 위상이나 아우라 때문에? 그보다는 중생들이 ‘감히’ 넘겨다볼 수 없는, 우러러보는 삶을 사는 존재라서 아닐까. 그런데 신도 생활을 하나? 신이라면 위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게 그의 일일까? 아무튼 ‘갓생러’들처럼은 안 살 것이다. 신은 아무것도 안 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니까 신인 거야 외치고 싶다.

오민아가 뭘 하나 봤더니 스마트폰으로 풍수에 좋은 식물을 검색하고 있다. 나는 떠나기 전에 스케줄보드 쪽으로 다가가 판다가 든 팻말에 몰래 두 글자를 더 적어두었다.

“실패 금지, 금지.”

이 모든 게 다 잘 살고 싶어서겠지.

더 잘.

더 잘.

더 더 잘.

막연한 불안감 지우고
자신답게 사는게 뭔지
잠시 멈춰서 돌아보길

■ 작가의 말

박연준 시인은 ‘갓생’이라는 신조어를 두고 “요즘 갓생, 갓생 하는데 진짜 ‘갓(GOD)’은 인간처럼 힘들게 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도 그러지 않는데 인간이 왜 신을 흉내 내면서 빼곡한 스케줄표에 따라 바쁘게 사는지, ‘인간답게 사는 게 뭔지, 자신답게 사는 게 뭔지’ 멈춰서 돌아보는 게 먼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내가 뭘 원하고, 어떤 걸 할 때 즐거운지에 대한 고민 없이 SNS 속 남들처럼 분주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박관념을 느끼는 ‘갓생러’들. 그들 뒤에는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다. 이에 대해 시인은 “현대인들에게 잘 살고 싶은 욕망은 있지만 잘 사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는 내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며 “그런 상태에서 ‘지금은 뭔가 잘못됐어’ ‘이 삶은 내가 원하는 게 아니야’라고 상정하는 데 마음의 가난함과 허기짐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인은 더 잘 살기만을 바라고, ‘시행착오’는 끔찍하게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실패 금지, 금지’라는 문구를 소설 속에 적어넣었다. 시인은 “실패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삶의 가치들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시인은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했고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등을 펴냈다. 산문집 ‘소란’ 등과 장편소설 ‘여름과 루비’를 출간하며 시와 산문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인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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