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범, 오지호, 김환기, 이중섭... 거장들이 그린 '잃어버린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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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고 까칠한 필체가 산천의 피폐함을 있는그대로 보여준다.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광복 80년을 맞아 열리고 있는 '향수, 고향을 그리다'전은 한국의 근현대 회화를 관통하는 개념으로 '고향'을 내세웠다.
일본이 선호한 목가적인 농촌 풍경으로 작가의 고향인 전남 화순군 동복면을 표현했다.
한국 대표 추상화가 김환기(1913~1974)는 고향 전남 신안의 푸른 밤바다와 달, 별, 구름 등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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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80년대 한국 회화 210점


#. 황야처럼 적막한 산천이 있다. 검고 까칠한 필체가 산천의 피폐함을 있는그대로 보여준다. 길을 따라 소를 끌고 돌아가는 촌부의 모습이 고달프다. (이상범의 1937년작 '귀로')
#. 산천이 옅은 안개에 파묻혀 드문드문 보인다. 먹이 부드럽게 퍼져 적막한 풍경을 감추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살려 고향에 대한 정취를 부각한다. (이상범의 1945년작 '효천귀로')
한국 근현대 산수화를 대표하는 청전 이상범(1897~1972)의 두 작품이 마주했다. 한국의 산천을 배경으로 그린 두 작품의 풍경은 비슷하지만 앞서 그린 '귀로'가 일제 강점기 관이 주도했던 유행인 관전양식을 따른 반면 광복 당일 그린 '효천귀로'는 이상범의 독자적인 양식이 돋보이는 청전양식으로 분류된다.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광복 80년을 맞아 열리고 있는 '향수, 고향을 그리다'전은 한국의 근현대 회화를 관통하는 개념으로 '고향'을 내세웠다. 이상범의 작품을 비롯해 오지호, 김환기, 전혁림, 윤중식 등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대표작 21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전시는 일제 시기 한국 화단의 특징부터 짚는다. 당시 조선총독부가 개최한 '조선미술전람회' 기준과 유행에 맞춰 그린 그림들이 많았다. 동시에 일본의 감시를 피해 망국을 한탄하고 진정한 조선의 풍경을 표현하고자 하는 시도들도 담겼다.
한국 1세대 인상주의 화가인 오지호(1905∼1982)의 1928년작 '동복산촌'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됐다. 일본이 선호한 목가적인 농촌 풍경으로 작가의 고향인 전남 화순군 동복면을 표현했다. 일본 유학파인 작가는 인상주의가 한국의 자연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고 보고 해방 이후 산, 바다, 농촌 등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김미금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조선의 고유한 색채와 미의식을 찾으려는 시도는 식민주의에 반대하는 시대의식의 표명"이라고 설명했다.


해방 이후 작가들은 고향 풍경에서 독자적인 조형을 추구했다. 일본 화가에게 그림을 배운 전혁림(1915~2010)은 고향인 경남 통영의 하늘과 바다를 이룬 푸른 빛과 조선 민화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만의 그림을 완성했다. 한국 대표 추상화가 김환기(1913~1974)는 고향 전남 신안의 푸른 밤바다와 달, 별, 구름 등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추상화가 유영국(1916~2002)도 고향 경북 울진의 산 지형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만들었다.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은 작가들의 삶과 고향을 송두리째 앗았다. 한국 현대미술 거장 이응노(1904~1989)는 전쟁의 참상과 폐허를 그렸고, 신영헌(1923~1995)과 남관(1911~1990)은 전쟁으로 인한 고통과 공포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한국전쟁 전후 월남한 박돈(1928~2022)과 윤중식(1913~2012), 최영림(1916~1985) 등은 고향을 돌아갈 수 없는 '꿈의 영역'으로 묘사했다. 부인과 자녀를 일본으로 보낸 후 재회하지 못하게 된 국민화가 이중섭(1916~1956)의 절절한 가족 사랑을 담은 그림도 함께 전시된다. 전시는 11월 9일까지.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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