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 집회에 참가자들이 윤석열 탄핵으로 ‘봉꾸(응원봉 꾸미기)’한 작품들을 모아봤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 3월 연재를 시작한 ‘케이팝, 사랑과 탈출사이’는 약 5개월 동안 스물두번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연재는 누구보다 케이팝을 좋아하기에 고민의 끈을 놓지 않았던 팬들의 목소리를 담고, 이를 바탕으로 대안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만드는 걸 목표로 합니다.
각 회차마다 필자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 것도 이 때문입니다. 비슷한 고민을 해 본 팬들이 비단 칼럼을 쓴 이들만은 아닐 것이기에 더 많은 팬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연재가 반환점을 돈 지금, 독자 분들이 보내온 응답을 여러 회차에 걸쳐 하나씩 공개합니다.
1회: ‘오빠’들은 툭하면 ‘빠순이’의 뒤통수를 때린다
“페미니스트로서 케이팝하는 즐거움과 괴로움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봅시다. 우리가 꿈꾸는 케이팝 산업의 ‘다시 만난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요?”
듀스와 서태지, 에쵸티(H.O.T)와 방탄(BTS)으로 이어지는 ‘최애 로드’를 돌이켜본다. 그들을 향한 나의 사랑은 주체적이며 적극적이었으나, ‘쇼 비즈니스’의 컨텍스트 안에서는 그저 구매력으로 치환되어 지갑 취급받기 일쑤였다. ‘현타’를 느끼며 빠져나온 그 역할을 ‘포카’에 현혹된 후배들이 채우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아직 그 판이 공고함을 느낀다. 환상 속의 아이돌이 아닌 음악 콘텐츠 생산자와 이를 향유하고 유무형의 피드백을 주고 받으며 서로를 성장시키는 관계를 진화한 케이팝 산업의 세계에서 만날 수 있기를 그려본다. (bluehey)
솔직히, 다시 만난 세계의 모습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튤립)
어찌 뒤통수를 치는 것이 오빠들뿐이겠습니까. 세상도 우리의 뒤통수를 늘 세게 때리지요. 하지만 우리는 늘 들불처럼 일어섭니다. 그 치열한 세상이 내게 주는 조금의 희열과 만족감 때문에 우리는 늘 다시 일어서서 그것들을 재건하고 사랑합니다. 케이팝을 전달해주는 그들에 대한 실망들은 조금 옆으로 밀어두렵니다. 원래 추억은 늘 미화됩니다. 지금은 많이 실망스럽고 그동안 ‘빠순이’로 살아온 시간들이 조금 억울하기도 하겠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준 당시의 희망과 기쁨들로 위안 삼고, 좋았던 것들과 다시 올 새로운 케이팝들을 기대해 보는거죠. 사람이 죽지 예술이 죽겠습니까? (신정순)
케이팝 세계의 '다시 만난 세계'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면서 느낀 건, ‘케이팝과 페미니즘이 같이 갈 수 있을까’하는 의심만 증폭될 뿐이었습니다. 백명의 여자가 있으면 백가지의 페미니즘이 있는 법이죠? 적어도 제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에 한해서는 그랬습니다.
저는 수위 높은 노출 의상을 입고 여성 파워를 외치는 걸 긍정적으로 보진 않는 사람입니다. 여성의 당당함을 외칠 수 있다는 건 분명히 여권 신장에 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그걸 굳이 몸매가 다 드러나는, 과도한 섹시 컨셉으로 표현해야 할까요?
소위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과 뭐가 다른지 아직까지는 납득이 잘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현재 케이팝 내 페미니즘은 딱 이 정도죠. 똑같은 내용의 가사를 부르는 남자 아이돌이 있었다면, 그들도 하의라고 부르기 민망한 어떤 속옷 비슷한 걸 입고 무대에 섰을지 씁쓸해집니다.
현재 여자 아이돌과 남자 아이돌 팬클럽에 모두 가입해 콘서트와 공개방송을 가며 덕질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모순을 직접 눈앞에서 겪을 때마다 아직도 케이팝을 하는 제가 짜증납니다. (기사 본문처럼 저 역시) 첫 아이돌이 슈퍼주니어였던만큼, 매우 오랫동안 아이돌을 덕질했으니 여성 인권에 그저 해악만 가하는 더러운 케이팝 판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요.
