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아의 조각보 세상]이재명 정부는 ‘부동산 전쟁’ 승리할 수 있을까
영화 ‘기생충’이 드러낸 주거 계급
서울선 무주택 가구가 절반 넘어
임명 고위직들 ‘부동산 재산 증식’
민주당 정부, 집값 잡는 데 사활을
영화 <기생충>은 계급 이야기다. 영화에서 계급은 ‘집’이라는 공간적 분리를 통해 나뉜다. 지상 계급, 반지하 계급, 그리고 지하 계급. 한 사회에서 살지만 그들은 철저히 분리돼 있다. 높은 언덕을 올라 대문에 들어서고 또다시 여러 계단을 지나야만 만날 수 있는 지상의 계급. 수많은 계단을 내려가 사람들의 발아래 어딘가에 터를 잡고 작은 유리창으로 햇빛을 받아들이는 반지하 계급. 그마저도 허락받지 못해 숨어 사는 지하 계급. 어둡고 무거운 서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의 심장 할리우드에서 작품상을 받았고, 최근에는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영화로 꼽혔다. 그만큼 보편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지상 계급에도 경계가 있다. 자가 거주자와 전월세 거주자, 서울과 비서울, 서울의 강남 3구와 마·용·성, 그리고 그 외 지역 거주자 등등. 주거 계급은 나뉘고 또 나뉜다. <기생충>에서 집이 계급이란 불평등 현상을 시각화한 메타포로 사용되었듯이, 현실에서 집은 인간의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자랑과 수치를 빚어내는 공간이다. 이제 젊은이들은 TV 소개팅 프로그램에서 자신을 “서울 OO구에 살고 자가를 보유한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마음에 드는 상대가 있어도 ‘장거리 연애’가 힘들다며 포기하기도 하는데, 이때 장거리 연애란 서울 거주자를 중심으로 얼마나 먼 지역까지 이동해야 하는가를 따진다. 단순히 물리적 거리만이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지난 8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3년 전국 무주택 가구는 962만여가구로 전체 가구의 43.6%에 이른다. 2020년 처음 900만을 넘어선 무주택 가구는 3년 만에 60여만가구가 늘었다. 무주택 가구는 서울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해 서울 전체 가구의 51.7%에 이른다. 서울 시민 중에는 자기 집보다 남의 집을 빌려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다. 1인 가구가 늘고 청년들이 몰리는 탓도 있겠지만, 서울의 집값 상승률이 전국 최고라는 사실을 빼고 설명할 길은 없다.
이재명 정부 시대 무주택 시민들은 자기 집을 가질 수 있을까? 얼마 전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집값을 안정화하겠다고 말했다. 집값은 너무 올라도 안 되지만 너무 내려도 안 된다는 인식이다. 지난 6월 대선 전후 서울 집값이 폭등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지금 필요한 정책을 ‘안정화’라고 보는 것이 얼마나 타당한지 의문이다.
6·27 부동산 대책 발표 후 폭증하던 거래가 멈추고 시장이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한 달에 1억원씩 올랐다던 서울 아파트 가격을 걱정하는 언론들은 환영의 메시지를 냈다. 그러나 3개월째 접어들면서 잠시 주춤했던 관련 업계와 몇몇 경제 신문은 ‘대출 규제로 서민들의 주거 사다리를 걷어찼다’는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정부는 절대로 집값을 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비웃음과 ‘더 강력한 대책’을 주문하는 이들로 갈라져 설왕설래 중이다.
시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유튜브나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댓글들을 살펴보면, ‘분노’와 ‘불신’이 극에 달해 있다. 분노가 폭발하는 지점은 서울 아파트값 상승이다. 지난 7월 서울 평균 아파트 매매 가격이 14억원을 넘어섰고 강북권 아파트도 10억원을 넘어섰다. 평범한 월급쟁이가 1억원 모으기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안다. 한 유튜브 댓글 창에는 “자식들 교육시키고 부모 부양하다 보니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했는데, 조선시대 노비만도 못한 삶이 아닌가”라는 탄식이 실려 있었다.
시민들의 또 다른 감정은 불신이다. 이재명 정부에서 임명된 고위직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부동산으로 부를 축적해 온 이들이 적지 않다. 인터넷에서는 그들을 ‘부동산 재벌’ ‘부동산 중독자’라고 부른다. 그들이 자신들의 이력을 배반하며 집 없는 서민들을 위한 주거 정책을 펼칠 수 있을까.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전투가 아니라 전쟁이다. 그동안 민주당 정부는 부동산 정책에서 참패했다. 그것은 그들 정권의 상실을 넘어 수많은 무주택·영끌 시민들에게 고통을 가져왔다. 광장에서 비상계엄에 맞서던 지난 몇 개월, 민주당 정부의 출범은 부동산 상승기라는 학습효과 역시 확산되었다. 그동안 시민들은 무엇을 위해 싸웠던 걸까. 이 이율배반적인 고통의 시간을 끝내기 위해 이재명 정부는 스스로를 혁명해야 한다. “이번에 부동산 정책이 실패하면 다시는 민주당을 찍지 않겠다.” 인터넷에서 오가는 이 메시지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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