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 주변은 ‘진공 상태’… 50걸음마다 軍이 통제·검문

중국이 ‘항일 전쟁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기념일’로 부르는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을 사흘 앞둔 31일 아침, 베이징 천안문 인근은 삼엄한 통제 속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인민대회당을 중심으로 동서로 1~2㎞에 이르는 창안제(長安街) 도로변에는 50걸음마다 군인·경찰이 배치됐다. 천안문 광장에서 3㎞ 떨어진 젠궈먼(建國門) 지하철역에서 광장 앞까지 가는 동안 두 군데의 검문소에서 신분증 검사를 받아야 했다. 마지막 검문소 앞에 늘어진 긴 줄에 서서 땀을 닦던 허베이 출신 첸모(42)씨는 “내일(1일)부터 열병식이 열리는 3일까지 천안문 광장의 관광객 출입이 전면 금지된다고 해서 어머니와 이곳부터 방문하게 됐다”고 했다.
중국은 반미·반서방 연대의 무대가 될 열병식을 ‘무결점’으로 치르기 위해 고강도 도시 통제에 돌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 우선주의와 관세전쟁으로 국제 질서를 흔드는 틈을 노려 열병식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다자 무대 리더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게 중국의 계산이다. 과거에도 중국 최고 지도자에게 열병식은 국제사회에 중요 메시지를 던지는 자리였다. 덩샤오핑 주석은 세 차례 실각 끝에 복권된 뒤 1984년 건국 35주년 열병식에서 중국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을 공개하며 개혁·개방 노선의 정당성을 과시했고, 1999년 건국 50주년 열병식에서는 장쩌민 주석이 덩샤오핑의 후광을 벗어나 최고 권력자의 위상을 확인했다. 시진핑 주석은 집권 1기였던 2015년 치른 열병식에서는 ‘강군몽(强軍夢·강한 군대를 갖겠다는 꿈)’을 제시했다.


천안문 광장 앞에는 열병식을 위한 대규모 임시 관람석이 설치됐다. 전승절 기념 대회 지휘부의 톈중리 기획디자인부장은 “광장 내 3만7000석을 포함해 창안제 양측까지 총 5만 석”이라고 했다. 과거 열병식에선 관람석을 빨간색 의자 위주로 채웠지만 이번엔 ‘풍요의 황금색’ ‘성벽의 붉은색’ ‘강군 상징인 녹색’으로 ‘3색 구역’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경제·정치·군사 역량을 만방에 과시하겠다는 의미다. 관람석 주변을 둘러싼 꽃 장식은 중국공산당의 전통을 상징하는 붉은색의 사철베고니아와 번영을 뜻하는 황색공작초로 채워졌다. 광장 맞은편 인민영웅기념비 양옆에는 ‘1945(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해)’와 ‘2025’가 새겨진 대형 조형물이 세워졌다.
시진핑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나란히 앉게 될 천안문 망루에는 붉은 깃발 80기가 달렸다. 러시아 크렘린궁에 따르면 시진핑 오른쪽에 푸틴이, 왼쪽에 김정은이 앉을 예정이다. 이 성루는 1959년 김일성이 마오쩌둥과 나란히 서서 열병식을 지켜보며 ‘항미원조(抗美援朝·6·25전쟁의 중국 측 표현)의 혈맹’을 과시했던 자리다. 그때 이후 북한 최고 지도자가 중국 열병식에 참석한 적이 없고, 북·중·러 정상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 또한 탈(脫)냉전 이후 처음이다.

열병식 당일에는 창안제 주변 건물이 전면 폐쇄되고 외신 기자들의 사무실 출입은 제한될 예정이다. 베이징시는 지난 29일 시내뿐 아니라 외곽까지 드론·풍선 비행 금지 구역으로 규정했다. 중국 국가안전부는 “이번 열병식에서 차세대 무기와 장비가 공개돼 군사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겠지만, 국가 기밀 보호와 안보 장벽 강화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이징의 시민들은 주말마다 반복된 대규모 열병식 예행 연습으로 교통 차단 등 불편을 겪었지만, 열병식이 막상 다가오자 ‘애국 축제’를 즐기는 듯 상기된 모습이었다. 이날 천안문 인근 대로변 곳곳에 마련된 ‘전승절 80주년’ 대형 조형물 앞에는 인파가 몰려들어 기념사진을 찍었다.

김정은의 방중을 앞두고 베이징의 주중 북한 대사관과 기차역도 소란스러워졌다. 지난 30일 북한 대사관에서는 ‘귀한 손님’맞이 본관·기숙사 리모델링 막바지 공사가 바쁘게 진행되고 있었다. 김정은은 이번 방중에서 중국의 영빈관인 댜오위타이(釣魚臺)에 투숙하고, 중국 최고지도부의 거주지인 중난하이(中南海)에서 북·러, 북·중 회담 등을 소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김정은이 2일 베이징에 도착할 경우, 당일 푸틴과 양자 회담을 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김정은이 육로로 입국할 가능성이 큰 가운데, 이날 베이징 기차역에서는 무장 경찰들이 매표소와 출입구를 둘러싸고 경계를 펼치고, 기차역 안에서 집단 사열을 진행했다. 이날 베이징역 매표소 건물 내부 호텔에 투숙 가능 여부를 물어보니 직원들이 “1일부터 3일까지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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