분명 달라진 부분도 있습니다. 여자 아이돌과 남자 아이돌이 같이 서 있기만 해도 여자 아이돌만 수많은 욕을 바가지로 먹던 시절은 확실히 지났습니다. 딱 그뿐입니다. 드림콘서트에서 일어난 소녀시대 ‘텐미닛 사건’ 같은 일은 아마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더욱 은밀하고, 더욱 세밀한 견제 내지는 매장이 있을테죠. H.O.T. 팬덤이 베이비복스를 괴롭힌 게 겨우 30년 전인 걸요. 아무리 여자 아이돌 팬들의 영향력이 커진다 한들, 케이팝 팬덤 내 절대 다수인 남자 아이돌 팬들에 대적할 수 있을까요? 남자 아이돌 팬들이라고 무조건 여자 아이돌을 ‘팬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남자에 미쳐’ 여자 아이돌을 패는 게 남자 아이돌 팬들이라는 사실은 (남자 아이돌 팬인 제가 봐도) 아주 명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아직까지 이 판에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그래도 변화가 있었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여자 아이돌의 노출 수위는 남자 아이돌에 비해 높지만, 이젠 그 불공평함을 회사에 따질 수 있습니다. 정상적이고 편한 옷을 이전보다 더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남자 아이돌 못지않은 퀄리티 높은 세계관과 뮤직비디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소위 ‘남미새’들의 정신 나간 행동들을 비판하는 분위기 역시 전반적으로 강해졌습니다. 정신 승리같나요? 맞습니다. 쥐어짜도 이 정도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이게 제가 근 15년 넘게 케이팝을 하면서 여성 인권과 관련되어 나타난 변화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이 판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면, 이렇게 된 거 변화에 박차를 가하고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여자 아이돌과 남자 아이돌 그룹은 모두 저보다 어립니다. 적어도 남자 아이돌이 여자 팬들의 눈치를 보면서 (그 머릿속은 어떤지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빻은' 태도를 자중하고, 여자 아이돌이 앞으로 더 긍정적인 환경 속에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소비자로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계속 이 판에 남아야겠죠.
물론 이것 역시 제 합리화일 뿐입니다. 그리고 전 또 다른 수많은 합리화를 하면서 여전히 페미니즘과 아이돌 덕질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것 역시 백 가지 페미니즘 중 하나이며, 정답은 없습니다. 아직도 혼란스럽고, 괴로워하지만 적어도 후퇴는 하지 않게 오늘도 뇌에 과부하를 걸면서 제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따끈한 신곡을 듣습니다.
‘다시 만난 세계'가 어떨지는 상상할 수 없지만, 그곳으로 향하는 여정의 지름길을 닦는 과정 중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히맹)
동년배 케이팝 팬으로서 공감가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특히 아는 것이 많아질 수록 잃어야 하는 취미 거리가 줄어든다는 씁쓸한 마음까지도요. 그럼에도 케이팝 시장이 무궁무진하게 성장하려면, 분명히 다뤄야 할 주제라고 생각하여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쩡이)
저 또한 비슷한 고민과 죄책감이 끝없이 이어지는 (혼자만의, 하지만 우리모두의) 가시밭길 덕질 중입니다.
두루뭉술 아련하게 말하자면 페미니즘, 노동권과 케이팝 산업이 같이 갈 수 있는 방법이 어딘가에는 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현실적으로 보자면 이들은 평행선만큼이나 합의될 수 없는 이야기들 같아요.
-문제 1. 케이팝 ‘산업'의 도메인은 ‘어리고 예쁜 아이들' 그 자체이기 때문에요. 팬들은 다양한 이유로 아이돌을 사랑하지만, 결코 그들은 외모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잖아요. 특히 여자 아이돌들에게는 더욱 심한 잣대가 들이밀어지구요.
-문제 2. 어린 아이들이 거대 산업의 도메인 자리를 유지함 그 자체에도 문제가 많지요. 자아를 형성할 시기에 어떠한 ‘대상'으로서의 자신만을 보게되고 데뷔라는 하나의 문을 위해서 청춘을 바칩니다.
