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오늘도 나는 여름 단꿈을 꾼다

김송현 진해 무지개어린이집 원장 2025. 8. 31. 22:5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유년의 여름이었다.

외갓집 솥에는 한여름 낮부터 연기가 피어올랐다.

세월은 쏜살같이 달아나고 되풀이되는 여름이 왔다.

오늘도 나는 조금은 아픈 채로 그리운 얼굴이 떠오르는 여름 단꿈을 꾼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년의 여름이었다. 외갓집 솥에는 한여름 낮부터 연기가 피어올랐다. 솥뚜껑을 밀쳐 올린 달곰한 향기는 쪼르르 다가온 아이의 입맛을 돋운다. 그 냄새는 옥수수가 잘 익고 있다는 신호였다. 한 알 한 알 깨물 때마다 햇볕의 무게를 받들고 굼벵이가 파먹은 흙이 받아준 온기를 느낀다. 장맛비 속에서도 끝끝내 힘을 모은 생명의 촉수는 가느다란 수염을 달았다.

올봄, 아이들과 밭에는 씨감자를 묻고 두렁엔 옥수수를 심었다. 옥수수가 커가면서 감자의 정찰병이 되었고 그림자를 만들어 열사병을 지켜주었다. 아이들은 흙을 만지고 문지르면서 깔깔깔 웃음보를 터트렸다. 줄기마다 이름을 붙이면서 여름을 갈무리했다. "안녕! 고구마 줄기야, 나는 똑똑한 똑순이 아진이야!" "줄기가 목마르대요. 지금 물 줄게요!" 햇살을 만나면 흙 이불을 덮어주었다. 식물과 소통하는 아이는 식물의 마음을 헤아리는 아이다. 맑고 깊은 눈으로 감성과 이성을 버무리는 꼬마 철학자다.

줄기를 다 심은 후, 아이들과 옥수수를 땄다. 껍질을 벗기다 보면 속살인 알맹이의 위용이 얼마나 단단한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본다. 수염은 머리카락이고 껍질은 머리띠 역할도 하고 둘러치면 치마가 되기도 한다. 호기심 어린 친구는 신발로 활용한다. 옥수수 알갱이의 두툼한 표면은 손에 잡으면 마이크로 변신한다.

초등학교 3학년 여름은 더디 흘렀다. 종일 황토 찰흙을 문질러가면서 엄마 얼굴을 만들었다. 어스름한 저녁이 되자 저벅저벅 걸어오는 익숙한 엄마의 발자국이 점점 크게 들렸다. 진종일 빚은 찰흙을 품에 안고 달려갔다. "자, 엄마 선물이야!" 엄마는 도끼눈으로 말했다. 찰흙은 땅에 내동댕이쳐졌고 소리 없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땅에 떨어진 황토 찰흙을 주워들며 말했다. "다음부턴 미리 말해. 찰흙은 내일 아침에 같이 준비하자." 나는 조용히 엄마 바지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유년에는 참 많이 웃었다. 별것 아닌 것에도 쉽게 배부르고 따뜻했다. 옥수수는 밥이었고 간식이었고 한 계절의 선물이었다. 세월은 쏜살같이 달아나고 되풀이되는 여름이 왔다. 어디선가 익어가는 옥수수가 담장을 넘고 도량 너머에도 쑥쑥 올라오지만, 향기만큼은 유년에 미치지 않는다. 나이가 들고 세파에 찌들인 내 모습이 헛헛할 뿐이다. 여름은 멀리 있지 않다. 손안에 들린 먹음직한 옥수수처럼 유년의 추억은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 머물고 있다. 오늘도 나는 조금은 아픈 채로 그리운 얼굴이 떠오르는 여름 단꿈을 꾼다.

/김송현 진해 무지개어린이집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