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알렉산드르 스크랴빈

하순봉 작곡가 2025. 8. 31.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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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서 3D혹은 4D란 말을 들어 봤을 것이다.

아직도 정확히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지만 지금도 많이 연구중이다.

그의 이런 철학과 앞서가는 새로운 시도는 당시의 많은 현대음악사조와도 궤를 달리하는 것으로 일반인의 호응과 이해를 얻기는 쉽지가 않았을 것이다.

요사이 미술인지 음악인지 건축인지 구분이 모호한 예술을 보면서 기존 예술에서 장르의 구분이 이제 의미가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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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순봉 작곡가

영화관에서 3D혹은 4D란 말을 들어 봤을 것이다. 3D는 고글을 쓰면 화면이 입체적으로 보여진다. 4D는 더욱 흥미롭다. 의자가 흔들리고 바람이 불며 냄새도 나고 한마디로 인간의 오감을 실제인 것처럼 다 느끼게 할 수 있다. 설치미술 등을 보면 공간에 설치를 하고 거기다 조명이나 소리까지 곁들여서 전혀 다른 체험을 하게 한다. 일종의 공감각적인 체험이다. 공감각은 소리를 듣고 색깔을 연상한다든지 사물을 만지거나 특정 색상에서 맛을 느낀다든지 하는 것인데 인간의 오감이 서로 연관되어 있고 그것을 동시에 느낀다는 것이다. 아직도 정확히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지만 지금도 많이 연구중이다. 주로 예술분야에 많이 보인다. 칸딘스키 같은 화가도 대표적인 공감각자라고 알려져 있다. 이런 공감각자가 몇 프로의 소수라고는 하지만 사실 일반인도 얼마든지 그런 것을 느낄수 있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사람이 고음쪽은 주로 밝은 색, 저음쪽은 어두운 색으로 느끼는게 그런 보기이다.

러시아 작곡가 알렉산드르 스크랴빈.


그런데 100년 전에 이미 이런 공감각을 주장한 작곡가가 있었다. 라흐마니노프와 동기이기도 한 러시아 작곡가 알렉산드르 스크랴빈(1872~1915)이다. 스크랴빈은 음악사에서도 손꼽히는 독특한 작곡가다. 그의 음악은 초기엔 쇼팽의 영향을 받은 낭만주의 성향이었으나 이후 독자적이고 자신만의 화성체계인 신비주의 화음도 계발하여 신비주의 음악으로 가다가 말년에는 현대음악적인 경향도 보이곤 했었다. 그의 작품 중 10곡의 피아노 소나타는 특히 이 장르의 계보에서 손꼽히는 작품으로 음악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관현악곡 ‘법열의 시’ 등도 유명하다. 그는 철학적으로 신의 섭리와 진실을 깨달을 수 있다는 신지학과 신비주의에 심취했고 특히 음악에서 당시로선 정말 앞서가는 공감각적인 시도를 했었다. 특정한 소리에 맞는 특정한 색깔을 주장하며 건반과 색깔이 연결된 색광피아노도 만들었다. 거기다 후각, 즉 향기까지도 시도했다. 그의 미완성 작품인 ‘미스테리움’의 공연 계획을 보면 거대한 총체예술과 공감각의 시도를 통해 신의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의 이런 철학과 앞서가는 새로운 시도는 당시의 많은 현대음악사조와도 궤를 달리하는 것으로 일반인의 호응과 이해를 얻기는 쉽지가 않았을 것이다.

비교적 짧은 생애를 살다 간 그가 이 신비극을 완성시켰더라면 음악사에 어떤 결과를 미쳤을까? 오늘 날 이 스크랴빈은 그 철학과 음악의 특이성 때문에 잊혀져가는 작곡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스크랴빈은 단순한 과대망상의 괴짜 작곡가는 아니었으며 그의 음악 자체는 순도가 높고 음악사에 남을 걸작도 있다. 특히 공감각에 대한 시도는 오늘 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며 단연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었다.


요사이 미술인지 음악인지 건축인지 구분이 모호한 예술을 보면서 기존 예술에서 장르의 구분이 이제 의미가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온다. 특히 가상공간 가상체험같은 용어로 다양한 인간의 공감각적인 시도를 보면서 이젠 현실과 가상의 구분도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그런데 음악애호가들 중엔 음악감상 중에 일부러 눈을 감는 경우도 많다. 순수하게 소리에만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연주자의 액션이 즉 시각이 청각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공감각이 모두에게 좋다고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제 이런 가상의 체험과 공감각의 시대를 부인할 수 없는 것 같다. 이런 공감각의 다양한 시도들이 우리의 예술과 삶을 풍요롭게 할지 아닌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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