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선별적 소득 지원해보니 빈곤 줄고 불평등 완화…기본소득은 시기상조”

전경운 기자(jeon@mk.co.kr) 2025. 8. 3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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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전문가들이 분석한
보편 vs 선별 지원 정책
[이미지=chatgpt]
정부가 소득선에 미달하는 가구를 상대로 그 차액의 일정 부분을 현금으로 보조해주는 이른바 ‘음의 소득세 프로그램’을 실시할 경우 수혜자들이 노동시장에 덜 참여한다는 것이 경제학 교과서의 결론이다. 특히 오늘날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실험들이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고, 실제로 현금 지원을 받은 가구의 노동 참여가 줄어드는 현상이 관찰되기도 했다. 때문에 현금 지원이 근로 의욕을 저하시키고 고용률을 갉아먹는다는 부정적 인식이 확산된 바 있다. 선별적 지급, 보편적 지급, 무지급(전통적 복지)에서 무엇이 복지 수혜자와 한국 경제에 바람직할까.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소득 보조에 따른 노동 참여 감소에 대해 “노동을 줄여 확보한 시간으로 무엇을 했는지가 중요하다”면서 “소득이 부족한 빈곤층이 노동 시간이 긴 경향이 있는데, 소득 보전에 따라 시간을 다른 곳에 활용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서울시의 선별적 소득 지원 사업인 ‘디딤돌 소득’이 고용·소득·지출·건강 등 분야에 미친 효과성을 연구한 논문을 이번 세계경제학자대회에서 발표하면서 선별적 지급이 빈곤 퇴치에 우수한 것으로 분석했다. 연구는 김현철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 김민기 독일 만하임대 교수, 이승훈 대만 국립칭화대 교수, 박상윤 홍콩과학기술대 교수, 성한경 서울시립대 교수와 공동으로 진행했다.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서울시 3년간 선별적 소득지원…빈곤 줄이며 소득불평등 완화
같은 예산으로 보편적지원땐 최하층 보조금 20%수준 급감
이정민 서울대 교수. 2021. 8. 10. [박형기기자]
서울시 디딤돌 소득 사업은 중위소득 85% 이하면서 재산이 3억2600만원 이하인 서울시 가구를 대상으로 중위소득 85% 기준액과 가구 소득평가액 간 차액의 50%를 현금 지원하는 방식으로, 소득이 적을수록 더 많이 지원하는 하후상박형 정책이다. 예를 들어 3인 가구의 경우 월 70만~100만원 정도 지원금이 체크카드로 지급됐다.

서울시는 2022년 7월부터 2025년 6월까지 2076가구를 대상으로 소득을 지원하고, 근로시간·소득·지출·교육비·의료비·여가 활동비 등 정량지표와 정신건강 등 정성지표를 연구 분석하는 과정을 거쳤다. 분석 결과 가구의 총소득은 증가했지만 지원금을 제외한 노동소득은 대조군에 비해 3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 공급 역시 약 13%포인트 감소했다. 물론 보조금을 포함한 총소득은 증가했고 필수 소비지출 증가, 정신건강 개선으로 인한 사회안전망 강화 등 긍정적 효과도 관찰됐다.

이는 학회에서 발표된 다른 기본소득 실험 결과와 유사하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의 제안으로 시작된 오픈리서치의 기본소득 실험 역시 고용률 하락과 노동소득 감소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이 같은 결과를 부작용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질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현철 교수 역시 “현금을 지원하면 일을 안 한다는 프레임을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면서 “예를 들어 폐지를 줍는 노인이 더 이상 힘든 노동을 안 해도 되는 것은 사회적으로 긍정적이며, 또 가족 돌봄 청년이 지원금으로 인해 일을 덜 하고 돌봄을 더 할 수 있게 된다면 역시 긍정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디딤돌 소득과 같이 대상을 특정해 선별 지급하는 지원책이 보편적 기본소득보다 빈곤 퇴치에 확실히 도움이 된다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이 교수는 “디딤돌 소득과 똑같은 예산으로 보편적 기본소득을 실행한다면 최하층에 돌아가는 지원금은 디딤돌 소득에 비해 5분의 1에 불과하다”며 “빈곤 퇴치 효과가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디딤돌 소득의 탈수급률은 8.6%로 생계급여 탈수급률(0.22%)을 월등히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빈곤과 소득 불평등 문제가 있다고 본다면 보편적 기본소득은 소득 불평등 완화에 일정 부분 효과가 있지만 일차적인 빈곤 문제를 풀어내지 못한다”며 “반면 디딤돌 소득은 빈곤 퇴치를 목표로 하면서 자연스럽게 소득 불평등도 완화하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한국만큼 선별 지원에 맞는 인프라스트럭처가 갖춰진 나라가 흔치 않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저개발국의 경우라면 소득 파악이 어렵고 저소득층이 많아 보편적 지원이 맞을 수 있지만, 한국은 중산층이 충분히 있고 선진적인 행정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며 “소득부터 공공요금 미납까지 파악되는 한국은 빈곤을 막는 예방적 개입도 충분히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김현철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
기본소득은 장기적으로 봐야…AI로 일자리 감소때 논의 필요
올트먼 등 전세계 실험 엿보면 당장은 빈곤 계층에 집중해야
김현철 연세대 교수
다만 연구팀은 보편적 기본소득 역시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아주 장기적으로는 보편적 기본소득이 필요한 시대가 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교수는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한 비판도 좋지만 조금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볼 필요가 있다”며 “향후 인공지능(AI)과 로봇으로 모든 게 자동화되고 부가 극히 일부에게 초집중되는 시대가 도래한다면 그때는 보편적 기본소득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만 지금은 일자리를 걱정해야 하고, 노동이 주요 소득원이기 때문에 보편적 기본소득을 논의할 단계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김 교수도 “AI 발전 속도를 보면 20~30년 뒤에는 보편적 기본소득이 틀렸다고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올트먼의 실험과 우리의 실험 모두 결론은 보편적 기본소득은 당장 할만 한 정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당장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지원을 집중하는 것이 맞는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를 수행한 이 교수는 최저임금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연구한 국내 대표 노동경제학자 중 한 명이다. 김 교수는 의사 출신 경제학자로 보건·개발경제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현재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를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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