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또럼프'…中 반도체 장비 반입 제한에 삼성·SK '한숨'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내 공장에 내줬던 '반도체 장비 반입 허용'을 철회했다. 중국 공장의 증설·기술 개선을 위해 미국산 장비를 들이는 게 사실상 금지되면서 우리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일부에서는 트럼프 정부가 관세 후속 협상, 대미(對美) 투자의 압박 카드로 이를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이 지난 29일(현지시간) 중국법인의 VEU(Validated End User, 검증된 최종사용자) 지위를 철회한다고 발표함에 따라 대응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VEU 지위가 철회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공장으로 미국산 반도체 장비 등을 반입할 때마다 미국으로부터 개별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한다. 두 기업은 바이든 정부 시절인 2023년 VEU 지위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VEU 철회 움직임이 나타났다. BIS는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기업을 경쟁에서 불리하게 만드는 수출통제의 허점을 없애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BIS는 기존 공장의 운영용 장비 반입은 허가하겠지만 증설이나 기술 업그레이드를 위한 장비는 반입 승인을 내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을 사실상 막겠다는 것이다. 두 기업에 주어진 유예 기간은 120일로 VEU 철회는 올해 12월 31일부터 적용된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공장에서 전체 낸드플래시 생산의 30~40%, SK하이닉스는 우시에서 D램의 약 40%를 생산 중이다. SK하이닉스가 인텔에서 인수한 다롄의 낸드 생산법인도 VEU 지위가 철회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상황을 예의주시 중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이날 미국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며 장비 수출 규제에 질문을 받고 "일 열심히 해야죠"라고만 짧게 답했다. 삼성전자의 중국 반도체 생산법인은 올해 상반기 매출 4조4146억원, 영업이익 5336억원을 기록했다.
주로 범용 반도체를 생산 중이고 당장 생산에 차질을 빚진 않지만 행정적 불확실성과 시간 지연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BIS는 연간 1000여건의 허가 신청이 제출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반도체 생산은 특성상 끊임없이 첨단 장비와 공정을 적용해 제품을 개량하고 생산 효율을 높여야 한다. 나노 단위 경쟁이 펼쳐지는 시장에서 장비 도입이 조금만 늦어져도 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공장 운영을 위한 장비의 기준도 세부안을 확인해야 할 것 같다"며 "장비 반입이 늦어지는 것만으로도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트럼프 정부가 'VEU 지위'를 관세 후속 협상, 미국 내 투자 등의 압박 카드로 사용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는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관세협상을 타결했지만 자동차 관세율 명문화와 구체적인 대미 투자 방식과 범위 등에서 세부 협상을 진행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상호관세 타결 후에도 "반도체에 100%의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다만 미국 내 생산을 약속하거나 실제로 제조하는 기업은 관세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하는 등 반도체 산업 전반을 압박 중이다. 인텔에 보조금을 지급하면서는 지분 9.9%를 받아 내기로 합의했다.
이달 중순 반도체 품목별 관세 부과 방안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지연되는 상황이다. 관세 협상에서 미국으로부터 한국을 반도체 부분에서 최혜국 대우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이 없다.
산업통상자원부는 VEU 철회와 관련해 "반도체 기업의 원활한 중국 사업장 운영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안정에 있어 중요함을 미국 정부에 강조했다"며 "미국 정부와 계속해서 긴밀히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관행과 상식을 뒤엎는 연이은 트럼프발 압박 조치가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 관련 트럼프 대통령 발언과 정부 정책이 하루가 멀다고 계속 쏟아지다 보니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다"며 "반도체 산업을 통상 협상의 주요 카드로 삼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김남이 기자 kimnam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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