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문화굴기 야망 깨운 ‘라부부’ 신드롬, 한국엔 위기다 [권상집의 논전(論戰)]
팝마트 시총 76조원까지 급등…소프트파워 맛본 중국의 행보 경계해야
(시사저널=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K팝 아이돌을 소재로 한 최초의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가 누적 시청 수 2억3600만을 기록하며 넷플릭스 영화 부문 역대 1위에 올랐다. 해당 영화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1위를 달성하는 등 'K콘텐츠'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케데헌》의 지식재산권(IP) 가치가 최대 1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가운데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국립중앙박물관은 역대 최다 관람객 기록을 연일 쓰고 있다. 현 추세라면 1945년 개관 이후 처음으로 연간 관람객 500만 명 고지를 넘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문화의 힘은 이토록 강력하다. 중국이 K콘텐츠의 열풍을 경계하면서도 부러워하는 이유다.
문화 콘텐츠라고 하면 우리는 K팝, 영화, 드라마, 공연, 웹툰을 떠올린다. BTS와 《기생충》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브랜드 파워를 각인시키고 국내 관광산업까지 한 단계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콘텐츠 전문가들은 늘 유니버스(세계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킬러 콘텐츠의 중심에 서사는 필수로 조성돼야 한다. 《스타워즈》 《어벤져스》 《미키마우스》의 팬덤과 시리즈 영속성은 서사에서 나온다.

서사 없는 캐릭터의 인기, 소유 욕망 건드리다
그러나 콘텐츠에 유니버스가 있어야 한다는 성공 방정식은 '라부부 신드롬'에 의해 단번에 무너졌다. 중국 장난감·완구 제조업체 팝마트가 출시한 라부부는 문화 콘텐츠 중에서도 캐릭터 산업에 속한다. 미키마우스, 포켓몬스터 등이 이 분야 최강자다. 캐릭터 IP 역시 고유의 세계관, 즉 서사가 있어야 한다는 건 해당 산업의 불문율이다. 그런데 라부부는 디즈니가 만든 것도 아니고 캐릭터가 지녀야 할 요소인 서사도 빠졌는데 인기가 있다. 독특한 현상이다.
라부부가 중국 내수용으로 인기를 구가하는 것도 아니다. 미국에서는 품귀 현상이 발생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블랙핑크의 멤버 리사가 라부부를 SNS에 올린 후 팝마트와 라부부 인지도가 급등하는 추세다. 2010년에 문을 연 중국의 캐릭터 IP 기업인 팝마트의 시가총액까지 덩달아 뛰었다. 지난해 8월 10조원이었던 팝마트 시총은 라부부 신드롬이 일자 올해 7월 61조원을 넘어선 데 이어 8월엔 한 달 새 5조원 불어난 76조원까지 치솟았다.
팝마트의 시총은 올해 8월 기준 네이버(35조원), 카카오(28조원), 하이브(12조원)의 시총을 모두 합친 규모보다 크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및 콘텐츠 기업의 시가총액을 모두 합해도 팝마트의 절반에 못 미친다. 중국의 아트 토이 제작 및 유통, 판매를 담당하는 팝마트의 잠재력을 시장에서 높이 인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장은 서사 없이 소유욕을 최대로 끌어올린 캐릭터의 폭발력에 주목했다.
2010년 문을 연 팝마트는 잡화점으로 시작했지만 성인용 장난감에 미래가 있다고 판단, 이른바 '아트 토이'라는 신규 분야를 개척했다. 피규어를 모으는 성인이 늘어나면서 수집 욕구가 강했던 시절, 팝마트는 아티스트가 창작한 귀여움을 지닌 라부부를 출시했다. 시장의 흐름을 수집 욕구에서 소유 욕구로 전환하려는 시도였다. 비싼 장난감을 소유하는 데서 벗어나 귀여운 인형을 갖는 것의 즐거움을 경험하자는 전략은 적중했다.
전문가들은 라부부의 열풍 원인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내놨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20대가 지닌 결핍 욕구를 귀여움으로 충족시켰다는 해석이 이어졌고,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팝마트의 블라인드 박스 전략을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구매해 박스를 오픈하기 전까지 라부부의 상세 스펙을 알 수 없기에 원하는 모델을 얻을 때까지 반복 구매하는 랜덤 박스 효과는 포토카드에 기반한 아이돌 음반 판매 전략과 동일하다.

가능성 확인한 中, 문화패권도 이룰까
한때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었다. 19세기 서구의 침략으로 내리막길을 걷던 그 시절의 굴욕을 중국은 잊지 않았다. 덩샤오핑이 충분히 힘을 축적한 후 세계의 중심 포지션을 되찾겠다고 언급한 '도광양회'(어둠 속에서 빛을 가리며 힘을 기른다) 전략은 중국이 기술과 문화에서 세계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선언과 같다. 중국 국가주석에 오른 시진핑은 노골적인 기술굴기(崛起)로 이를 키웠다.
유럽과 불평등 조약을 통해 얻었던 치욕을 극복하고 다시 그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 기술혁신을 진행해온 중국이 자국의 엘리트 인재를 모두 공대에 진학하도록 하며 기술 분야에 전폭적인 지원을 쏟아붓는 이유다. 기술에 대한 열망과 집착은 바로 그렇게 시작됐다. 그 결과, 인공지능(AI)을 비롯한 거의 모든 첨단산업에서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대국을 향한 그들의 마지막 목표는 바로 문화패권이다. 중국은 열망하면 반드시 가져야 한다. 중국이 지향하는 대국과 굴기의 관점에서 기술과 문화는 정치, 경제, 외교안보 역량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핵심 카드다. 기술 분야에서 중국이 확보 불가능한 것은 없다. 국가 주도의 막대한 물량 투입과 지원이면 우수 인재 확보도, 기술 개발도 어렵지 않은 것이 하드파워의 특성이다. 그러나 콘텐츠가 좌우하는 소프트파워는 국가 주도로 성장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라부부 신드롬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라부부는 서사가 없었지만 열풍을 일으킬 수 있는 틱톡이라는 플랫폼이 존재했다. 박스를 열고 라부부를 확인하는 각기 다른 소비자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틱톡으로 공유되면서 인기를 끌었다. 이에 더해 블랙핑크의 리사 등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라부부에 대한 관심을 전 세계로 확장시켰고 팝마트의 시가총액은 1년 만에 10조원에서 76조원으로 폭발했다. 소프트파워, 문화적 열풍은 항상 예측하기 어렵다.
중국은 지금까지 K콘텐츠를 엄격히 통제하며 한국의 K신드롬을 외면해 왔다.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에서 '인벤티드 인 차이나(Invented in China)'로 진화하며 기술굴기를 실현해온 중국은 이번 라부부 열풍을 통해 문화의 힘이 전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확인했다. 라부부는 중국의 문화굴기 야망을 다시 일깨웠다. 마침,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정책을 집요하게 추진하며 글로벌 민폐로 떠오른 것도 중국엔 호재다.
중국의 마지막 목표는 '크리에이티드 인 차이나(Created in China)'다. 문화 창조의 근원지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문화굴기는 우리에겐 분명 위기다. 문화의 힘마저 뺏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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