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다] 아프면 쉴 수 있나요?

강병수 2025. 8. 3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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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송강현/배달 노동자
갈비뼈가 금이 가든 뭐 어디가 조금 끊어지든 어떤 분들은 깁스하면서까지 일을 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일을 멈추는 순간, 삶이 무너지는 현실.

김금려/활동지원사
고령자가 아파도 쉬고서 갈 만한 일자리가 없습니다. 어디에도 없어요.

아프다는 말조차 쉽게 꺼내지 못하는 사람들.

이하나/콜센터 직원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너의 자기 관리의 부족으로 아프게 되는 그런 인식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부분들도 있고

‘쉼’을 택할 수 없는 노동자,
이들은 오늘도 아픈 몸을 이끌고 일터로 향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숨 가쁘게 달려가는 6년 차 오토바이 배달 노동자 송강현 씨.

송 씨는 지난해 배달 도중 일어난 사고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합니다.


송강현/배달 노동자
신호 지키고 있는데 뒤에서 갑자기 차가 와서 치니까 넘어졌는데 제가 앞으로 조금 많이 날아갔어요. 그래서 다쳤는데 이제 쇄골 부러지고 근육도 다 파열돼 수술하고 했죠

하지만, 산재 신청도 못 한 채 수술이 끝나자마자 다시 오토바이에 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송 씨의 팔은 여전히 제대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송강현/배달 노동자
수술하고 딱 팔이 지금 이게 다 올라가지가 않아요. 이 열중쉬어도 잘 안돼요 재활은 충분히 하는 데 한 1년 걸려야 되는데 재활도 못 받고 지금 계속 이런 상황이에요.

활동 실적에 따라 등급을 부여하는 배달 플랫폼 기업들. 등급이 낮으면 받을 수 있는 배달 요청도 줄어들기 때문에 일을 멈출 수 없습니다.
송강현/배달 노동자
너무 아파서 수술하고 재활을 똑바로 해야 하는데 등급제라는 걸 바꿔 놓고 단가도 이제 떨어뜨리고 나니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나와서 일을 해야 하는 상황밖에 안 되겠더라고요. 안 나와서 등급이 낮으면 호출도 안 주고 하니까 일을 할 수밖에 없죠

아픈데도 쉬지 못하고 무리하게 일한 결과는 비극으로 돌아옵니다. 올해만 벌써 배달 노동자 16명이 배달 도중 사고로 숨졌습니다.

송 씨는 이들에게 ‘쉴 권리’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는지 되묻습니다.

송강현/배달 노동자
이렇게 저희가 사고가 많이 납니다. 위험에 노출돼 있고 그런데도 보장되는 건 아무것도 없고 플랫폼에서 쿠팡이나 배민에서 한마디는 하겠죠. 몸은 괜찮으세요? 이 말이 끝입니다.

노동법의 사각지대라고 불리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선 아파서 쉴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이기적’인 행동으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2년 전 유방암 3기 판정을 받았던 보육교사 이유미 씨. 항암 치료를 위해 병가를 신청한 이 씨에게 돌아온 대답은 ‘나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미/보육교사
(보육시설에서) 나를 위해서 권고사직으로 해주겠다. 권고사직으로 나가서 실업급여 받아라. 그게 당신을 배려하는 거다. 우리가 생각해 주는 건데 왜 이렇게 대화가 안 되냐. 말을 안 듣냐. 여기가 운영되는 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한다. 이렇게 말했었죠

4명의 교사로 운영되는 보육시설에선 이 씨가 나가지 않고 쉬면 다른 인력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유미/보육교사
6개월 무급휴직이 끝났을 때 바로 연락이 오더라고요. 또 빨리 사직서 내라고 메시지가 오고 그랬죠. 메시지를 보면 ‘당신은 이런 사람이라고, 빨리 빨리도 안 하고’. ‘내가 메일 보낸 건 읽지도 않냐, 메일 읽어라, 읽어라’ 이렇게 오고 그랬었죠


실제로 우리나라 노동자 10명 중 9명은 아파도 쉬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한국의 병가 일수는 1.2일로, 캐나다 8.5일, 프랑스 9.2일, 독일 11.7일 등과 비교하면 매우 적습니다.