-문제 3. ‘지속가능성’이라고는 그저 새로운 어린 아이들을 계속해서 공급하는 일
-문제 4. 케이팝 시장을 소비하는 자본은 ‘10대, 20대, 30대 여성의 주머니 털기’가 지배적
-문제 5. 다른 문화 생활이나 일상 생활과 비교했을 때 비합리적인 ‘팬 사인회' 가격
-문제 6. 아이돌의 ‘어림’이 가장 잘 팔릴 때 매출을 당기기 위해서 어린 아이들을 체력적 정신적으로 굉장히 소모시키지만, 꿈이라는 미끼로 당사자들은 이의조차 가지지 못하는 환경
-문제 7. 매출 당기기를 위한 건강하지 않은 앨범 판매 방식 (팬 사인회, 포토카드)
-문제 8. 일상 속 여자아이들은 사회적으로 여자가 받는 외모 코르셋을 받는 동시에, 외모를 ‘풀’(full)로 가꾼 여자아이돌들을 우상으로 보기 때문에 자동으로 ‘외모 강박 시너지’ 효과.
-문제 9. 급여 체계. 연예 기획사 사원들, 방송사 사원들, 헤메코(헤어·메이크업·코디네이터) 스탭 사원들이 모두 같이 ‘스타'를 만들어내지만 이들은 일반적인 사회인의 급여나 더 낮은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 그러나 스타들은? 이는 연예계 전반의 문제라고도 생각하지만 케이팝 산업 이야기에서 빠질 수는 없는 부분 같아요.
-문제 10. 연재 분에도 바로 언급된, 오빠들의 사건사고 (욕밖에 안나옵니다) 다른 부분도 공감이 많이 되었지만 ‘팬들만 아는’ 사건·사고 논란들 부분에서 정말 공감되었습니다. (똑바로 좀 살아, **놈들아) 언니들은 안 그러는데 왜 너네들은…
이상 너무 많은 이유들로 오빠 사랑을 그만둔 지 몇 년 되었습니다.
‘정말 비상식적인 부분이 많은 산업이다’라고 생각하던 저에게 근래 여러모로 마음이 매우 불편한 ‘내 아이돌'이 찾아왔습니다.
-마음이 불편한 이유 : 남자임(내가 아직도 어떤 남성에게 애정을 가질 수가 있다니? ‘나도 남미새인가’ 고뇌), 미성년자임(양심에 너무 찔립니다), 일본인임(본인은 애국 소녀, 일본 불매 6년차) 등등
이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덕질을 n년만에 다시 시작한지 2주도 안 된 저에게 이 시리즈는 정말 한 줄기 빛처럼 느껴지네요.
반가운 마음에 너무 긴 말을 했습니다. 실례했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반가운 글이고 시리즈 오래오래 연재되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다들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무 궁금해요. 가만있는 팬들한테 물어보면 시비 거는 일 밖에 안되니까, 친한 덕질 친구여도 의중을 ‘물어볼 수는 없었던’ 부분들이라서요. 정말 가까워서 이런저런 일들에 의견을 공유하다가 자연스레 이야기가 나오는 일 말고는 말 나눠보기 어려운 주제 같아요.
연재 화이팅입니다 !! (미아)
그들의 반짝반짝 빛나는 응원봉으로 오롯이 그들의 연두빛 인생을 노래할 수 있는 세상이 오고야 말기를, 꼭 그러하기를 기다려 봅니다. (냉정과 열정 사이)
오랫동안 케이팝을 좋아했었는데 요즘은 좋아하는 마음을 가진 저를 자꾸 의심하게 돼요. 사람 대 사람으로서 제일 나쁜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좋아하는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어서 슬퍼요. (유안)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어떤가요? 혹시 오늘도 “뇌에 과부하를 걸면서” 좋아하는 아이돌의 노래를 듣진 않나요? 언제든 다음 링크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남겨주세요. ▶응답하러 가기
정리·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여기, 케이팝과 함께 자란 이들이 있다. ‘최애’가 몇 번 바뀌는 동안 케이팝은 세계 음악 시장을 흔드는 장르가 되었고 국익을 거론하는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앞으로도 이렇게 ‘장밋빛 전망’만 가득할까? 물음표가 남는다. 기획사는 수익에만 매달리고, 팬덤은 덕질을 가장한 노동으로 지쳐간다. 사건사고도 반복된다. ‘케이팝, 사랑과 탈출 사이’는 케이팝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질문을 던지고 대안을 함께 고민한다.
*‘케이팝, 사랑과 탈출 사이’는 ‘케이팝 하는 여자들’과 ‘들불’, 한겨레가 공동 기획한 연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