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가마 앞에 태극기·일장기 함께 걸죠
한국은 아버지·조상의 나라
일본은 날 키운 어머니 나라
양국은 미래 함께 걷는 관계
가고시마 명예 총영사로 활동
韓日 국교정상화 60년 맞아
농심과 '신라면 도기' 협업도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속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계를 되돌리려고 하지 말고 미래를 향해 한일이 함께 걸어가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일본 3대 도자기로 불리는 '사쓰마야키(사쓰마 도자기)'를 만들어낸 조선 도자기 장인 심당길의 후예인 15대 심수관(66·일본명 오사코 가즈테루)은 최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몰라보게 좋아진 한일관계로 말문을 열었다. 심당길은 1598년 정유재란 때 전북 남원에서 가고시마 영주 시마즈 요시히로에 의해 일본으로 끌려갔다. 당시 같이 납치된 조선 도공 80여 명과 함께 정착한 곳이 가고시마현 미야마다. 15대 심수관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이곳의 '심수관요'에서 사쓰마 도자기를 빚고 있다.
심수관이라는 이름은 원래 12대가 사용했다. 12대 심수관은 187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크기 180㎝의 대형 화병을 출품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출품된 대화병 한 쌍은 일본 국보로 지정됐고, 이때부터 후손들은 심수관이라는 이름을 이어 쓰며 그를 기리고 있다.
심수관이라는 이름이 일본 사회에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일본 국민 작가로 불리는 시바 료타로의 공이 크다. 기자 출신으로 역사 소설가인 그는 15대 심수관의 아버지인 14대 심수관을 인터뷰한 뒤 정유재란 후 일본에 끌려와 도자기를 만든 조선 도공의 애끊는 사연을 그린 '고향을 어이 잊으리까'(1968)라는 소설을 발표했다.
이 소설이 전국적 인기를 끌면서 '심수관'이라는 이름은 일본에서 도자기 명인의 대명사가 됐다. 지금도 일본 전국 각지에서 가고시마를 찾는 목적으로 심수관요 방문을 꼽을 정도다.
조선 도공이 일본에 와서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가장 큰 것이 재료 문제였다. 한국서 도자기를 만들 때 사용했던 흙이나 유약 등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선조들은 조선의 원료를 쓸 수 없어서 일본의 흙과 재료로 완전히 새로운 도자기를 만들어야 했다"며 "강제노동의 산물이 아니라 생존을 건 창조이자 위대한 개척자 정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은 중앙집권 국가여서 시대별로 도자기 양식이 달라졌지만 일본은 지방분권 국가라 지역마다 도자기가 다양한 형태로 꽃피웠다"며 "한국은 대담하고 소박한 미가 특징이라면 일본은 지역별로 다양성과 세밀함이 강조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겉모습이 달라 보여도 흙과 불, 그리고 장인의 손길이 함께해야 하는 도자기의 본질은 양국이 똑같다"고 덧붙였다.
400여 년간 한국의 도자기 전통을 일본으로 계승한 그는 매일 아침 가마 앞에 태극기와 일장기를 함께 게양한다. 바람이 부는 날 두 국기가 나란히 한 방향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고 한다.
그는 "한국은 아버지와 조상의 나라이고 일본은 우리를 키워준 어머니 같은 나라"라며 "두 나라가 사이좋게 지내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는 게 저희 가문"이라고 강조했다.
올해는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한 지 60년이 되는 해다. 그는 "정치적 문제가 국민 간 감정으로 번지는 것은 위험하다"며 "서로 직접 보고 교류하며 작은 실들이 많이 이어질 때 튼튼한 관계망이 만들어진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두 나라가 부부나 부모·자식 관계처럼 다툴 때도 있지만 결국은 용서하며 함께 갈 수 있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최근 15대 심수관은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뜻깊은 협업을 했다. 인스턴트 라면의 본고장인 일본 시장에서 '매운맛'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신라면 브랜드를 정착시킨 농심과 함께 신라면 도자기를 만든 것이다.
그는 "400년 역사를 거치며 한국의 도자기 문화를 일본에 이식시킨 심수관 가문과 일본 식문화에 한국의 매운맛을 제대로 스며들게 해 하나의 브랜드를 만든 농심은 공통점이 있다"며 "신라면 사쓰마 도자기가 한국의 식문화를 일본에 더욱 널리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신라면 도자기 협업에는 15대 심수관의 장남도 참여했다. 앞으로 '습명(선대 이름을 계승하는 것)'을 하게 되면 장남은 16대 심수관이 된다.
그는 "장남은 한국에서 도자기를 공부할 때 태어나 어릴 때부터 흙을 만지고 가마의 불을 경험했다"며 "앞으로 4~5년 뒤에 가업을 물려줄 계획인데 '심수관'은 기술이 아니라 정신이기 때문에 그 정신을 이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1959년생인 15대 심수관은 40세인 1999년에 14대로부터 습명했다.
일본에 건너온 뒤 경계인으로 살던 그의 가문은 이제 한일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2019년 별세한 아버지에 이어 15대 심수관도 2021년부터 주가고시마 명예 총영사로 활동 중이다. 심수관이라는 이름은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이제는 한일 교류의 상징이자 과거와 미래를 잇는 다리가 됐다.
[도쿄 이승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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