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수 박사의 조선왕릉이야기] 17. 조선왕릉 공릉과 순릉

최해주 2025. 8. 31.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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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욕망에 휘둘린 자매, 영광과 아픔 품은 '파주 삼릉'
순릉 정자각
이번 조선왕릉 이야기는 권력자의 딸들에 관한 왕릉 이야기이다. 한명회는 조선 역대 최고의 권력을 가진 신하 중의 한 사람이다. 처세에 대단한 재능을 가진 한명회는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 등 4대의 임금을 모셨고, 권력을 독점한다. 궁궐의 문지기였던 그는 수양대군을 도와 계유정난을 성공시켜 최고의 영화(榮華)를 누린다. 그리고 셋째 딸, 넷째 딸을 왕실에 시집 보내어 2대에 걸쳐 왕의 장인인 대원군이 된다. 생전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권력을 누린 한명회지만 사후에 연산군 생모 윤씨의 폐비 사건에 연류되었다는 이유로 연산군에 의해 무덤은 파헤쳐지고, 관은 쪼개지고, 시신의 목이 베어지는 부관참시 되었다. 이런 아버지를 둔 두 자매의 영광과 아픔을 나란히 안고 있는 공릉(恭陵)과 순릉(順陵)에 관한 이야기이다.
 
공릉 전면

공릉(恭陵)은 제8대 예종비 장순왕후(1445~1461)이자 한명회의 셋째 딸 한씨의 단독릉이다. 파주 삼릉 중 재실과 가장 가까운 쪽에 위치하고 있다. 세조 때 한명회는 영의정까지 오르면서 권력의 중심에 선다. 세조 장자 의경세자가 죽고 세조의 둘째 아들[후의 예종]이 왕세자에 책봉되자 한명회는 15세인 그의 셋째 딸을 세자빈의 자리에 앉혔다. 이때 세자의 나이는 세자빈보다 다섯 살 연하로 불과 10세였다. 그녀는 세자빈으로 책봉된 지 1년 7개월 만에 원손 인성대군을 낳은 뒤 산후병을 앓다가 17세 어린 나이로 사망했다. 더구나 어렵게 얻은 인성대군도 3세에 요절했다. 부인 장순왕후에 이어 예종도 14개월의 짧은 재위 기간을 마감하고 요절했다.

정숙한 품성에 아름다운 용모를 겸비한 장순왕후는 시아버지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장순왕후는 원손 인성대군을 낳고 6일 후 산후병으로 승하하였다. 세조는 총애하던 며느리의 죽음에 비통해하며 '온순하고 너그럽고 아름다운 것'을 장(章), '유순하고 어질고 자혜로운 것'을 순(順)이라 하여 세자빈 한씨에게 '장순(章順)'의 시호를 내렸다. 그리고 장자 의경세자 묫자리를 손수 정한 이후 또다시 둘째 며느리의 길지를 찾아 장례를 준비한다. 세조는 정인지, 정창손, 신숙주 등에게 지금의 양주인 풍양에 가서 장지를 상지(相地)하게 한다. 또 고양 뒤의 고개[嶺]에 직접 거동하여 장지(葬地)를 상지(相地)하나 좋지 않아 파주(坡州)에 가서 강회백(姜淮伯)의 어미 무덤을 상지(相地)하게 하였다.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 등이 땅의 생김새를 보고 길흉을 판단한 후 돌아와서 풍수(風水)에 쓸 만한 땅이라 하자 파주로 정한다. 그리고 세자빈의 신분으로 묘를 조성한다.
 
순릉 전경(궁능유적본부)
순릉(順陵)은 제9대 성종비 공혜왕후(1456~1474)이자 한명회의 넷째 딸 한씨의 단독릉이다. 언니에 이어 넷째 딸도 아버지 한명회에 의해 이번에는 9대 왕인 성종에게 시집 보낸다. 성종 6년, 후사 없이 중전의 신분으로 승하하였기에 능 조성도 왕릉에 준하여 조성한다. 공혜왕후가 승하하자 성종은 정인지, 정창손, 최항 등의 신하들에게 공릉 부근에다 능지를 살펴보게 한다. 그리고 이틀 후 "순릉(順陵)은 공릉(恭陵)의 도국(圖局) 안에다 을방(乙方)으로 내려온 산맥(山脈)의 묘좌(卯坐) 유향(酉向)에 터를 잡으라." 하였다. 중전의 산릉으로는 너무 서둘러 상지를 하고, 그리고 쉽게 장지를 결정한다.
 
파주삼릉 재실

파주시 조리읍에 예종비 장순왕후의 공릉, 성종비 공혜왕후의 순릉, 영조의 장자 효장세자[추존 진종]의 영릉(永陵) 등 왕릉 3기가 있다고 하여 파주 삼릉이라 한다. 공릉의 한씨는 왕세자비 신분으로, 영릉의 효장세자는 세자 신분으로, 순릉의 공혜왕후는 중전의 신분으로 승하하였으므로 파주 삼릉 중 유일하게 순릉만이 왕릉 형식으로 조성되었다.

공릉의 장순왕후, 순릉의 공혜왕후는 한명회의 셋째 딸, 넷째 딸로 둘은 자매이다. 아버지 한명회의 끝없는 탐욕과 권력욕으로 예종과 성종에게 시집을 보냈으나 장순왕후는 17세, 공혜왕후는 후사 없이 18세에 승하한다. 파주 삼릉의 영릉은 영조의 장자 효장세자는 세자의 신분으로 9세에 사망한다. 장순왕후의 공릉과 효장세자의 영릉은 후에 왕릉으로 추봉되었다. 파주 삼릉의 피장자 셋은 평균 수명이 채 15세가 되지 않는다. 작은 언덕과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비스듬히 보며 누워 있는 조선 7대 예종비와 조선 8대 성종비인 이들 자매 둘은 어떤 대화를 하고 있으며, 또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두 딸을 왕실에 시집 보낸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