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이 바꾼 미술시장 ‘키아프리즈’ 관전법

노형석 기자 2025. 8. 31.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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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1층에 펼쳐진 ‘키아프 2024’의 부스 전시 현장과 관객들. 노형석 기자

지난해 말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계엄령은 6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미술시장에는 지금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큰 국제 미술품장터로 꼽히는 영국 아트페어업체 프리즈의 ‘프리즈 서울’과 한국화랑협회의 ‘키아프 서울’의 올해 9월 공동 장터 준비에 큰 차질이 생겼다. 애초 참여하겠다던 서구 중견 화랑 상당수가 “정세 불안으로 작품 회수가 보장되지 않는다”며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최근 불참 의사를 밝힌 업체도 있다. 계엄 사태 직전 참가 화랑 규모를 거의 확정했던 프리즈 서울은 서구 화랑들의 취소 사태로 부스 구성에 어려움을 겪었다.

프리즈 서울에 서구 화랑 레지스 크람프 갤러리가 내보이는 거장 조르주 브라크의 1937년 작 ‘레 루제’(붉은 숭어).
가나아트가 키아프에 출품하는 시오타 지하루의 2023년 작 ‘끝없는 선’.

한국화랑협회 관계자가 “뻥뻥 뚫린 구멍”이라 표현한 출품 화랑 공백을 메운 건 프리즈의 긴급 제안을 받고 몰려든 한국 화랑들이다. 출품 비용이 최소 1억원을 넘지만 세계적으로 명망 높은 프리즈 출품은 대학·기업의 서열처럼 중요한 ‘스펙’이 되고, 유망 작가 관리와 확보에 결정적 기반이 된다. 이에 키아프를 주최하는 한국화랑협회 회장 업체인 선화랑까지 프리즈 출품 행렬에 가세했고, 지난해보다 10개 가까이 늘어난 31개 화랑이 프리즈 일원이 됐다. 본전시 참여 한국 화랑만 20개다. 한국화랑협회와 공동 주최라지만, 프리즈가 한국 화랑계를 사실상 접수하는 단계에 들어섰단 말이 나온다. 피케이엠 등 일부 한국 화랑은 키아프 말고 프리즈에만 출품한다.

이런 변수를 안고, 2022년부터 프리즈와 한국화랑협회가 공동 주최해온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이 9월3~7일(프리즈는 6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다. 프리즈는 가고시안(거고지언), 하우저앤워스, 데이비드 즈워너, 페이스 등 서구 명문 화랑과 갤러리현대, 국제갤러리, 가나아트 등 국내 화랑 30여개 등 120여개 화랑이 출품한다. 키아프는 175개 국내외 화랑이 출품해 근대기 거장, 현대미술 대가들의 작품들을 전시·판매한다.

갤러리현대가 키아프에 출품하는 김민정 작가의 2024년 작 ‘거리’.

계엄 사태의 영향과 전세계 시장 불황이 지속되면서 서구 화랑들이 잇따라 발길을 돌리자 다급해진 프리즈 쪽은 국내 화랑과 아시아권 화랑을 대거 끌어들이는 고육책을 썼다. 반면, 키아프는 출품 화랑을 지난해 206개에서 175개로 줄이는 강수를 두며 콘텐츠 고급화 전략에 ‘모두 걸기’를 하는 분위기다. 프리즈가 현지 화랑 비중을 이렇게 높인 건 세계 다른 나라 페어에서는 볼 수 없는 이례적인 현상이다. 계엄령 변수로 서로의 전략이 뒤바뀌는 희한한 구도가 형성된 셈이다.

고무적인 변수도 있다. 최근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킨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덕에 한국 시각 문화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는 점이 기대감을 돋운다.

미국의 순다람 타고르 갤러리가 키아프에 출품하는 히로시 센주의 2023년 작 ‘폭포’.
프리즈 서울의 페로탕 갤러리 부스에서 전시되는 무라카미 다카시의 제이팝 아트 작품.

프리즈 서울에는 가고시안, 데이비드 즈워너, 리먼 머핀, 페이스, 화이트 큐브 등 정상급 국외 화랑의 본전시 부스가 우선 관심 끄는 볼거리다. 미국 추상주의 개척자 아돌프 고틀리브(페이스), 일본 팝아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가고시안), 구사마 야요이와 볼프강 틸만스(데이비드 즈워너), 서도호와 헤르난 바스(리먼 머핀) 등의 작품이 중심 영역 부스의 매대를 수놓는다. 고미술품부터 20세기까지 주요 명품들을 소개하는 ‘프리즈 마스터스’에서는 김환기, 박수근, 변월룡 등 국내 근현대 대가를 소개하는 학고재 부스와 에노쿠라 고지와 박서보, 스가이 구미 등 1960년대 일본과 한국의 전위 미술을 다룬 도쿄 갤러리+BTAP, 조르주 브라크의 입체주의 회화를 내보이는 레지스 크람프 갤러리를 주목할 만하다.

미술계가 동반 성장하는 의미에서 ‘공진’이란 주제를 내건 키아프 서울은 20여개국 50개 국외 화랑들이 참여해 전체 갤러리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본전시인 키아프 ‘갤러리’에 이 화랑들을 포함해 153개 갤러리가 부스를 내고 작품들을 선보인다. 가나아트는 실 설치 작업 작가 시오타 지하루의 작업을, 국제갤러리는 스위스 출신 우고 론디노네의 작품을 내보이며, 미국 뉴욕의 순다람 타고르 갤러리는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업을 출품한다. 신진 작가와 신진 화랑을 위한 ‘플러스’ 섹션과 유망 작가 10명을 선정해 지원하는 ‘하이라이트’, 한-일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양국 큐레이터가 공동 기획한 특별전 ‘리버스 캐비닛’도 눈길을 끈다.

아트오브더월드 갤러리가 키아프에 출품하는 페르난도 보테로의 2012년 작 유화 ‘두 친구’.
프리즈 서울에서 리먼 머핀 갤러리가 출품하는 김윤신 작가의 그림.

서울 한남동과 청담동, 삼청동에 있는 주요 갤러리들이 늦은 밤까지 문을 열고 음료와 음식을 제공하는 특유의 ‘나이트’ 행사도 빼놓을 수 없는 ‘키아프리즈’의 명물이다. 9월2일 ‘한남 나이트’에는 리먼 머핀 갤러리, 3일 ‘청담 나이트’에는 포스코미술관, 4일 ‘삼청 나이트’에는 아트선재센터와 국립현대미술관 등이 참여해 늦게까지 특별 행사를 진행한다. 프리즈가 약수동에 마련한 상설 전시 공간 ‘프리즈 하우스 서울’은 개관전으로 김재석 큐레이터가 만든 퀴어 공간 기획전 ‘언하우스’를 선보인다. 글로벌 미술계 인사들과 국내 미술인들의 이야기 토크도 9월4~6일 코엑스 2층 스튜디오159에서 진행된다. 키아프는 서울시와 협업해 도심 주요 거점에서 대형 미디어아트 프로젝트도 상영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각 화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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