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19세기 말 엘리트 '신여성'들과 현장의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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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5월 한국 최초 여성 교육기관인 이화학당이 신입생 한 명으로 개교했다.
그들, 근대 정신과 지식으로 무장한 이들이 이른바 조선의 '신여성'들이다.
거기에 일본 유학파 등이 가세하면서 1920년 3월 한국 최초 여성 잡지 '신여자'가 창간했고, 22년 6월 개벽사의 '부인', 23년 9월 천도교 청년회의 잡지 '신여성'이 잇달아 나왔다.
여권 신장과 생활 혁신, 여성의 사회적 진출 등을 요구한 그들, 한국 여성운동의 첫 세대는 대부분 엘리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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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5월 한국 최초 여성 교육기관인 이화학당이 신입생 한 명으로 개교했다. 입학생은 1899년 47명, 1909년 174명으로 급증했다. 1894년 평양 정의여학교가, 이듬해 서울 정신여학고와 부산 동래 일신여학교 등이 잇달아 문을 열었다. 그들, 근대 정신과 지식으로 무장한 이들이 이른바 조선의 ‘신여성’들이다. 1919년 만 16세 여성 유관순(1902~1920)도 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이었다.
거기에 일본 유학파 등이 가세하면서 1920년 3월 한국 최초 여성 잡지 ‘신여자’가 창간했고, 22년 6월 개벽사의 ‘부인’, 23년 9월 천도교 청년회의 잡지 ‘신여성’이 잇달아 나왔다. 여권 신장과 생활 혁신, 여성의 사회적 진출 등을 요구한 그들, 한국 여성운동의 첫 세대는 대부분 엘리트였다.바느질, 베 짜기 등으로 생계를 돕거나 도맡던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교역 등 상업에 진출하고 요리점과 찻집 등 경영에 나선 것도 19세기 말 20세기 초였다. 헤이그 밀사 이준의 아내 이일정은 ‘부인상회’를 운영해 번 돈으로 여성단체를 지원하고 유학생 장학금을 댔다. 주로 일본인이 경영하던 연초회사나 직조회사, 인쇄국, 가스회사에도 당연히 ‘여공’들이 있었다.
서구 사회에서 ‘New Woman’이란 용어가 대중화한 건 우리보다 약 30년 앞섰다. 조지아 여대(1836년 개교, 현 웨슬리언 칼리지)와 바너드, 브린모어, 래드클리프 등 여대를 나온 이들이 드물게 변호사와 의사 등 전문직에 진출하던 무렵인 1878년 9월 1일, 뉴잉글랜드 여성 엠마 너트(Emma Nutt 1869~1915)는 보스턴 전화회사 교환수가 됐다.
1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남성 교환수들이 불친절과 장난 등으로 연일 말썽을 빚자 회사가 실험적으로 여성을 채용한 거였다. 인류 최초의 여성 전화교환수인 너트는 고객 응대 및 교환 업무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며 거의 숨질 때까지 33~37년을 근무했다. 이후 전화교환수는 여성의 직업이 됐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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