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못해 다치고 쫓겨난 ‘코리안 드림’, 네팔 동포 연대로 치유해요

임재우 기자 2025. 8. 3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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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 상가 건물, 네팔 이주민들이 설립한 주한네팔나눔협회(NRNA) 사무실에 지난 17일 환한 얼굴을 한 네팔인 30여명이 모여들었다.

이날 협회 사무실 한 쪽에 '네팔인 노동자·유학생 지원 데스크'(지원데스크)가 마련됐다.

구릉 비핀 주한네팔나눔협회 회장과 네팔 출신 한국인 귀화자로 지원데스크 실무를 맡는 이수진 부장은 26일 한겨레와 만나 "데스크 개소 열흘 만에 들어온 신고가 50건이 넘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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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서울 종로구에서 비핀 구릉 주한네팔나눔협회(NRNA) 회장과 이수진 부장이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 상가 건물, 네팔 이주민들이 설립한 주한네팔나눔협회(NRNA) 사무실에 지난 17일 환한 얼굴을 한 네팔인 30여명이 모여들었다. 이날 협회 사무실 한 쪽에 ‘네팔인 노동자·유학생 지원 데스크’(지원데스크)가 마련됐다. 행정적·법률적 문제에 처한 동포를 보다 전문적으로 도우려 만든 지원 창구다. 한국 거주 네팔인 6만여명 대부분에게 한국은 ‘코리안 드림’의 나라일지는 몰라도, 위기 앞에 손쉽게 제도와 기관에 접근할 수 있는 나라는 아니다. 네팔 정부에도 자국민을 도울 여력이 없다. 이날 원격 축사에 나선 서럿 싱 번다리 네팔 노동고용사회안전부 장관은 이역만리 한국 땅에 옹기종기 모인 자국 시민을 영상으로 보며 미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나라가 해야 할 역할을 대신해줘서 고맙습니다.”

한국 사회에 익숙지 않아 제도로 보장된 권리조차 놓치는 동포들을 보다 못해, 먼저 정착한 이주민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갓 첫발을 뗀 지원데스크도 그 중 하나다. 구릉 비핀 주한네팔나눔협회 회장과 네팔 출신 한국인 귀화자로 지원데스크 실무를 맡는 이수진 부장은 26일 한겨레와 만나 “데스크 개소 열흘 만에 들어온 신고가 50건이 넘는다”고 했다. ‘신고’들의 면면은 절박하고 참혹했지만, 약간의 도움이면 해결될 수 있는 황당한 것들이었다.

20대 네팔 유학생 ㄱ씨는 경기도 화성의 한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대형 빨래 건조기에 손가락 4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한 뒤, 지원데스크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수진 부장이 병원으로 달려갔다. ㄱ씨는 일한 호텔 위치조차 몰랐다. 인력사무소 소개로 일을 시작한 첫날 사고를 당한 데다, 호텔 사장이 ㄱ씨를 병원으로 옮긴 뒤 연락을 끊었기 때문이다. 수소문 끝에 연락이 닿은 사장은 한국어가 능숙한 이 부장의 연락을 받자마자 “산재 처리를 해주겠다”며 태도를 바꿨다.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에서 주한네팔나눔협회(NRNA)가 ‘네팔인 노동자·유학생 지원 데스크’ 개소식을 열었다. 주한네팔나눔협회 제공

또 다른 여성 노동자 ㄴ씨는 이 부장 집에 머문다. 충남 논산의 한 버섯농장에서 3년 동안 일하다가 지난 14일 고용주로부터 갑자기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 갈 곳을 잃었다. 한국어가 서툰 ㄴ씨가 영문도 모른 채 고용주가 시키는 대로 ‘출국신고서’에 서명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 부장과 한국인 행정사가 고용노동청에 사정을 설명해봤지만 “이미 자진 출국을 신고해 방법이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이 부장은 “말이 안 통하면 원하지 않는 서류에 사인하고, 노동부든 경찰이든 고용주 말만 듣게 된다”고 했다.

위기에 처한 이주민에게 행정 기관이 아닌 자국 동포 커뮤니티가 유일한 희망이 되는 모습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이 모인 ‘크메르 노동권 협회’는 노동 문제 상담과 해결은 물론, 사업주와 분쟁 등으로 갈 곳을 잃은 노동자를 위한 쉼터까지 스스로 마련했다. 인도네시아 동포 커뮤니티는 산업재해로 숨진 동포의 장례비를 십시일반 모아 함께 장례를 치른다.

지원데스크가 열린 뒤 이수진 부장 전화는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수시로 울린다. 이 부장은 “더 많이 연락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무서워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일단 전화하라고 해요. 한국말 한마디로 문제가 해결되는 걸 너무 많이 봤거든요.”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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