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로 타셔도 전혀 미안할 것 없어요 [전국 인사이드]

7월22일 오후 1시, 경북 청송군 송생리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뜨거워진 휴대전화에선 폭염경보가 울렸다. 얼굴은 선크림과 땀이 뒤섞여 끈적거렸다. 노트북과 카메라가 든 가방부터 벤치에 내려놓았다. 들리는 거라곤 풀벌레 소리뿐이었다. 멀찍이 산불 여파로 ‘땜빵’이 난 산을 관찰하며 10분을 보냈다. 7:35, 8:15, 9:10, 10:00, 10:25, 11:20으로 이어지는 노선 시간표의 불규칙성을 분석하며 20분을 버텼다. 휴대전화 앱을 켜봐도 운행 중인 버스 정보가 뜨지 않았다. 취재원과의 약속 시간은 이미 지나 있었다. 히치하이크를 마음먹었지만, 간간이 오던 승용차마저 보이지 않았다.
청송에 간 건 ‘농어촌 무료 버스’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인구 2만3000명, 평균연령 58.6세의 소멸위험지역인 청송은 3년 전 전국에서 최초로 버스요금을 전면 무료화했다. 군민 아닌 관광객, 외국인도 모두 무료다. 군은 이미 65세 이상 인구가 44%를 넘어섰기 때문에 무료 탑승 기준을 확대해도 비용이 많이 증가하지 않을 거라 계산했다. 이 정책은 기후위기, 지역 소멸에 걸맞다는 평가를 받으며 전국 농어촌 지역으로 확산 중이다. 경북에선 봉화·의성·문경·울진이 따라왔고, 전남 완도·진도·영암, 강원 양구·정선, 충북 진천·음성·보은도 시작했다.
버스는 농어촌 지역에서 유일한 대중교통이다. 농촌진흥청 ‘2024년 농어업인 등에 대한 복지 실태조사’에 따르면 남성(14.8%)보다 여성(24.9%)의 대중교통 이용률이 약 1.7배 높다. 읍 거주자(17.8%)보다 면 거주자(22%)가, 월평균 소득액 200만원 이상인 경우(19.5%)보다 200만원 미만(41.5%)에서 대중교통 이용률이 높다. 특히 연령대별 차이가 극명하다. 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으로 대중교통을 꼽은 비율이 30대 이하는 13.1%, 40대 11.3%, 50대 10.6%, 60대는 18.4%에 그치는데 70대 이상에선 41.6%나 된다.
“돈 안 내도 되니까 읍에 더 자주 나가지. 몇 달 전에 산불로 집 앞까지 불덩어리가 날아왔어. 그때 놀라 넘어졌던 것 때문에 의료원에 다니거든. 원래는 목욕탕, 미용실, 읍사무소 갈 일을 모아서 나갔는데 요샌 그냥 가. 마을 할매들도 오전에 나가는 걸 봤는데, 오후에 보면 또 정류장에 (나가려고) 서 있다니까.” 청송에서 평생을 산 78세 박강옥 할머니는 10년 전 무릎이 안 좋아지면서 농사를 그만두고 마을 입구에 슈퍼를 열었다. 남편과 사별한 이후에는 버스가 그의 유일한 이동 수단이다. 무료 버스 정책 시행 이후 더 자주 사람을 만나게 됐으니, 그에겐 이 정책이 단순한 복지 이상인 셈이다.
사람은 줄어드는데 버스 왜 늘리느냐고?
농어촌 무료 버스는 교통 복지뿐 아니라 기후정의 관점에서도 살펴볼 만하다. 일상생활 속 탄소배출량이 적은 농촌 노인들에게는 탄소 감축보다 생활 기반을 지켜주는 사회안전망 강화가 우선 과제다. 이곳에서 버스는 이동 수단을 넘어 삶의 방식을 결정해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농촌은 농작물 피해부터 산사태·산불·홍수 같은 재난까지, 기후위기를 온몸으로 겪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불평등한 피해와 책임을 분배하고 취약계층을 보호한다는 개념이 ‘기후정의’다.
무료 버스 승객들은 자꾸 ‘불편하지 않다’라거나 ‘공짜로 타는 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버스노선 시간표에 삶을 맞춰온 이야기 속에는 요금 무료화 다음 과제들이 담겨 있었다. 수요조사를 통한 노선·배차 간격 확대, 공영제 도입 등이다. 그날 청송에서 43분 만에 온 버스를 타고 읍으로 향하며, 버스가 싣고 나른 삶들을 상상했다. ‘사람은 계속 줄어드는데 버스를 왜 늘리느냐’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도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김보현 (<뉴스민> 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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