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길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한겨레 프리즘]


최현준 | 정치팀장
이해하기 힘든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발생하는 게 한국 정치라지만, 최근 발생한 ‘전한길 현상’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웠다. 8월 말 새 당대표를 뽑은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가장 주목받은 이는 전 한국사 강사이자, 극우 유튜버 전한길씨였다. 전씨의 국민의힘 입당과 연설회에서의 돌발 행동, 특정 후보 지지 선언 등은 전당대회 기간 내내 언론의 이목을 끌었다. 선정성을 추구하는 언론이 쇼맨십 강한 전씨에게 과도한 관심을 쏟은 것일까? 그런 면이 없지 않겠지만, 전씨의 지지를 받은 장동혁 후보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당대표에 당선된 것을 보면 그의 영향력이 실재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전한길-한동훈 중 누구를 공천할 것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차이가 장 대표와 김문수 후보의 당락을 갈랐다는 분석이 나오는 판이다. 날고 긴다 하는 정치인들이 전씨에게 쩔쩔맨 이유가 있었다.
3~4년 전인 것 같다. 유튜브에서 중년의 한 학원 강사가 학생들에게 욕설을 섞어가며 공부하라고 소리치는 영상이 떴다. “하루에 10시간도 공부 못 하면 때려치아라”, “공부에 아주 적성이 없는 ××는 하면 안 돼”, “공무원 공부 하라고 누가 시켰냐. 니들이 선택했잖아”. 몇년 새 유행하는 재연 코미디 영상인가 했는데, 공무원시험 한국사 일타강사 전씨가 수업 중에 학생들을 혼내거나 자극을 주는 영상을 편집한 것이었다. 욕설과 사투리에 거부감이 들었는데 자꾸 보다 보니 친근하고 재밌었다. 전씨의 열정적이고 거침없는 발언은 인기를 끌었고, 그는 120만 구독자를 거느린 100만 유튜버가 됐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이후 전씨는 우파 정치 유튜버로 변신했다. 비상계엄 이튿날인 12월4일 ‘비상계엄은 미친 짓’이라는 영상을 올렸던 전씨는 보름 뒤인 12월20일 “욕먹을 각오로 올린다”면서 계엄을 옹호하며 윤석열 탄핵을 반대한다고 입장을 바꿨다. 부정선거 의혹은 사실이며, 윤석열은 다수당인 민주당의 의회 폭주를 알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계엄을 했다는 주장이다. 이승만, 박정희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온 전씨가 보수, 더 나아가 극우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전씨는 8월20일 펴낸 책 ‘너희가 역사의 주인이다’에서 이런 주장을 되풀이한다. 300쪽이 넘는 책에서 전씨는 나름의 정세 판단과 해법 등을 내놓지만 극단적이고 정리되지 않은 주장이 가득하다. 부정선거의 근거나 비상계엄의 위헌성을 반박하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장동혁 대표는 이 책에 “자유와 정의를 되살리고자 몸부림친 시대의 증언”이라는 추천사를 썼는데, 책을 제대로 읽었는지 의문이다. 장 대표 외에 윤석열과 김진홍 목사, 김계리 변호사가 추천사를 썼다.
‘그 밥에 그 나물’이던 보수 유튜버계에 일타강사 출신 전씨의 등장은 신선했다. 빈약한 논리는 화려한 언변에 가려졌고, 극단적인 주장은 윤석열에게 실망해 강성 보수층만 주로 남은 국민의힘 지지 세력에 큰 만족감을 주고 있다.
전씨는 이제 한발 더 나아가 언론인을 자처한다. 기존 언론이 썩었다며 인터넷 언론사를 세우고 ‘전한길 뉴스’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 그의 유튜브 채널은 5개월 만에 52만명의 구독자를 모았다. 고성국티브이(130만명)나 성창경티브이(122만명), 신의한수(160만명) 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5개월 만인 것을 고려하면 무서운 성장세다. 윤석열 탄핵 반대를 넘어 부정선거 음모론을 설파하고 비상계엄까지 긍정하는 그에게 유력 보수 정치인들이 머리를 숙이는 이유다.
전씨의 미래는 어떨까. 그는 장 대표 당선 직후 “제 도움으로 장동혁 대표가 당선됐다”면서도 “최고위원 자리 등을 추천해도 고사하겠다. 노 생큐다”라고 했다. 진짜 속마음이 그럴까. 전씨는 본인 책에서 “전한길은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계승자이자 지지자”라며 “직접 당대표 후보로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장 대표는 최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전씨는) 외곽에서 의병 역할을 하는 것이 현재 가장 적합한 자리”라고 했다. 어떤 결론이 날지 두고 볼 일이다.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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