김혜진/불안전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아파서 쉬었다고 하면 한국 사회에서는 성실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이상하게 갖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계약직 노동자들은 다음 재계약 때 불이익을 당할 우려가 있으니까 결국은 쉬지 못하게 되기도 하는 거죠. 이런 불이익에 대한 우려가 생각보다 매우 큰 것 같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일부 대기업과 공공부문을 제외하면 유급 병가가 제대로 보장된 일터가 드물기 때문에 ‘아프면 쉴 권리’를 공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코로나19 유행을 계기로 아플 때 쉬는 게 사회 안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인식이 커지자, 정부는 2022년 7월부터 상병수당 시범 사업을 실시했습니다.

업무와 관련 없는 질병이나 부상으로 일을 하지 못해도 쉬면서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소득을 지원하는 겁니다.

대상자는 해당 지역에서 일하는 15살 이상 65살 미만의 국민으로 건강보험과 고용보험 등에 가입된 근로자는 물론 자영업자도 포함됩니다.


각 시범 사업 단계별로 소득 기준과 지급 금액을 변경하며 현재까지 전국 14개 지역에서 시행됐습니다.

임승지/건보공단 보건의료정책연구실장
소득 상실이 두려워서 쉬지 못한다면 계속해서 질병을 키울 수밖에 없을 것이고 종국에는 가계 경제가 파탄되는 그런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상병수당이 있다면 근로자가 아팠을 때 소득 상실에 대한 두려움 없이 쉬었다가 다시 업무에 복귀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용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은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재훈(가명) 씨는 상병수당을 통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경제 사정 때문에 주말도 없이 매일 10시간 넘게 일을 해왔던 김 씨는 지난해 갑작스러운 허리 통증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움직일 수조차 없는 상황에도 당장 생계부터 걱정해야 했습니다.

김재훈(가명)/자영업자
‘내가 쉬게 되면 임대료 어떻게 내지’ 전기료 이런 걱정을 하지 않습니까? 그냥 살아 있는 지옥 같아요. 내가 아픈데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려운 거 같아요.

그때 가뭄의 단비처럼 알게 된 것이 바로 상병수당이었습니다.

하루 4만 7천 원, 상병 기간 24일을 인정받아 100만 원 조금 넘는 돈이라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김재훈(가명)/자영업자
쉬다 보니까 나가서 아 이제 더 힘내서 파이팅 한번 해보자 이런 느낌도 있어요. 저한테는 제일 어려운 시점에 도와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그럴까. 상병수당의 존재가 특별했죠

전문가들은 부상이나 질병 때문에 소득이 끊겨 빈곤으로 이어질 위험을 막는 ‘사회안전망’ 역할을 상병수당이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정혜선/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아픈 상태에서 소득이 보전되지 않으면 직장을 잃게 되고 또 직장을 잃게 되면 또 소득이 보전되지 않아서 빈곤이 악화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결국은 질병과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 발생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 그 질병과 빈곤의 악순환을 끊는 의미에서 상병수당이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재 OECD 국가 중 우리나라만 상병수당을 공식적으로 실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애초 올해로 예정됐던 상병수당 전면 도입 계획은 2027년으로 미뤄졌고, 올해 시범 사업 예산마저 36억 원 정도로 지난해보다 75% 넘게 삭감됐습니다.

강민구/보건복지부 상병수당제도 팀장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상병수당 도입을 위해 여러 가지 모형을 시범 적용하며 효과성과 관리 운영 가능성을 충분히 검증하느라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상황입니다.


13년 전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을 돌보고 있는 68살 김금녀 씨,

장애인을 돕는 활동지원사로 일하며 받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한 해 한 해 갈수록 먹어야 하는 약은 늘어가지만 김 씨는 아파서 쉬고 싶다는 말은 꺼낼 수 없다고 합니다.

김금녀/고령 노동자
병원 가야 돼 소리를 못 했어요. 선생님 쉬세요 그럴까 봐 못 했어요. 제가 만약에 젊었다면 조금 많이 젊어서 앞으로 일을 할 기간이 많다면 권리를 내가 찾으려고 해볼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 고령자다 보니까 그만두라고 하는 게 확실하니까 저 그런 거 생각 못 해봤죠

소득을 보전해 주는 상병수당도 김 씨에겐 다른 나라 얘깁니다.

