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세 복미영의 1호 팬은 자기 자신… “우리 같이 팬클럽 가입해 볼까요?”

황지윤 기자 2025. 9. 1.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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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미영 팬클럽 흥망사’ 낸 박지영
“누군가를 돌보다 돌봄받는 상황
블랙코미디로 뻔뻔하게 표현”
본지와 만난 소설가 박지영이 스마트폰으로 “복미영 팬클럽” 전광판 문구를 만들어 보였다. 그는 “적극적으로 팬클럽 홍보에 임하고 있다”며 웃었다./남강호 기자

“오늘은 복미영 팬클럽 회장으로 왔습니다.”

소설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현대문학)를 펴낸 소설가 박지영(51)이 스마트폰으로 전광판 문구를 만들었다. “용맹하고 경솔하게” 소설을 아우르는 정조다. 그는 인터뷰 중 둘둘 만 종이를 가방에서 꺼내 펴 보였다. 복미영이 좋아하는 과일(참외)·계절(늦여름)·책(‘베르사이유의 장미’) 등 10문 10답이 적혀 있었다. 내향인일 것이 분명한 이 소설가는 조용조용 엉뚱한 개그 코드를 뽐냈다. 소설과 똑 닮았다.

책은 56세 여성 복미영이 자신을 위한 팬클럽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한다. 밴드 자우림의 곡 ‘팬이야’ 소설 버전이랄까. 계기는 덕질하던 최애(가장 사랑하는) 배우 W가 문화면이 아닌 사회면에 등장한 것. 음주 운전에 뺑소니로도 모자라 불법 촬영물 메신저방 단체 멤버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최애를 사회면에서 본 게 벌써 세 번째. 복미영은 ‘나는 어째서 쓰레기들만 좋아하는가’ 고민하다가 자신을 ‘쓰레기 감별 아티스트’라고 여기기로 한다. 빠른 탈덕(팬을 그만두는 것)으로 ‘버리기 아티스트’가 된다. 그리고 결심한다. ‘까짓것, 나도 팬클럽 하나 가져보자.’ 어처구니없는 뒤집기의 향연. 박지영식 블랙코미디에 빠져든다.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2013년 조선일보 판타지문학상 공모에 당선됐다. 이후 공백기가 있었다. 소설을 썼지만, 발표하지 않았다. 박지영은 “상금을 목적으로 글을 썼다거나 상을 받을 만한 글이 아니었다는 생각 때문에 계속 소설을 써도 되는 걸까 고민했던 시기”라고 했다. 그러다 2022년 9년 만에 장편 ‘고독사 워크숍’을 펴낸 것을 계기로 최근 왕성하게 쓴다. 2023년 ‘이달의 이웃비’ 지난해 ‘테레사의 오리무중’ ‘컵케이크 무장 혁명사’ 등을 펴냈다. 평단도 그를 주목 중이다.

인터뷰에 앞서 박지영 소설가가 만들어 보인 다른 스마트폰 전광판 문구. "용맹하고 경솔하게" 이는 소설을 아우르는 말이다. /남강호 기자

‘복미영…’은 마냥 웃어넘기기 어렵다. 소설은 50대 ‘이모님’을 조명한다. 돌봄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이 돌봄을 받아야 할 때, 너무도 손쉽게 대체되고 버려지는 상황에 대해 ‘이모 호환성 연구’ 같은 메마른 표현을 툭 던진다. 실소(失笑)하는 틈에 묵직하고 뜨거운 감정이 흘러 들어온다. 소설가는 “복미영은 우리가 흔히 ‘이모님’이라고 부르는 사람 중 한 명이지만, 끊임없이 자기 삶의 어떤 혁명을 꿈꾸는 인물”이라고 했다. 결국 이 소설은 작가의 ‘복미영 팬클럽 가입 권유서’인 셈. “이런 사람을 같이 좋아해 봐요, 선보이는 마음입니다.”

‘고립’과 ‘돌봄’. 박지영의 소설 세계를 끌고 가는 화두다. 그는 “나와 함께 오래 같이 늙어갈 이웃들을 한 명씩 내 곁에 존재케 한다는 느낌으로 쓰고 있다”고 했다. 다만 ‘돌봄’이라는 말이 “뻔하고 낡게 느껴진다”는 것이 요즘 고민. 그는 “뻔한 이야기를 뻔뻔하게 계속하기 위해 블랙 코미디를 빌린다”고 했다. “뻔한 이야기가 낡은 채로 더 말해져도 좋다고 믿는 상태가 제가 할 수 있는 혁명이거나 전복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는 그것이 자신이 믿는 “낙관”인 것 같다고 했다. 박지영은 독자의 마음에 물을 준다. 용맹하고 경솔한 복미영의 낙관을 믿고 싶은, 마음의 싹이 움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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