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추모비에 후손 도리 못한 후회 밀려와 눈물”
대한독립애국단 철원군단 창단 핵심 멤버
강원도단 발각 후 징역 3년형 선고 받아
정의학교 창립 등 독립운동 의지 여전
정부 대통령 표창·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김철회 선생 증손자 김형근씨
본지 보도 계기 선조 발자취 찾기 결심
철원군단 결성 장소 ‘도피안사’ 방문
철원 독립유공자 위한 보훈시설 태부족
“기념관 정도는 있어야… 아쉬움 커”
광복 80주년 잃어버린 영웅을 찾아서 - 23. 강원도민일보 보도로 선조의 독립유공 발자취 찾아 나선 후손
“할아버님이 활동하셨던 곳을 직접 가보니 그동안 나라를 위해 노력하고 감내하셨을 모습에 눈물이 났습니다.”
철원 출신 독립운동가 김철회 선생의 증손자 김형근(67)씨는 최근 증조부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찾아 나섰다. 본지가 철원 군민들로 구성된 철원독립운동기념사업회의 활동과 철원 애국선열추모비 등을 소개한 기사들을 보고 직접 방문하기로 결심, 사업회 측과 연결돼 선조의 독립운동 활동지를 찾은 것이다. 그의 선조부인 김철회 선생은 대한독립애국단 철원군단을 결성한 핵심 멤버 중 한 사람이다. 대한독립애국단은 1919년 3·1 운동 이후 국내 독립운동을 이끌고,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활동을 했다. 3·1 운동 후 이어진 각종 탄압에도 독립운동의 열기가 식지 않았던 데에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철원도단에서 승격된 강원도단은 전국 도단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활발한 활동을 폈다. 친일부역자들의 밀고로 선생은 일경에 의해 체포됐으나 출옥한 뒤에도 독립운동을 이어갔고, 끝없는 감시 속에서도 독립을 향한 염원과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의 후손 김형근(67)씨는 “늦었지만 이제라도 후손으로써 할아버님의 공훈과 역사의 발자취를 알고, 그의 공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 철원 출신 독립운동가 김철회 선생
1875년 철원에서 태어난 김철회(金喆會) 선생은 대한독립애국단 철원군단을 창단한 핵심 멤버 중 한 사람이다. 대한독립애국단은 1919년 3·1 운동 이후 국내 독립운동을 이끌고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활동을 한 단체로, 당시 독립운동 단체 중 가장 크고 활발하게 활동한 단체로 알려져있다. 그 중에서도 강원도단은 전국 도단 중 가장 왕성한 활동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철원독립운동기념사업회에서 펴낸 ‘독립운동의 성지 평화통일의 중심 철원’에 따르면, 대한독립애국단 철원군단은 1919년 8월 11일 밤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 도피안사에서 강대려, 김철회, 박건병, 김완호, 이용우, 이봉하, 오세덕 선생 등이 모인 가운데 결성됐다. 신현구 선생 등의 주도로 서울에서 처음 결성된 대한독립애국단은 국내의 조직망을 바탕으로 상해임시정부의 선전 활동과 군자금 조달을 비롯한 임시정부의 연통부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김철회 선생은 철원군단에서 외교부원을 맡아 임무를 수행했고, 강원도단에서는 통신국장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1920년 친일부역자 3명의 밀고에 의해 대한독립애국단 강원도단이 발각되면서 선생 등 철원 출신 독립운동가 15명은 일경에 붙잡히고 만다. 결국 선생은 그해 12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그럼에도 선생의 독립운동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1920년대 군사훈련을 교육했던 정의학교를 세웠고, 동아일보 철원지국장을 역임하며 민족의식 고취활동을 했다. 3·1운동을 하던 동지의 시신을 비밀리에 인수해 안장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모진 고문을 받고 석방되기도 했다.
1933년에는 비밀결사단체인 철원사회주의자협의회 활동을 하다 사건이 발각돼 정의식, 박용준 등 37명과 함께 치안유지법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거돼 또 한 번 옥살이를 했다. 이후 일경의 감시가 점점 심해지자 일본으로 밀항, 그곳에서 지하공작을 펼치다 체포돼 본국으로 송환됐다.
