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노래·전시로 반핵 실천 [광복 80주년-다시 평화]

이서후 기자 2025. 8. 31.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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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로 공존하기(1) 영화 '리틀보이'와 평화

김지곤, 원폭2세 다큐로 "원폭 피해, 우리 주변 이야기"
노순천, 핵 참혹성 노래에 "핵보유국 내려놔야 문제 해결"
이노우에 리에, 김형률 추모전시 "민주주의 힘으로 탈원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폭의 참화를 겪은 살아 있는 증인들은 80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 고통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역사의 그림자처럼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다큐멘터리 장편 영화 〈리틀보이 12725〉는 역사가 드리운 정의롭지 못한 흔적을 단지 회고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우리에게 평화가 과거의 선언이 아니라 오늘의 실천임을 묻고 있었다.

영화는 히로시마 원폭 피해 2세 김형률(1970 ~ 2005)의 힘겨웠지만 치열했던 그의 생애 1만 2725일(35년)을 쫓아가는 작품이다. 부산에 살던 그는 어릴 적부터 이상하게 몸이 많이 아팠다. 자라면서 폐의 70%가 기능을 잃었다.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히로시마 원폭 피해 유전에 의한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합천 사람인 그의 어머니는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다. 결국, 그는 자신의 병이 개인이 아니라 사회·역사적인 것임을 깨닫고 그때부터 아픈 몸을 이끌고 원폭 피해자 인권운동과 반핵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부산 다큐멘터리 제작그룹 '탁주조합' 사무실에서 함께 평화 이야기를 나눈 (왼쪽부터) 이노우에 리에 작가, 노순천 음악가, 김지곤 영화감독. /이서후 기자 

◇김지곤 "부끄러움에서 시작된 영화"  = "김형률 선생님을 잘 모르고 지내다가 2015년 부산민주공원 소식지에서 서거 10주기 추모 행사 중 기념식수 사진을 보고 처음 알게 됐어요. 살아 계실 때 제법 주목을 받긴 했지만, 돌아가시고 나서는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영화로 만들기로 했죠. 선생님에 대한 책이 이미 두 권이 나와 있고 다큐멘터리도 여러 편이 있지만, 저는 새롭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영화를 만든 부산 다큐멘터리 제작그룹 '탁주조합' 대표 김지곤(42)은 부끄러움이 제일 큰 제작 배경이라고 했다. 분명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자신은 왜 그런 일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합천은 '한국의 히로시마'라고 불린다. 일제강점기에 강제노역을 당하거나 스스로 일자리를 찾아 히로시마로 갔다가 원폭 피해를 본 분들이 특히 많이 살고 있다. 합천 원폭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고, 원폭 피해자 실태조사가 벌어지고,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이 건립된 건 모두 김형률의 노력 덕분이다.

그는 영화 찍으면서 원폭은 80년이나 지난 과거의 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일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했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후 강물에 산 자와 죽은 자가 뒤섞여 있었다는 이야기가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어요. 사실 그게 원폭 2, 3세 문제로 지금도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잖아요. 원폭 80년을 맞은 지금도 진행 중인 이 이야기가 허무하게 끝나지 않게끔 하는 게 중요합니다. " 
원자폭탄 개발을 소재로 한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주인공 오펜하이머가 첫 핵폭탄 실험을 관찰하는 장면. /갈무리 

◇노순천  "지금도 가까이 있는 이야기"  = 영화 제목 리틀보이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던 1945년 8월 6일, 미국령 북마리아나 제도 티니언섬에서 출발해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코드명이다. 그리고 어찌 보면 리틀보이는 원폭 유전병으로 몸이 왜소했던 김형률을 말하는 것이기도 한다. 참고로 9일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은 '팻맨(Fat Man)'이었다. 영화 삽입곡 중에 영화와 같은 제목인 '리틀보이(Little Boy)'란 노래가 있다. 창원 밴드 엉클밥의 노래로 2018년 4월 정식 발매한 정규앨범 6번째 곡이다. 이 곡 역시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을 소재로 만들었다. 노래는 조각가이자 밴드 엉클밥 보컬인 노순천(44)이 만들었다.

영어로 된 가사는 1945년 7월 16일 미국 남서부 뉴멕시코주의 사막 도시 앨러모고도 근처에서 인류 최초로 벌어진 핵실험 '트리니티 테스트'에 대한 이야기다. 실험에 쓰인 플루토늄 폭탄은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것과 같은 종류였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2023)에도 등장하는 장면이다. 당시 과학자와 군 관계자들이 실험장인 '트리니티' 남쪽 16㎞ 지점 300m 철탑 위에서 폭발 장면을 지켜봤다. 핵폭탄은 공 모양 불덩이가 되어 하늘로 치솟았다. 엉클밥 노래 가사처럼 폭발은 처음에는 황금색이었다가 보라색으로 변했고 이어 회색으로 바뀌었다가 푸른색이 되었다. "나는 세상의 파괴자, 죽음이 되었다." 실험 책임자 오펜하이머 박사는 폭발 장면을 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를 함께 지켜본 케네스 베인브리지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린 모두 개자식이 됐어(Now we all became son of bitches)."

