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국채 그리고 복지…깊어지는 ‘재정 트릴레마’ [아침햇발]


안선희│논설위원
윤석열 정부가 집권 3년 동안 짰던 예산안의 총지출 증가율은 2023년 5.1%, 2024년 2.8%, 2025년 3.2%(국회에서 2.5%로 감액)였다. 경상성장률을 밑도는 초긴축 예산을 2년 연속 편성해 사실상 정부 규모를 축소했다. ‘작은 정부’라는 한물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윤석열 정부는 3년 동안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었다. 부진한 경기를 진작하고 미래 먹거리를 키우고 불평등을 축소해야 하는 정부 역할은 실종됐다.
지난 29일 발표된 내년도 예산안은 새 정부가 전임 정부의 긴축재정 기조를 폐기하고 확장재정 기조로 전면 전환했음을 보여준다. 총지출은 올해 본예산보다 8.1% 증가한 728조원으로 편성됐다. 인공지능(AI), 연구개발(R&D) 등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는 사업의 증가율이 높았다. 세수 여건이 좋지 않다 보니 상당 규모의 국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씨앗을 빌려서라도 뿌려서 농사를 준비하는 게 상식이고 순리”라고 강조했다. 성장 동력이 나날이 약화하고 있는 현재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타당한 방향이다.
다만 정부가 예산안과 함께 발표한 ‘2025~2029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는 다소 우려스러운 대목이 없지 않다. 이 계획에 따르면 연평균 재정지출 증가율은 5.5%지만 재정수입 증가율은 4.3%에 그치면서 매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이 4%를 넘어선다. 국가채무도 매년 100조원 이상씩 늘며 2029년 1788조9천원에 이르고, 지디피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올해 49.1%에서 2029년 58%까지 상승한다. 상승 속도가 느리다고 보기는 힘들다.
호들갑을 떨 필요까지는 없다.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 기준 선진국 평균이 78%, 주요 20개국(G20) 평균이 83%인 것과 비교하면 높지 않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사실 어느 정도가 적정한 비율인지 정답도 없다. 우리 재정당국은 오랫동안 40%를 마지노선이라고 주장했지만, 무너진 지 오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에는 선진국은 60%가 바람직하다고 여겨졌지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유명무실해졌다. 민간 금융시장이 늘어난 국채를 소화할 수 있는지,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를 받고 있는지 등이 중요할 것이다. 우리 경제 여건에서 58%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몇가지 지점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2006년 1.6%에 불과했던 국채의 외국인 보유 비중이 지난 7월 말 23.9%까지 늘어나면서 ‘외풍’에 휘둘릴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높으면 글로벌 금융시장이 흔들릴 때 외국 자본이 대거 유출될 위험이 존재한다. 국제 신용평가사 등의 눈치도 봐야 한다. 그런 면에서 다음 정부는 국채 발행에 있어 운신 폭이 상당히 좁아질 수 있다. 또 하나는 국채 이자 비용이 내년 36조4천억원에서 2029년 44조원(총지출의 약 5%)까지 불어난다는 것이다. 세금으로 재정을 더 조달했다면 줄일 수 있었을 비용이다.
국가채무가 이렇게 늘어나는 것은 결국 지출보다 수입이 적기 때문이다.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조세부담률(지디피 대비 세금 비율)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한다. 2025년 18.6%, 2026년 18.7%, 2027년 18.8%, 2028년 19.0%, 2029년 19.1%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는데, 이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2년 22.1%에서 크게 하락한 수준일뿐더러, 지난해 윤석열 정부의 전망(2028년 19.1%)보다도 낮은 것이다.
정부가 재정을 마련하는 주요 방식은 세금과 부채다. 둘 다 최소화하려면 재정지출을 줄여야 한다. ‘낮은 국가채무비율-높은 복지 수준(재정지출)-낮은 조세부담률’ 세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는 없다. 이른바 ‘재정 트릴레마’(Fiscal Trilemma)다. 예를 들어 스웨덴은 복지 수준이 높고 국가채무비율이 낮은 대신 조세부담률이 높다. 우리나라는 원래 복지 수준, 조세부담률, 국가채무비율이 다 낮았다. 새 정부의 국가재정운용계획은 추가적인 세입 확충 노력이 없이 재정지출을 계속 확대하려 한다면 결국 국가채무비율 상승을 감수해야 함을 보여준다.
세금을 더 낼 것인가, 나랏빚을 더 낼 것인가? 이도 저도 싫으면 복지도 줄이고 신산업 투자도 줄일 것인가? 지속가능성과 공정성의 측면에서 어떤 선택이 가장 바람직한가? 피할 수 없는 재정 트릴레마를 앞에 두고 정부와 국민 모두 머리를 맞대야 할 문제다.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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