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당시 인천상륙작전 성공 기틀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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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가 9월 6·25전쟁영웅으로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기틀을 마련한 고(故) 이성호 전 해군참모총장(해군 중장·사진)을 선정했다.
9월의 독립운동으로는 한국광복군 창설이 선정됐다.
31일 보훈부에 따르면 이 중장은 1946년 해군의 전신인 해방병단에 입대했다.
한편 보훈부는 9월의 독립운동으로 '한국광복군 창설'을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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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독립운동은 '한국광복군'

국가보훈부가 9월 6·25전쟁영웅으로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기틀을 마련한 고(故) 이성호 전 해군참모총장(해군 중장·사진)을 선정했다. 9월의 독립운동으로는 한국광복군 창설이 선정됐다.
31일 보훈부에 따르면 이 중장은 1946년 해군의 전신인 해방병단에 입대했다. 진해고등해원양성소에서 항해술을 배운 그는 해군병학교(해군사관학교 전신) 교관으로 생도들을 교육했다.
이 중장은 1950년 인천에서 북한군 해안 진지를 공격해 선박과 진지를 파괴했다. 9월 초에는 더글러스 맥아더 연합군 최고사령관이 지휘하는 미국 극동군사령부의 정보요원 20여 명을 영흥도에 상륙시켜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 중장은 1960년부터 1962년까지 제5대 해군참모총장을 지냈다.
한편 보훈부는 9월의 독립운동으로 '한국광복군 창설'을 선정했다. 한국광복군은 1940년 9월 중국 충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규군으로 창설됐다.
광복군은 정신적으로는 대한제국의 국군을, 인적으로는 독립군을 계승했다. 처음에는 총사령부와 4개 지대로 구성됐는데, 1942년 조선의용대가 합류하면서 제1·2·3지대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창설 초기 병력은 수십 명에 불과했지만 국내외 동포들의 지원과 광복군의 적극적인 병력 모집을 통해 1945년 광복 직전에는 1000여 명 규모로 성장했다.
[김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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