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품, 기억과 욕망의 투영 [유레카]

기념품은 특별한 장소나 경험을 기억하게 해주는 타임캡슐이다. 그것이 꼭 값비싼 인공물일 이유는 없다. 이국적 풍경의 바닷가에서 주워 온 조개껍데기도 당사자에게만 특별하면 된다. 기념품은 거기 담긴 기억이 오직 그 소유자만의 것이란 점에서 지극히 사적이다. 동시에 인간은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기억을 붙잡고픈 욕망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보편적이기도 하다. 세계 유명 관광지에는 어김없이 열쇠고리, 그림엽서, 마그넷, 미니어처 등 양산된 상품들이 기념품 매대에 쌓였다. 수많은 관광객이 똑같은 기념품을 사 가지만 그 의미는 저마다 다르다. 기념품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사물에 투영된 개인적 서사이다.
매혹과 경이로움은 일상 너머에 있다. 주로 여행이나 특별한 순간(사건)의 징표로 기념품을 찾는 이유다. 기원전 2200년께 이집트의 하르쿠프 왕자는 누비아(오늘날 수단) 여행 때 표범 가죽, 상아, 향료, 흑단 같은 기념품을 가져와 파라오에게 바쳤다. 그의 무덤 벽에 자필로 새겨진 선물과 공물 목록은 현전하는 최초의 기념품 기록이다.
미국 여행작가 롤프 포츠는 여행 기념품을 다섯 가지 범주로 소개했다. ①‘파편’. 여행지의 자연물이나 경험을 물리적으로 떼어낸 일부로, 조약돌·티켓·베를린 장벽의 조각처럼 값을 치르지 않고 간직할 수 있다. ②지역특산물. 여행지의 독특한 생산물로, 자연물과 공예품을 아우른다. 나머지 세 범주는 ③그림 이미지(지역 풍경과 명소를 담은 엽서와 포스터 따위) ④표지물(지역을 상표화한 티셔츠, 머그잔 등) ⑤압축 상징물(유명 건축물의 미니어처 따위) 등 대량 판매용 상품이다.
서구의 경우,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중세까지 기념품은 주로 성지순례자들의 성물이었다. 예루살렘 올리브산의 예수승천교회에선 순례객들이 메시아 예수의 발바닥이 닿았다는 흙을 몇 움큼씩 집어가는 양이 너무 많아 관리인이 종종 흙을 채워 넣었다고 한다. 인도 힌두교 순례자들은 시바 신전에서 유리로 만든 남근상(링가)을 샀고, 무슬림들은 메카 순례 때 ‘잠잠 우물’의 물을 마시고 화려한 장식의 통에 성수를 담았다. 모두 신앙의 징표이거나 기적의 부적과도 같았다.
계몽시대에는 학식을 쌓으려 유럽 대륙을 여행한 부유층 자녀들이 이국적인 기념품에 관심을 가졌다. 여행이 드문 경험이었던 과거에는 여행 기념품이 특별한 경험뿐 아니라 부와 특권을 과시할 수 있는 증거였다. 네덜란드에 가면 튤립 구근과 도자기를, 스위스 알프스산맥에 가면 수정과 허브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는 향긋한 비누와 크리스털 공예품을 가져왔다. 대중의 원거리 여행과 자본주의적 상품 생산이 보편화한 19세기 말에는 토산품 대신 공장에서 양산된 장식품과 소품이 인기를 끌고 기념품점도 등장했다.
1893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콜럼버스 세계 박람회’ 행사장에선 콜럼버스와 이사벨 여왕, 산타마리아호가 양각된 티스푼이 수만 개 팔려나갔다. 그즈음 기념품 숟가락 대유행은 미국의 보석상과 은세공인들이 치밀하게 계산한 전략의 결과였다. 20세기 말, 세계의 양산형 기념품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산업이 됐다.
기념품이 꼭 아름답고 소중한 것만은 아니었다. 191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철광 마을에선 떠돌이 흑인 노동자가 백인 경비를 살해한 혐의로 구금됐다가 유치장 밖으로 끌려 나와 3천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산 채로 불타 죽었다. 군중 일부가 수갑과 발판, 심지어 희생자의 뼛조각 등 유해 일부를 기념품으로 챙겼다.
이것 말고도 린치(사적 폭력) 또는 공개처형 희생자의 주검 일부를 뜯어가거나 심지어 가공해 판매하는 사례는 19세기 미국과 유럽에서 빈번했다. “린치 기념품은 피해자를 비인간화하고 야만적 정동의 에너지를 증명할 뿐 아니라, 무언의 백인우월주의를 드러내는 물리적 증표였다.”(롤프 포츠) 21세기 들어서는 비극적 죽음을 추념하고 역사적 교훈을 얻는 ‘다크 투어’가 등장했지만 기념품은 대부분 그 뜻에 걸맞게 정제된 제품들이다.
기념품도 얼마든지 타인을 위한 선물일 수 있다. 꼭 토산품이 아니라 공장형 양산품도 예외는 아니다. 저만의 경험과 기억을 소중한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의 표시일 테다. 그런 사랑과 우정이 없는 기념품은 달나라 여행에서 가져왔더라도 선물이 아니라 ‘호수의 달 그림자’ 같은 뇌물일 뿐이다. 권세와 지위가 높은 이들이 남몰래 받는 고가의 보석과 장신구, 명품시계, 금거북이 따위도 그렇다. (참고 도서=‘기념품’, 롤프 포츠 지음, 송예슬 옮김, 복복서가, 2025)
조일준 텍스트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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