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대신 동굴 폭파하는, 그게 펑크야 [단편선과 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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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티튜드(태도)가 도드라지는 음악이 있다.
애티튜드가 도드라지는 음악가도 있다.
애티튜드가 도드라지는 그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애티튜드가 없으면 아예 성립이 안 되는 음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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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티튜드(태도)가 도드라지는 음악이 있다. 애티튜드가 도드라지는 음악가도 있다. 독자 노선이 분명하다는 뜻이다.
애티튜드가 도드라지는 그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애티튜드가 없으면 아예 성립이 안 되는 음악도 있다. 이를테면 순종적인 섹스 피스톨스나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RATM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처럼. 어쨌거나 나는 뭐라도 도드라지는 걸 좋아한다. 더 웃기고, 이상하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애티튜드가 도드라지는 신보 두 장을 가져왔다. 우선은 칩 포스트 갱의 EP 〈케이브퀘이크〉(CAVEQUAKE)이다. 스스로를 케이브맨-노이즈 록 밴드라 명명하는 3인조, 칩 포스트 갱이 처음 낸 6트랙짜리 음반이다. 눈에 띄는 것은 ‘케이브맨’이라는 키워드. 그러나 우선 음악 속으로 직행해본다.
음반을 재생하자마자 처음 만나는 것은 전혀 정돈되어 있지 않은 (소리를 제대로 내고 있는지 조금 의심스럽기까지 한) 노이지한 베이스 리프. 이어지는 것은 공격적이지만 정확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는 드럼 필 인. 그리고 이내 무자비하게 찌그러진 일렉트릭 기타가 사운드를 잠식하더니, 그대로 달려 나가고, 가끔은 멜로디 같은 걸 치는 척하지만 어쨌건 그대로 달리다 고꾸라지고 그게 끝이다. 다른 트랙들도 대부분 그렇다. ‘SHISHAMO’에서는 3분30초 동안 “SHISHAMO”를 여덟 번 외치는데, 왜 그리 외치는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단서를 주지 않는다. 거기에는 별다른 선율도 감동도 없다. 다만 이 EP에서 느껴지는 것은 물리적인 힘, 그리고 높은 것과 낮은 것, 시끄러운 것과 덜 시끄러운 것, 빠른 것과 덜 빠른 것의 대비에서 오는 다이내믹함이다.
이 EP를 듣는 일은, 물론 음악을 듣는 일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체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고상한 종류의 예술적 체험이라기보다는 무엇인가 잔뜩 휘몰아친 뒤 무너지고 바스러진 현장을 마주하는 것과 비슷한. ‘케이브맨(caveman)’으로 돌아가보자. 아마 그것은 플라톤의 유명한, 동굴의 비유에서 따온 것일 테다. 플라톤은 동굴 밖으로 나와 진리를 찾으라 말한다. 그러나 칩 포스트 갱은 도리어 스스로 혈거인(동굴 속에서 사는 사람)을 자처하며 진리를 찾는 대신 동굴 자체를 무너뜨리고자 한다.
〈케이브퀘이크〉가 곤죽이 된 덩어리 같은 재질이라면 향우회의 새 EP 〈더 패닉 툴〉(The Panic Tool)은 매끈하면서도 뾰족하다. 향우회는 ‘여성 펑크 밴드’로 스스로를 정체화하며, 음악은 펑크 록의 여러 서브 장르(그런지, 개러지 록, 노이즈 록 등)를 오간다.
향우회는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필요한 건 거칠게 폭동” “죽기 전에 죽여버려” “나는 매일 기도를 할 거야/ 주여 제발 너를 죽여달라고” 같은 노랫말은 플래카드에 적힌 표어나 슬로건 같기도, 집회에서 외치는 구호 같기도 하다. 직설적인 선동에 힘을 부여하는 것은 거칠지만 잘 짜인 곡과 사운드다. 모스크바서핑클럽의 정기훈, 그리고 소음발광의 강동수가 각각 엔지니어와 프로듀서로 참여하며 레코딩의 퀄리티를 한껏 올렸다. 그 덕분에 우리 곁에는 한 편의 폭발적인 라이브 실황 같기도, 잘 다듬어진 스튜디오 앨범 같기도 한 강력한 록 음반 한 장이 남았다.
요새의 록 신은 즐겁다. 한편에서는 상대적으로 커머셜한 이들이, 다른 한편에서는 자신의 애티튜드를 강하게 추구하는 이들이 각자 방향으로 있는 힘껏 달려나가고 있다. 혼란스럽다는 것은 한편으로 다양한 것들이 에너제틱하게 경합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이 혼란이 사랑스럽다.
단편선 (음악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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