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이 얼마가 되면 빚 중독을 멈출 수 있을까[노원명 에세이]

노원명 기자(wmnoh@mk.co.kr) 2025. 8. 3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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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 총리가 25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어 긴축 재정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일을 요약하면 이렇다. 코로나19과 우크라이나 전쟁후 닥친 에너지 위기 대응 과정에서 재정적자 폭이 크게 늘어났다. 프랑스는 원래 복지지출이 큰 나라인데 가외 지출이 눈덩이처럼 커진 것이다. ‘이러다 IMF 가겠다’는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총리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65조원 규모의 적자 감축안과 자신의 신임을 연계했다. 그 투표가 오는 8일 실시된다. 야당은 코웃음 친다. 좌우할 것 없이 “불신임”을 벼르고 있다. 국민 절대다수가 감축안에 화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감축안에는 공무원 감축, 의약품 보조금 삭감, 공휴일 감축 등 복지축소 안건이 여럿 포함됐다.

프랑스가 앓고 있는 질병은 나라의 빚 중독, 보통 재정중독이라고 하는 병이다. 여기에 왜 중독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알게 하는 증상의 전형을 프랑스는 보여주고 있다. 자기 의지로 극복하기 어려운 것을 중독이라 한다면 지금 프랑스 국민이 그렇다. 의사가 ‘더는 위험하니 모르핀 투여량을 줄이겠다’고 하자 ‘당신 해고’라면서 다른 의사 불러오라고 한다. 공동책임은 무책임. 당장 자기 집에 압류 들어올 일 없는 나랏빚에 대한 대중의 태도는 대개 이런 식이다. 그러다 나라가 영영 골로 간다. 프랑스가 다시 유럽의 일류 국가가 될 수 있을까.

프랑스 이야기를 이재명 정부와 지지자들은 불편해한다. ‘또 그 타령이냐’며 지긋지긋한 표정을 짓는다. 이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논리는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이제 막 50%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선진국 평균에 비해 절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선진국에는 프랑스도 들어가고 그리스도 들어가고 스페인, 포르투갈도 포함된다. 선진국 평균까지는 늘려도 안전할까. 정부는 향후 4년간 국가 채무가 487조원 불어나 2029년에는 국가채무비율이 58%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독일의 국가채무비율이 60% 조금 넘는다. 독일은 유럽의 우등생이므로 우리도 그 정도까지는 문제없다는 계산을 하는 것일까.

이재명 정부에 묻고 싶은 것은 첫째 어느 선까지 빚을 늘려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그 기준점이다. 문재인 정부 때 만들어졌지만 법제화되지는 못한, 따라서 안 지켜도 그만인 재정준칙에 따르면 국가채무비율은 GDP 60%,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은 GDP 3%다. 관리재정수지 적자 3%는 이미 깨져서 내년에 4%까지 올라가고 국가채무비율은 2029년에 거의 꽉 채우게 된다. 그러면 2030년부터는 재정 다이어트에 돌입하는 것인가. 2030년에 출범하는 새 정부에게 그 부담을?

둘째, 계속 빚을 늘리다 어느 한 해 ‘재정이 다소 위험하니 긴축하겠다. 더 이상 복지 증가는 없다’고 하면 국민은 ‘알겠습니다. 그러시지요’ 할까. 모르핀 중독자가 무슨 감기약 끊듯 하루아침에 훌훌 떨치고 일하러 나가는 상상! 아무렴 우리는 환란에 임해 금 모으기 운동을 펼친 애국민족이므로 프랑스와는 다를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국민 동의까지 갈 것 없이 어떤 정부도 국민에게 긴축을 설득하지 않는다. 정부가 그렇게 나올 때는 국가부도가 코앞에 닥쳤을 때뿐이다.

국가채무비율 자체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다. 집을 장만하기 위해 대출을 크게 받은 개인은 채무부담이 급증한다. 그러나 원리금 상환에 문제가 없고 집값이 금융비용 이상 올라 준다면 그가 진 빚의 크기가 대수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빚을 갚는 능력과 재정규율이다. 생활비를 아끼는 대신 또 다른 빚을 내서 이자와 생활비를 충당하는 개인은 위험하다.

국가도 똑같다. 정부가 빚을 크게 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가령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코로나19로 경제활동이 끊어졌을 때 국가는 재정을 동원해야 한다. 국가채무비율이 급상승해도 어쩔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위기가 해소된 후 다시 양입제출(量入制出), ‘수입 내 지출’의 재정규율을 회복하는 능력이다. 프랑스가 지금 위기에 봉착한 것은 첫째 원래 씀씀이가 컸고 둘째 때늦은 재정규율 호소가 씨알도 안 먹히기 때문이다.

이 정부는 4%대 재정 적자를 현 정부 임기 내내 이어갈 것이라고 한다. 위험천만하다. 국가채무비율이 올라서 위험한 게 아니라 재정 중독이 위험한 것이다. 도대체 어느 수위에서 적자재정을 끊는가. 끊으려 하면 끊어지는가. ‘올해까지는 빚내서 살고 내년부터는 절약해야지.’ 이런 다짐이 얼마나 허망한지 중학생도 안다. 내년도 예산안에는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 직장인 점심지원, 지역화폐 지원 등 복지확장에 해당하는 사업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빚내서 생활 규모 늘리는 격이다. 그 결과는 구조적 적자다. 일단 늘린 생활비는 줄이기 어렵고 수입은 잘 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돈을 쓰고 싶으면 세금을 더 걷으면 된다. 그런데 증세에는 저항이 따르고 선거가 위험해진다. 적자재정은 손쉽다. 빚내서 돈을 풀면 언론이 시끄럽게 굴어도 대다수는 모른척한다. 그리고 선거에 도움이 된다. 이게 습관이 되면 하루아침에 프랑스가 되고 그리스가 된다. 그렇게 위기가 닥쳤는데도 재정에 중독된 국민이 ‘아 몰라’하고 나자빠지면 그다음엔 남미로 간다. 빚 무서운줄 알아야 한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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