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관계와 ‘페이스메이커’ [김연철 칼럼]


김연철 |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
한-미 정상회담으로 북-미 협상의 계기를 마련했다. 그런데 중국의 전승절을 계기로 북·중·러 삼각 정상회담이 열린다. 중국과 러시아의 국제규범에 대한 온도 차이로 북-중 관계와 북-러 관계의 차이는 여전하지만, 한·미·일 협력에 대항하는 북·중·러 협력은 강화될 것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에서 진영 간의 대립은 불리하고, 피해야 한다. 진영을 잇는 다리, 바로 북-미 관계를 재개할 때다. 한반도 질서의 구조 때문에 미국이 움직여야 남북 관계의 공간도 열린다. 앞으로 북-미 관계는 어떻게 될까?
당장 넘어야 할 산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이다. 북한은 전쟁 중이고, 러시아와의 관계에 집중하면서 남방으로 향하는 문을 닫았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쌓은 실전경험은 언제든지 군사모험주의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 러-우 전쟁이 끝나야 북한은 군사에서 외교로 국가전략의 기조를 전환할 것이다.
경주 아펙(APEC) 정상회의 이전에 러-우 전쟁이 끝나면 좋겠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피스메이커’가 되고 싶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러-우 종전협상이 지지부진하면, 북한으로 관심을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콩고-르완다 분쟁, 타이와 캄보디아 전쟁, 이스라엘과 이란 전쟁, 러-우 전쟁으로 해결사 역할을 옮겨 다녔다.
물론 분쟁의 해결은 어느 날 갑자기 도둑처럼 오지 않는다. 전쟁에서 평화로 전환하는 과정은 상처를 아물게 하는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분쟁 해결도 불신을 신뢰로 바꾸는 과정 때문에 천천히 앞으로 나가고, 때로는 후퇴한다. 지도자의 결단으로 불가능한 협상이 성공하기도 하지만 평화의 지속 가능성은 신뢰 구축에 달려 있다. 쟁점 조율과 합의 이행의 관리는 실무협상의 몫이다.
모든 협상은 정상회담이라는 하향식과 실무회담이라는 상향식을 보완해야 성공한다. 트럼프 외교의 장점이자 단점은 바로 실무협상의 역할이 없다는 점이다.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실무와 정상의 온도 차이는 후속조치 이행 과정에서 다시 겪어야 한다. 북-미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북-미 관계는 여름 해변의 모래성처럼, 조금 쌓다가 불신의 파도가 치면 한순간에 무너졌다. 2019년 하노이 회담의 실패 원인 중 하나는 실무협상의 부재였다.
트럼프 2기는 1기와 비교해서 대통령의 역할이 더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경주에서 혹은 판문점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그 자체로 긴장 완화 효과가 크다. 그러나 정상회담에서 30년 동안 풀지 못했던 북핵 협상의 해법을 마련하기는 어렵다. 반드시 정상회담 전후에 실무협상이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한국의 역할을 ‘페이스메이커’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의 역할은 북-미 관계의 약점인 실무협상의 공백을 메우는 일이다. 물론 2019년 하노이 회담에서 경험했지만, 북한과 미국 모두 한국에 실무협상의 역할을 주지 않을 것이다. 중재는 양쪽을 회담장에 데려오는 데서 끝난다. 협상을 시작하면 당연히 중재자의 자리는 없다. 남한에 대한 북한의 불신을 고려할 때, 남북 관계로 북-미 관계를 연결하기도 어렵다.
반대로 교착 국면에서 북한은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대남 비난을 강화할 것이다. 그러면 북한에 대한 여론은 악화하고 대북 정책의 지지기반은 약해진다. 냉전 반공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야당의 존재로 국민적 합의 기반은 항상 흔들릴 것이다. 정부는 대북 정책의 지지기반을 위해 민주진영의 연대를 유지하고, 대북 정책이 균열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
그러면 페이스메이커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남·북·미 삼각관계에서 남북 관계는 너무 빨라도 너무 느려도 안 된다. 한·미·일과 북·중·러의 진영대립도 속도를 늦춰야 한다. 그래서 한-중 관계가 중요하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한·중 양국의 공감대가 존재한다. 달라진 정세를 반영해서 새로운 협상안을 한-미와 한-중 대화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외교적 존재감은 해결 과정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북핵 해법, 즉 동결-감축-비핵화의 3단계에서 동결 환경 조성의 구체적인 해법을 만들어야 한다.
불안정한 북-미의 다리를 보완하는 남북의 다리는 제재 이전에는 경제협력이었지만 현재는 군사 분야의 신뢰 구축이다. 접경에서의 평화 경제에 집중하고, 할 수 없는 일에 말을 아껴야 한다. 정부가 직면한 새로운 질서의 복잡함을 국민은 인내심을 갖고 봐야 하고, 정부는 때를 만들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실용외교의 생명력은 바로 유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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