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은 왜 울산을 선택했나
SK-AWS, 울산에 7조원 규모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짓기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울산의 ‘AI 대전환’…“민관과 초밀착 협력·중앙 정부 뒷받침 모범 사례”
(시사저널=김임수 기자)
대한민국이 저성장·저출생의 늪에 빠졌습니다. 인구 소멸은 곧 지방소멸을 뜻하며,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날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의료도, 주거도, 육아도 힘든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청년이 떠나고 노인만 남는 현실이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소멸과 집중의 속도를 늦추고 균형을 회복하는 일은 지금 우리 사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이는 지역균형발전을 약속한 이재명 정부의 시급한 시험대이기도 합니다. 시사저널은 2025년 말까지 지방소멸과 수도권 집중의 현장, 쟁점, 대안을 심층 추적하는 연중기획을 준비했습니다. 특히 각 지역 독자 여러분의 생생한 제보를 바탕으로 삶의 현장을 밀착 취재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365일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울산광역시에도 지방소멸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주력 산업인 광·제조업 정체와 청년층 이탈, 신성장동력 부족으로 울산의 영광은 점차 빛바래가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출현은 인류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위기로 대두됐다. 울산은 AI가 불러올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담대한 선택에 나섰다. AI를 적극 수용한 'AI 첨단도시'로의 대전환을 통해 새로운 기업과 인재들이 다시 유입되도록 빈틈없는 로드맵을 마련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울산의 지혜가 지방소멸의 슬기로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빠르게 늙어가는 도시의 패러다임 전환
울산은 1962년 '제1호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이후 60년간 승승장구했다. 2011년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수출 1000억 달러 시대를 여는 등 대한민국 산업의 중심축이었다. 현재도 울산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8123만원으로 전국 평균(4649만원)의 1.7배다. 2023년 울산 광·제조업 매출액은 274조원으로 대한민국 전체의 13.7%를 차지한다.
하지만 '부자 도시' 울산도 인구 감소의 파고는 피할 수 없었다. 위험한 전조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2025년 울산 전체 임금근로자 가운데 제조업 종사자 비중은 36.7%로 10년간 6.9%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전국에서 가장 큰 감소 폭이다. 근로자 고령화도 가속하고 있다. 지난해 울산의 취업자 가운데 50세 이상 비율은 47.5%로 2명 중 1명은 고령층이었다. 2050년 울산 50세 이상 인구 추정치는 55만9000명으로 전체 인구(85만3000명) 중 65.6%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도시 전체가 빠르게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AI 기술 발전과 공장 자동화는 전통 제조업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요소로 여겨진다. 울산은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도시의 새로운 성장 엔진이 될 기업 유치를 위해선 AI 중심의 도시 설계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울산은 현재의 위기를 미래의 기회로 바꾸기 위해 지난 몇 년간 △산업용지 적기 마련 △에너지 비용 경쟁력 강화 △원스톱 행정 도입을 통한 투자 환경 개선 등에 주력했다.
울산의 이 같은 노력은 최근 뜻깊은 결실로 이어졌다. SK그룹이 글로벌 1위 클라우드 기업 아마존웹서비스(AWS)와 함께 총 7조원 규모의 초대형 AI 전용 데이터센터를 울산에 구축하기로 한 것이다. SK-AWS AI 데이터센터는 2027년 11월까지 1단계로 41MW(메가와트) 규모로 건설된 후 2029년 2월까지 국내 최대 규모(103MW)로 완공될 계획이다. 이는 향후 30년간 약 25조원의 경제효과를 유발하고 7만8000여 명의 고용 창출을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6월23일 출범식에서 "울산이 과거 제조업 중심지였다면, 앞으로는 'AI 고속도로'의 강력한 새 엔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 공무원들, 매일 기업으로 출근"
울산의 AI 데이터센터 유치는 첨단기술산업이 수도권에 국한되지 않고 지방에도 성공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모범 사례다. 울산의 유치 과정은 한 편의 역전극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AWS는 데이터센터 건립 후보지로 호주를 1순위, 대한민국 수도권을 2순위에 놓았고 울산은 선택지에조차 없었다. AWS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은 SK그룹과 울산시의 '초밀착 협력' 덕분이었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8월25일 시사저널이 주최한 '굿시티포럼(GCF) 2025' 기조강연에서 울산시 공무원들이 데이터센터 유치의 숨은 공로자였음을 공개했다. 김 시장은 "울산시청 기업현장지원과 공무원들은 전원 시청이 아닌 기업으로 출근한다.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삼성SDI·SK·에쓰오일 등 대기업에 파견을 나가 있다. 시청으로 출근하는 기업 임원들도 있다"며 "매일 출근하면서 머리를 맞대면 3년 정도 걸리는 인허가 등 행정 절차가 6개월 만에 끝난다. 행정 절차에 드는 기업의 시간과 간접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울산시에 따르면, 김 시장은 이들 기업에 파견 간 공무원에게 '인허가 과정에서 다른 공무원은 안 만나도 되도록 하라'는 특별 당부도 남겼다고 한다. 이 같은 민관 초밀착 협력을 통해 울산 AI 데이터센터의 경우 6월 출범식 이전에 인허가 관련 절차를 모두 끝마쳤다. 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기 위해 가장 먼저 고려할 수 있는 리스크를 최소화해준 셈이다.
