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언어, 모두를 위한 ‘포용 디자인’을 만나다

최명진 기자 2025. 8. 3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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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광주디자인비엔날레 현장 리뷰>
소외된 이들 품는 세계 곳곳 시도부터
송정역 프로젝트 등 이동 권리 재구성
미래 상상·감각 깨우는 체험 공간까지
2025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개막 후 첫 주말을 맞은 31일 오전 광주 북구 비엔날레전시관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를 감상하고 있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전시는 11월 2일까지 진행된다. /김애리 기자·조영권 인턴 기자
규슈대학교(Kyushu University), 텍스타일 카토그래피 실로 그린 지도(Textiles Cartographies).

뉴노멀플레이그라운드-강윤정, 감각의 지형(Touchscape)<광주디자인비엔날레 제공>

무심코 지나치던 사소한 차이가 삶의 문턱을 만든다. 인트로존에 들어서면 둥근 문손잡이와 막대형 레버 달린 문이 마주보고 서 있다. 손힘이 약하거나 양손이 자유롭지 못한 이에게 둥근 손잡이는 ‘문’이 아니라 ‘벽’이 된다. 반면 레버는 어떤 상황에서도 열 수 있다. 전시는 이 첫 장면으로 관람자의 ‘시선’을 바꿔 놓는다. ‘내게 편하면 모두에게 편할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디자인이 사람을 어떻게 끌어안는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넌지시 보여준다.

총감독 최수신은 이번 비엔날레를 “디자인을 ‘보러’ 오는 전시가 아니라, 디자인이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전시”라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당연히’ 열 수 있는 캔뚜껑, ‘당연히’ 읽을 수 있는 스마트폰 화면, ‘당연히’ 이해할 수 있는 표지판이 누군가에겐 장애물이 될 수 있음을 짚으며, 포용은 노약자·장애인을 위한 특수 해법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라고 이야기한다.

◇1전시관 ‘포용디자인과 세계’

박부미 큐레이터가 펼쳐 보이는 1관은 세계 각지의 정책·교육·현장 연구가 거대한 패널과 사례 아카이브로 펼쳐진다. 특히 세계 많은 디자인 대학들이 장애, 외국 이민자, 성소수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어려움을 디자인으로 어떻게 극복하는가를 보여주는 섹션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시선을 끌어당기는 것은 이탈리아 응용예술디자인대학의 25벌 오트쿠튀르 의상. 재활용 소재로 ‘변화와 회복’을 재봉한 의상들은 순환경제의 미학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2전시관 ‘포용디자인과 삶’

나를 넘어 우리 그리고 사회로 확장되는 감수성을 보여주는 2관은 이경미 큐레이터가 맡았다. 관절염을 앓던 배우자를 위해 고안된 옥소(OXO)의 감자칼은 지금은 세계 어디에서나 모든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디자인으로 자리잡았다. 한 사람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된 문제의식이 시대의 고전이 되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게임 기반 참여형 전시도 있다. 놀공의 ‘포용도감: 포용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다소 극단적인 제목을 지니고 있지만, 제목의 도발만큼이나 체험의 밀도가 높다. 관람자가 게임 속 선택과 지령 수행을 통해 ‘포용’의 순간을 마주하게 만든다. 참여자들은 자연스럽게 나-우리-사회로 관점이 넓어지게 된다. 이외에도 토스 유니버설 디자인팀이 시각장애인을 위해 개발한 ‘일상을 잇는 도구들’,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이 발달장애 아동 특성을 고려해 만든 ‘마음보듬소’ 등도 만나볼 수 있다.

◇3전시관 ‘포용디자인과 모빌리티’

3전시관을 큐레이션한 차두원 큐레이터는 ‘이동은 단지 물리적 수단이 아니라 인간 존엄과 직결된다’고 말한다. 전시장 초입의 ‘광주 도시철도 포용디자인 프로젝트’는 이러한 대표적인 사례다. 송정역을 모티브로 꾸며진 이 전시물의 모형과 인터페이스는 표지·길찾기·승강장·탑승 동선 전반을 재설계해 ‘처음 온 사람’도 헤매지 않게 만든다. 이 도시철도 프로젝트는 9월 중 실제 역에 공개될 예정으로, 광주의 사례가 국제적으로 ‘좋은 케이스’로 주목받을 수 있을지 눈길이 모인다.

◇4전시관 ‘포용디자인과 미래’

이창희 큐레이터가 총괄한 4관은 크게 로보틱스, 인공지능, 자연, 웰빙을 키워드로 한다. 미래 우리 시대의 디자인은 어떤 느낌일지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세 번째 엄지를 덧붙여 큰 물체를 잡도록 돕는 ‘세 번째 엄지 손가락’은 결핍을 보완하는 것을 넘어 누구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만든 ‘스시 2053’은 환경 변화가 낳을 음식·감각·관계의 미래를 질문하며, 소리를 촉각으로 변환해 청각장애인의 ‘음악 듣기’를 가능케 하는 기술은 ‘사람 중심’의 미래를 상상하게 한다.

◇뉴노멀플레이그라운드

마지막 공간은 빛과 소리, 자연을 동심원처럼 겹쳐 구성했다. 보는 것 중심의 관람을 벗어나 손으로 만지고 소리를 듣고, 몸으로 이해해볼 수 있는 공간이다. 관람객들은 큰 패브릭 조각의 구멍에 팔을 넣어보거나 어두운 공간에서 촉각 그리고 청각, 후각에 의존해 작품을 경험해보는 등 무뎌진 감각을 되살려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문손잡이, 감자칼 하나가 삶의 경계를 바꾸는 순간을 마주하는 경험이었다. 세계·삶·모빌리티·미래로 이어진 네 개의 전시관은 결국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정 집단을 돕는 장치가 아니라,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세상을 어떻게 만들 수 있냐는 질문이다. 갈수록 차별과 배제가 깊어지는 사회에서, ‘구분하지 않는’ 디자인의 힘을 보여줬다는 점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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