이후에도 조국을 위하는 그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일경의 끝없는 감시로 철원을 벗어나야 했지만, 서울 보광동에 자리를 잡은 뒤에도 한약방을 운영하며 지역민들의 건강을 살폈고 일본인들을 쫓아냈다. 그의 증손자 김형근씨는 “할아버님께서는 일본인들이 혹여 처방을 받으러 한약방에 오기라도 하면 진맥도 하지 않고 곧바로 쫓아내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처럼 그의 집안 역시 3대까지 공직생활은 커녕 아무런 활동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김형근씨의 부친 김원식씨 역시 공직생활은 물론 어떤 활동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조부이자 독립유공자인 김철회 선생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정부는 그의 이러한 공적을 기려 1963년 대통령 표창을,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 선조의 독립운동 활동지 찾은 후손
김형근씨는 최근 철원독립운동기념사업회 측의 안내를 받아 증조부가 대한독립애국단 철원군단을 결성한 장소인 ‘철원 도피안사’를 찾았다.
어릴 적부터 장손이었던 아버지로부터 증조부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기에 선조가 독립유공자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직접 활동지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 본지가 보도한 철원독립운동기념사업회 관련 기사와 철원 애국선열추모비가 철원고에서 철원문화공원으로 옮겨졌다는 기사 등을 발견하면서 선조의 발자취를 직접 찾아나설 것을 결심하게 됐다.
김 씨는 “기사에 담긴 사진으로만 봐도 추모비가 너무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떻게 된 일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알아보고 싶어 찾게 됐다”며 “친척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제가 장손이 됐는데 할아버님 유해부터 후손으로서 할 도리를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이제라도 도리를 다하고 선조의 공을 알리고 싶어 찾아나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에 지난달 기념사업회 측의 안내로 증조부가 몸담았던 철원군단의 핵심 활동지와 철원에 조성된 독립운동문화거리 등을 방문한 그의 눈에는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 김 씨는 “할아버지께서 독립운동을 하느라 가족을 뒷전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들었다. 이 때문에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가족들이 이해를 했으니 현재가 있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며 “그런데 직접 할아버님이 머물렀던 곳과 활동했던 장소를 돌아보니 죄송한 마음과 나라를 위해 노력하신 것, 그동안 감내하셨을 것을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고 했다.

■ 선조의 발자취 알고 싶어 찾았지만
현재 철원에는 독립유공자들을 위한 애국선열추모비 외에는 마땅한 보훈시설이 없다. 이마저도 일제강점기 당시를 재현해놓은 문화거리 인근에 위치해 있어 군민들 사이에 논란이 되고 있다.
김 씨는 “추모비가 위치한 문화거리에 가보면, 위에는 당시 일제시대를 재현해 놓고 아래는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을 기리는 거리가 조성돼있는데 이상했다. 위 아래가 바뀌어야 맞다고 본다”며 “이렇다보니 인터넷에도 독립운동가 거리에 대한 후기는 없고, 당시 일본을 재현해놓은 거리에서 인력거를 탄 사람들의 후기만 가득했는데 참 속상했다”고 말했다.
철원지역은 대한독립애국단의 활동뿐 아니라 강원도에서 3·1운동이 최초로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당시 강원도에서 3·1운동을 하다 가장 많은 인원이 일제의 총검에 맞아 순국했다. 독립운동의 거성 박용만 선생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가와 지자체는 이들을 기리기 위한 어떠한 활동도 나서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보다 못한 군민들이 자체적으로 철원독립운동기념사업회를 건립해 선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김형근 씨는 “당시 전국에서 가장 크게 독립운동을 했던 지역이라고 하면 기념관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아무것도 없어 아쉬움이 크다”며 “저 역시 선조의 공훈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죄송한 마음에 이제라도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개인으로서는 한계가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후손이 수혜를 받든 안 받든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에 대한 업적 등은 역사적으로 남겨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며 “국가나 지자체도 아니고 일반인으로서 사업회에 있는 분들이 지역에 업적을 남긴 분들을 찾아 독립운동 선양에 앞장서고 있으니 이게 맞는 지 의문이 든다.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우형 철원독립운동기념사업회 연구위원장은 “철원이라는 역동적인 지역은 국권이 침탈당하기 시작한 1894년부터 1945년까지 통틀어 보면 서훈대상자로 뽑힐 만한 분이 250명은 족히 넘는다”며 “그런데 이들에게 관심이 없다 보니 독립유공자가 73명에 그치고 있다. 이제라도 철원의 독립유공이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최현정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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