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도 높아진 한류 콘텐츠, 글로벌 감수성 시험대에 서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 커질수록 ‘몸가짐’도 신중해야
(시사저널=하재근 국제사이버대 특임교수)
MBC 새 금토드라마 《달까지 가자》 측이 8월20일 공개한 티저 영상이 논란 끝에 이례적으로 삭제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문제의 장면은 주요 출연진이 하와이의 훌라와 벨리댄스를 섞은 듯한 춤을 추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의상이 아라비아풍이었고, 이마엔 인도의 종교의식에서 유래한 빈디가 찍혀있었다.
제작진은 극 중에서 주인공들이 제과회사에 다니는 설정이라, 1980~90년대 아이스크림 광고를 패러디했다고 설명했다. '이상하게 생겼네 ~~스크류바' '비비 꼬였네' 같은 코믹한 B급 광고의 정서를 재현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주인공들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러자 아랍권과 인도 등 해외 누리꾼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두 문화를 뒤섞어 고정관념으로 조롱하는 것은 무례하고 터무니없이 인종차별적"이라며 타 문화권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지적이었다. 국내 누리꾼들 역시 제작진을 질타했다.
코믹한 B급 영상을 추구했지만, 그 웃음이 타 문화권에는 희화화와 조롱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한 문화만을 대상으로 삼았어도 문제였을 텐데, 여러 문화권의 요소를 뒤섞다 보니 논란은 더 커졌다. 외국에서 한복과 기모노를 뒤섞어 희화화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된 셈이다.
거센 질타가 이어지자 결국 MBC 측은 영상을 삭제하고 "타 문화권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며 "앞으로는 세심하고 신중하게 제작해 불편함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사과했다.

노래 '아싸라비아' 이후 외국 문화 관련 논란 잇달아
사실 한국 대중문화에서 타 문화를 희화화하는 일은 낯선 일이 아니었다. 1980년대 큰 인기를 끈 개그 코너 '시커먼스'가 대표적이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차별적인 발언들이 예능에서 흔히 나왔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 등지에 해외 촬영을 나갔을 때 평소 외모 때문에 놀림을 받던 출연자에게 '현지인 같다'는 말을 던지는 것도 다반사였다.
다만 같은 동아시아라도 일본은 예외였다. 일본인 같다며 놀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일본의 패션 피플 같다"며 찬사를 보내는 설정은 종종 나왔다. 서구 선진국, 특히 미국 뉴욕 등지에서 촬영할 때는 프로그램에서 외모로 손꼽히는 출연자에게 '현지인(뉴요커) 같다'는 말이 붙었다. 나라에 따른 위계와 차별 구도가 분명히 드러나 있었다.
과거 한국 대중문화계는 이국적인 다른 나라의 문화적 요소를 빌리는 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좋은 의미로든, 희화화를 위해서든 별다른 구애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활용했다. 여러 문화권 요소의 조합도 서슴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그러한 문화적 요소가 형성된 원래의 맥락은 무시됐다.
그러다 큰 경각심을 준 게 싸이가 월드 스타가 된 후의 신곡 사건이었다. 《강남스타일》의 큰 히트 후 싸이의 신곡은 국제적 관심사였다. 2013년 3월에 제목이 먼저 공개됐는데, 바로 '아싸라비아(Assarabia)'였다. 우리에겐 매우 익숙한 표현이다. '아싸라비아 콜롬비아'라는 관용어구가 많은 이에게 우스꽝스럽게 회자돼 왔기 때문이다. B급의 우스꽝스러움을 추구하는 싸이는 별생각 없이 이 제목을 내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해외에서 반발이 터졌다. '아싸라비아'가 '애스(ass)-아랍(Arabia)'이라는 아랍 비하 욕설로 느껴진다는 지적이었다. 결국 '아싸라비아'라는 제목은 철회됐다.
2020년에는 노라조가 2010년 곡으로 인해 뒤늦게 사과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카레》라는 노래의 가사 등에 인도 비하적 의미가 있다는 지적이 해외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블랙핑크 뮤직비디오는 힌두교 신상이 바닥에 놓인 장면이 모욕이라는 논란이 터져 해당 장면이 삭제됐다. 마마무 공연에서는 얼굴에 검은 칠을 한 분장이 '블랙페이스' 논란으로 비화했고, 결국 소속사와 아티스트가 사과하면서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이런 사건들이 반복되면서 우리 대중문화계에 큰 경각심이 생겨났다. 다른 나라의 시각을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달까지 가자》 제작진은 그 부분을 놓쳤기 때문에 홍역을 치렀다. 앞으로 다른 나라의 시각을 경시했다간 더 큰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왜 이런 일들이 더 큰 파장을 부르게 됐을까. 바로 한류가 최전성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한류 전성기라는 건 우리 대중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는 인구가 전 세계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케이팝 데몬 헌터스》로 인해 K팝에 관심이 없던 외국인들까지 K팝을 알아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몰입하는 어린이들을 'K팝 세대'라고까지 부른다고 한다. 이들이 성장하면 한국 문화에 관한 관심과 호감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강자가 된 한국, 더는 가볍게 웃을 수 없다
관심이 커질수록 몸가짐도 신중해야 한다. 과거엔 세계인들이 한국 콘텐츠에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대중문화가 타 문화를 자유롭게 다뤄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땐 우리 가수가 '아싸라비아, 인도 인도 인도싸이다'를 하든 뭘 하든 괜찮았다. 하지만 싸이가 세계적으로 우뚝 서고, 한류가 세계적 현상이 된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젠 전 세계가 한국 문화를 주목한다. 보는 눈이 많아진 것이다.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는 점도 중요하다. 약자가 강자를 희화화하는 건 대체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연예인이 카우보이 복장으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춘다고 해서 미국인들이 분노하는 일은 그다지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강자가 타 문화를 희화화하면 조롱으로 느껴지고, 차별 논란이 터진다. 과거엔 한국이 약자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제는 한국인에게 차별당한다고 느끼는 외국인이 많아질 수 있다.
세계 최강국이자 문화산업 최강인 미국의 제작 업계는 다른 문화권의 반응에 대해 항상 세심하게 신경을 써왔다. 한국 역시 작은 할리우드로 불릴 만큼 국제적 주목을 받는 존재가 돼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더구나 문화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상이 국제사회의 대세가 되기도 했다. 그저 과거 관행대로 안일하게 작업했다간 언제든 역풍을 맞을 수 있다.
한강의 기적과 한류 열풍, 그리고 국제적 사상 변화. 이 세 가지가 맞물리면서 한국 대중문화계에는 '몸조심'이 더 큰 과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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