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DNA로 풀어보는 케데헌 서사 [인문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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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면 신발 끈을 묶는 아침.
이 서사의 조상 격에는 분명 성경이 있을 것이다.
결국 케데헌은 아이돌 의상을 걸친 구원 서사다.
다만 아저씨로서 좀 얼떨떨한 것은, 이 서사의 주인공이 너무 오글거려 살짝 훔쳐만 봤던 K팝 걸그룹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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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면 신발 끈을 묶는 아침. 바쁨과 경쟁으로 다급해지는 마음을 성인들과 선현들의 따뜻하고 심오한 깨달음으로 달래본다.

진정한 자아를 찾고 싶다면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자신을 던져보라. 그래서 얼마 전, 나는 계몽되었다. 나의 유튜브가 ‘블랙핑크’로 가득 차는 것을 감사히 받아들인다. 한 가지 더. 이제는 부끄러워 마시고 ‘케데헌’(K-Pop Demon Hunters)도 보시기 바란다.
이 영화의 서구권 흥행을 단순히 ‘K-컬처 열풍’ 탓이라 치부하기엔 설명이 부족하다. 플롯 속에서 오래된 서사의 공명이 울려오기 때문이다. 빛과 어둠의 대립, 상처 입은 구원자, 군중의 열광과 배신, 그리고 누군가의 희생으로 완성되는 승리. 이 서사의 조상 격에는 분명 성경이 있을 것이다. 3,000년간 역사에 회람된 대본이다. 신앙은 잊는다 해도, 플롯은 지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 속 골격이 낯익다. 바로 ‘빛과 어둠의 싸움’이다(요 1:5). 인류가 질리지 않고 수천 년째 소비해온 이야기 틀이 고대 신화에서부터 마블 영화, 그리고 케데헌까지 이르렀다. 영화에서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스의 대결이 ‘보이지 않는 영적 싸움’이었다(엡 6:12). 다윗이 음악으로 악령을 쫓았던 것처럼, 주인공은 노래로 악을 물리쳤다(삼상 16:23).
팬덤 묘사도 흥미롭다. 영화는 군중이 잘못된 대상을 숭배할 때 얼마나 쉽게 최면에 걸리고, 얼마나 빠르게 파멸로 향하는지를 보여준다. 악마 보이그룹이 내세운 곡 제목은 다름 아닌 ‘Your Idol’인데, 성경에서 ‘아이돌’은 악의 숭배 대상이며 ‘우상’으로 번역된다.
팀 리더인 루미의 서사 역시 흥미롭다. 악마의 흔적을 감추려는 강박, 수치심에 눌린 자기혐오, 그리고 “드러냄으로써 해방된다”는 클라이맥스는 아담과 하와의 은폐에서부터 예수의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까지 이어진 긴 서사의 에코다.
물론 영화의 대본을 성서 구조에 염두를 두고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수천 년간 인류의 상상력을 배양해 온 서사는 이미 문화적 DNA가 되어 있다. 그래서 서구 관객은 이 영화를 “걸그룹이 악마를 두들겨 패는 코믹 판타지”로 즐기면서도, 동시에 어딘가 숭고한 감흥을 느낀다.
결국 케데헌은 아이돌 의상을 걸친 구원 서사다. 종교와 상관없이 인간은 언제나 빛과 어둠, 수치와 해방, 희생과 구원의 이야기에 끌린다. 우리는 모두 구원받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오래된 서사가 여전히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 부른다. 다만 아저씨로서 좀 얼떨떨한 것은, 이 서사의 주인공이 너무 오글거려 살짝 훔쳐만 봤던 K팝 걸그룹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큰일을 했으니 쑥스러워 말고 핑크색 응원봉을 흔들어 주고 싶다.

기민석 목사·한국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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