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없는 공이 ‘달’ 위를 굴러간다

이정호 기자 2025. 8. 31.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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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개념 무인 운송기 ‘로보볼’
표면이 고르지 않은 황무지를 달리며 시험 가동되고 있는 ‘로보볼’. 향후 달에서 무인 운송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개발됐다. 텍사스 A&M대 제공
미 텍사스 A&M대 연구진
공 모양 달 탐사 로봇 개발
전복 위험 없어 험지서 용이
지름 1.8m 내부엔 장비 수납
2030년대쯤 투입될 가능성

‘공 굴리기’는 초등학교 운동회 때 등장하는 단골 종목이다. 아이들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공을 2~3명이 한 조를 이뤄 손으로 미는 경기다.

공을 다루는 손이 여럿이다 보니 공 속도나 방향을 조절하는 일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공 굴리기는 운동회에 적합한 종목이다. 아이들끼리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공을 제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잘해야 다른 팀보다 빨리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다.

그런데 겉모습과 덩치를 보면 딱 운동회 때 등장할 법한 커다란 공이 조만간 뜬금없는 곳을 자유자재로 굴러다닐 것으로 보인다. 바로 달이다. 이것이 무슨 말일까.

이동 중 뒤집힐 일 없는 ‘로보볼’

미국 과학계에 따르면 텍사스 A&M대 연구진은 최근 대학 공식 자료를 통해 달 표면에서 활용할 신개념 무인 운송 수단 ‘로보볼’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로보볼의 가장 큰 특징은 모양새다. 축구공·농구공처럼 완전한 구 형태다. 다만 덩치가 매우 크다. 지름이 1.8m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전고와 맞먹는 높이다.

로보볼이 구르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기다란 원통이다. 연구진은 원통 모양의 금속 재질 회전축을 로보볼 내부 중앙 부위에 관통하듯 집어 넣었다. 이 회전축을 전기 동력으로 돌려 로보볼이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연구진은 로보볼 몸통을 ‘에어백’이라고 표현했다. 내부에 공기를 주입하고, 달의 진공 상태에서도 터지지 않는 튼튼한 섬유 소재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왜 하필 공 모양 로봇을 만들었을까. 기존 우주과학계가 달 개척에 투입하려고 만든 이동형 장비, 즉 바퀴 달린 자동차나 다리가 부착된 개 모양 로봇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점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바로 몸통 균형이 불안하다는 점이다. 자동차와 개 모양 로봇은 이동 중 갑작스럽게 몸통 방향을 바꾸면 전복될 가능성이 있다. 월면 곳곳에 널린 구덩이에 빠지거나 돌에 걸려도 같은 일이 생길 수 있다. ‘우주 교통사고’다. 전복된 뒤 중요 부품이 고장 나거나 몸통 자세를 회복하지 못하면 그 길로 작동은 중단된다.

신개념 무인 운송 수단 로보볼 중심에 들어가는 회전축. 전기로 구동되며 로보볼을 움직이는 힘을 만든다. 텍사스 A&M대 제공

험난한 지형 돌파 능력 탁월

반면 로보볼에는 전복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몸통이 전 방향에 걸쳐 완벽하게 동그랗기 때문이다. 험한 지형을 만난 로보볼은 주춤거릴 수는 있어도 움직이던 방향과 속도를 대체로 유지한다.

연구진이 최근 성능 시험 장면을 찍어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그런 특징이 잘 나타난다. 로보볼은 지표면이 울퉁불퉁한 데다 깊은 구덩이까지 파인 황무지를 막힘없이 이동한다. 험지 돌파 능력이 탁월하다. 연구진은 “바퀴나 다리가 달린 기계가 도달할 수 없는 곳에 로보볼을 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로보볼 이동 속도를 명확히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개된 동영상을 보면 지형이 고르지 않은 황무지에서는 사람이 빨리 걷는 속도인 시속 7㎞ 내외, 평평한 도로에서는 시속 30㎞ 이상을 내는 것으로 보인다.

로보볼은 지름이 1.8m에 이르는 만큼 내부에 꽤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다. 미래 달 유인 기지를 운영할 때 큰 도움이 될 요소다. 기지에 배속된 인간 우주비행사는 화물 운반이 필요할 때 로보볼을 가동하면 된다. 우주비행사 자신은 좀 더 중요한 임무를 할 수 있다.

로보볼은 내부에 카메라나 센서를 달아 기동성 있는 탐사 장비로 쓸 수도 있다. 어디든 거침없이 굴러다니는 특징을 십분 이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월면 지형 정보를 망라한 지도를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 달 광물 탐색이나 우주 터미널 건설 과정에서 이 지도를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다.

로보볼은 지구에서도 쓰임새가 있다. 연구진은 로보볼을 수십㎝ 높이로 물이 고인 도랑에서 이동시키는 실험을 했다. 침수 구역을 뚫고 재난 장소를 조사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연구진은 사람의 원격조종으로 움직이는 로보볼에 자율주행 능력을 부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로보볼의 달 투입 시점은 미정이다. 하지만 달 기지 건설이 본격화할 2030년대쯤에는 월면을 달릴 가능성이 크다. 연구진은 “로보볼을 이용해 향후 달 외에 다른 외계 천체도 탐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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