데이터센터의 경우 직접 고용이 많지 않다는 냉소적인 시선도 나왔으나 김 시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도시가 'AI 생태계'를 구축한다고 했을 때 데이터센터는 인프라 역할을 한다. 인프라가 생기고 데이터가 쌓이면 주변에 연구소, 그다음에 스타트업들이 들어오게 된다. 쉽게 말해 AI 연구개발(R&D)이 활성화되는 것"이라며 "생태계를 만들면 AI를 공부하고 싶거나 연구하고 싶은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 시장은 그러면서 "세계 최대 데이터센터가 위치한 미국 버지니아주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 본사 및 R&D센터가 집적화되면서 인구가 17% 증가했다. 울산시도 데이터센터를 주춧돌 삼아 전 주기에 걸친 AI 생태계를 조성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영탁 SK텔레콤 부사장 역시 AI R&D 활성화는 지역 인재 유출을 막고 수도권으로의 인재 이동을 줄이는 선순환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이 부사장은 "(데이터센터의) 직접 고용은 30~50명에 불과하지만, 연구자·학생·스타트업이 모여들며 클러스터가 형성되고 인구 유입 효과를 낳는다. 전력 데이터 같은 핵심 자원이 투입돼야 AI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돌아간다"며 "AI는 제조업뿐 아니라 농업·축산업, 가정 전력 효율화, 스마트 그리드 등에도 활용되고 민원 상담, 지능형 CCTV 교통 관리, 의료 연결, 교통편 조정 등 지역 현안 해결 수단으로도 강력하다"고 설명했다.

"AI를 '흉기' 아닌 '메스'로 활용해야"
전문가들은 과거처럼 기업 유치만으로 지역 인구와 경제가 살아나는 시대는 끝났다고 입을 모았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는 AI 기반의 도시계획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쏟아졌다. AI가 인류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흉기'가 아닌 산업구조를 완전히 재건하는 '메스'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정호 명지대 테크노아트대학원 교수는 "가령 교통편이 끊긴 지방 읍면 지역에 무인택시를 도입하면 재정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이렇게 절감한 재원은 미래 산업 유치에 투자할 수 있다. 에너지·수도 관리 등 인프라에도 AI·사물인터넷(IoT)을 접목하면 효율이 높아진다"며 "한국 기업들도 더 이상 대규모 인력 채용을 전제로 한 공장 건설을 지향하지 않는다. 서울 같은 대도시가 아니더라도 지역이 선제적으로 AI를 수용한다면 균형발전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제언했다.
울산 AI 데이터센터 유치 사례와 같이 민관이 초밀착 협력하고, 중앙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사례가 확산될 필요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선 정부의 과감한 재정 지원 및 규제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멸 위기를 겪는 지방과 소도시를 단순히 도와줘야 할 '시혜의 대상'이 아닌 새로운 발전과 혁신 성장의 동력으로 보도록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이영탁 부사장은 구체적으로 지역에 '메가 샌드박스'를 도입한다면 AI가 일자리와 사람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자석'이 될 수 있다고 첨언했다. AI 생태계 구축을 위한 지자체장의 의지와 파격적 인센티브, 정부의 규제 개선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협력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구상이다. 이 부사장은 "재정이 부족해지면 지자체는 디지털 전환 등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도 실행할 수 없다"면서 "전력·데이터 등 여러 규제를 한꺼번에 풀어야 AI 생태계가 정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역의 'AI 대전환'을 위해 무엇보다 인재 양성이 시급한 과제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정희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장은 "AI 시티가 만들어지려면 데이터가 쌓여야 하는데, 그 데이터를 다루는 전문가 양성이 굉장히 필요한 상황"이라며 "특히 AI와 국토·도시 분야에 모두 특화된 인재가 나와야 한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하나의 산업 생태계가 구축돼 생산력을 담보하게 되고 인재 양성이 활발해지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될 것"이라고 했다.
'AI 수도'로의 도약을 꿈꾸는 울산 역시 인재 양성과 발굴을 성공의 핵심으로 보고 지역의 대학·연구기관이 적극 나선 상황이다. 울산시청 관계자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 인공지능 대학원을 통해 석·박사급 AI 연구인력을 배출하고 있고, 울산대에서도 AI 노바투스 아카데미아 등을 통해 AI 실무형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며 "울산정보산업진흥원에서도 'AI 융합전공 신설' 'AI-자동차·조선 결합' 등을 통해 연관 인력을 500명 이상 배출했다"고 설명했다. 울산은 이번 SK-AWS 데이터센터 유치를 시작으로 2030년까지 울산형 제조 AI 혁신 허브를 조성하고, 2040년까지 스마트 모빌리티 연계 실증단지를 조성하는 등 아시아태평양 AI 허브 도약을 위한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나간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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