현재 시범 사업에선 65살 이상 고령 노동자와 외국인은 제외됐기 때문입니다.

김금녀/고령 노동자
65세면 제가 생각할 때 한창 일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이렇게 미리 잘라놓고 이 사람들에게 어떤 법적인 권리 그런 게 없다고 하면 조금 많이 억울할 것 같습니다.

노인 빈곤율 40%, 고령 노동자의 비정규직 비율은 80%를 넘는 현실.

현재 시범 사업 중인 상병수당은 생계 때문에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이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김혜진/불안전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한국 사회에서는 이미 고령자들이 굉장히 많이 일을 하고 있어요. 이런 노동자들 정말 아픈 노동자들 그래서 아플 때 쉬지 못하면 아예 노동력을 잃어버릴 수 있는 노동자들을 범위에서 제한한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문제겠죠.

상병수당이 있어도 사용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반응도 나옵니다.

8년 차 콜센터 노동자 이하나 씨,


멈추지 않는 전화벨 뒤에서 늘 긴장 속에 사는 이 씨에게 폭언은 일상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 씨는 회사에 아픔을 토로하는 것조차 두렵다고 말합니다.

이하나/콜센터 노동자
‘너는 왜 이렇게 예민하니, 왜 이런 거 가지고 자꾸 불만을 제기해, 콜센터라는 데가 그런 곳인 줄 모르고 왔어’라는 식의 그런 반응들이 사실 2차 가해처럼 더 큰 상처를 주는 부분이 있어서 말을 할 수가 없죠

우울증 같은 마음의 병은 병으로 생각하지 않는 인식과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불안정한 상황. 이 씨는 "콜센터라는 곳은 누가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고 누가 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보이지 않는 압박 속에 상병수당은 ‘그림의 떡’ 같은 제도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하나/콜센터 노동자
이 사람이 상병수당을 쓰려고 했을 때 고용 안정을 어느 정도 보장해 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지 않은 이상은 콜센터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도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이재명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모든 국민의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하겠다"며 상병수당의 확대를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상병수당 확대를 위해 연간 최소 9천억 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예상되는데
세금으로 운영할지 보험료를 따로 징수할지,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도 아직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임승지/건보공단 보건의료정책연구실장
대상자의 범위를 어디까지 포괄할 것이며 그리고 보장 수준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할 것이냐, 소득 대체율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 할 것이냐 이런 거에 따라서 굉장히 차이가 큽니다. OECD 가입국가에서는 다 시행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 나라들의 경우에도 GDP 대비 상병수당의 지출 규모가 0.1%에서 1.1%로 10배나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상병수당 대상자를 인증할 수 있는 방식도 다듬어야 합니다.
강민구/보건복지부 상병수당제도 팀장
일찌감치 상병수당을 도입한 유럽 국가들에서는 운영 과정에서 장기간 병가 남용, 노동 의욕 저하, 과도한 재정 지출 등의 문제가 나타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개혁 조치를 시행하는 추세입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사례를 참고하여 제도 설계 초기부터 재정의 지속 가능성, 노동 의욕 유지, 부정 수급 방지 등을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 상병수당 제도 도입이 다양한 이유로 미뤄지면서 아파도 쉬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이 묻히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정혜선/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상병수당을 받아서 조기에 질병을 치료하게 되면 의료비를 절감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보면 국민의 의료비를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재정에 대한 부분이 초기에는 투입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을 수 있지만 크게 보면 우리나라 국민의 건강을 확보하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콜센터 노동자 이하나 씨는 다른 사람의 불만은 들어주면서 정작 본인이 아프면 ‘눈치’부터 봐야 하는 현실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하나/콜센터 노동자
사실 사람이 돈을 버는 건 인간답게 먹고 살기 위해서 돈을 벌고 자기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건데 그렇게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돈을 버는 그 과정이 인간답게 살 수 없는 그런 결과를 만드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아프면 쉬겠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 당연한 권리여야 하는 그 약속을 이제는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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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강병수
촬영감독:조선기 강우용
영상편집:김기곤
그래픽:장수현
리서처:채희주
조연출:심은별 이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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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수 기자 (kbs032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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