창원대 미술학과에 다니던 노순천은 일본 나가사키에 1년 교환 학생으로 있으면서 그곳 원폭 피해 관련 시설이나 자료를 본 적이 있다.

"창원으로 돌아와서 1년인가 지났을 때 오펜하이머가 핵실험을 하던 장면에 대한 신문 기사를 봤어요. 기본에 알던 내용과 연결되면서 뭔가 묘한 느낌이 들었어요. 당시 원폭 개발에 참여한 박사가 실험 장면을 보고 한 말이 있는데, 그걸 가사로 썼죠. 솔직히 원폭이라는 주제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당시에는 몰랐으니까, 그냥 순간적인 감정으로 노래를 만들고 불렀어요. 핵발전이나 핵폭탄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되면서 다시 그런 노래를 만들기도, 부르기도 어렵게 됐죠. 엄청나게 무겁고 조심스러운 이야기잖아요."

노순천이 보기엔 원자력 자체는 좋고 나쁨이 없다. 다만, 인간들이 그걸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핵을 가진 나라가 얼마나 많아요. 사실은 핵을 보유하고 힘 있는 나라들이 먼저 그 힘을 놓아야 핵과 관련한 문제들이 풀린다고 생각해요."

◇이노우에 리에 "작은 목소리라도 평화를 향해" = 영화에는 창원에서 활동하는 작가 이노우에 리에(40)가 김형률의 13주기를 기리는 전시 〈당신의 방에서 생각한다〉를 진행하는 모습이 나온다. 작가와 관객이 함께하는 일종의 설치 작업으로 이 또한 영화 제작 과정의 하나였다.

당시까지 부산에 남아 있던 김형률의 방에서 그의 어머니 이곡지 씨와 아버지 김봉대 씨의 도움으로 진행된 전시다. 그가 추모 전시를 맡은 건 마치 운명 같았다. 그 역시 원폭 피해자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리에 작가는 히로시마와 함께 원자폭탄이 떨어진 나가사키에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가 원자폭탄 피해 1세대다. 그는 원폭 피해자가 많은 나가사키에서 자라며 그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있다. 리에 작가는 평소 친분이 있던 김지곤 감독과 반핵 관련 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만드는 영화 내용을 듣고 추모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어릴 때 8월 9일(나가사키 원폭 투하일)이 되면 방학이지만 학교에 가서 평화 교육을 받아요. 그날은 원폭 피해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오셔서 이야기를 들려 주시죠. 어릴 때는 막연하게 무섭다고만 생각했고, 그런 일이 아주 먼 세상 이야기로만 들렸어요. 그런데 크면서 알고 보니 우리 할아버지도 직접적이진 않지만 피해자였던 거죠. 그제야 나가사키에 유달리 피부가 새까만 사람이 많다거나 하는 일들이 이해가 되는 거에요. 피폭 후유증인 거죠."

일본에서는 원폭과 관련해 평화라는 말을 잘 쓴다. 이는 더 이상 인류에게 원폭 피해라는 끔찍한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의미가 있다고 리에는 설명했다.

"피폭을 당했으니까, 피해자니까 평화를 말한다기 보다는 그만큼 끔찍한 일이었으니까 우리가 마지막 피폭지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리에가 보기엔 세계는 여전히 평화가 거리가 멀다.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핵전쟁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해 일본 원폭 피해자 단체인 '니혼 히단쿄(일본 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가 노벨 평화상을 받은 건 세계에 던지는 아주 중요한 메시지예요. 이런 메시지가 더 필요한 요즘이에요. 우리는 작더라도 계속 목소리 내야죠. 더 열심히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행동도 필요해요.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가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국민들이 정치로 방향을 바꾸는 수밖에 없어요. 민주주의의 힘으로 탈원전을 향해 가야 돼요."

김지곤 감독이 느낀 부끄러움, 노순천 음악가가 전한 무거움, 이노우에 리에 작가가 이어가는 다짐은 결국 한 가지로 모인다. 평화란 결코 멀리 있는 이상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여기서 기억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작은 목소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그 목소리가 모여야만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아픔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김형률의 삶이 보여주었듯, 평화는 거대한 선언보다도 일상에서 끊임없이 이어져야 할 실천이며 그 실천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내일을 지켜낼 힘이다.

 /이서후 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